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둘아이아빠 Mar 18. 2024

둘아이아빠

저녁 11시

  나에겐 저녁 11시가 뜻 있는 시간이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밥먹고, 밥먹이고, 아내의 하루 있었던 안 좋았던 일들에 대해 열심히 들어준다.


 들어주다 나도 모르게 감정 개입시켜 말하면, 얘기 주제가 어찌 되었던 간에 아내의 언성이 높아진다.

 주고받다 주고받다 서로 기분이 나빠지며, 크게 싸움이 번지기 딱 ! 그 전까지만 갔다가 다시 가라 앉는다.

 어떤 주제였던 간에.. 나와는 상관없던 얘기였어도.. 무조건 내 잘못으로 끝나는 이 이상한 규칙.... 결혼 10년차인데 아직까지 왜 그런지 풀지를 못했다.


 여튼 죄인인 나는 아내의 구령에 맞춰 설겆이하고 과일 깍고 애들 씻기고 놀아주다보면 어느덧 9시.

 나는 명령에 따라 이행했을 뿐인데.. 9신데 왜 안재우냐고 내일 애들 피곤해 한다며 혼낸다.

  나를 혼내는 걸까? 아이들을 혼내는 걸까?


  애들 입에 칫솔 하나씩 물려주고 나도 치약 쭉 짜서 입에 넣는다. 좌우로 나는 치아를 닦고 있는데 애들은 치약을 먹기 바쁘다. 둘째 5살애는 쪽쪽 빨아가며 먹고, 초등학교 입학한 8살 애는 쪽쪽 빠는 단계는 다행히 지난거 같다.


  2시간 동안 책을 읽어주어야 아이들의 상상력이 자극된다는 티비속 전문사 선생님의 말씀을 이행하려고 책을 두둑히 들고 오는 아이들과 누워 한권 두권 읽을 때면, 티비속 전문가는 어느새 미친 사람으로 느낀다.

 나름 책 많이 읽어주는 아빠라고 자부하지만, 2시간을 어떻게 읽어..


  읽다 읽다 뭐를 읽었는지 기억도 안나고, 졸면서 읽는다. 간혹 잠이 들때면 어김없이 아이들이 눈을 찔러댄다.

그렇게 30분 40분을 비벼야 자는 아이들..

  그럼 난.. 졸리던 잠이 깬다.

  애들 이불 잘 덮어주고 나오면 11시. 

  빨래감 아내랑 같이 개며 하루 일과를 얘기한다.

  예전엔 맥주도 같이 하며 즐겼었지만, 40살도 늙었는지라 맥주 마시고 자면 위액이 역류하여 기도에 염증이 생겼다.

 그 염증 때문에 감기인양 하루종일 콜록된다. 저녁 음주도 이제 마음대로 못한다.

  하지만 난 저녁 11시가 너무 좋다. 하루가 끝나고 온전하게 내일을 준비하는 마지막 나와 아내의 시간. 아이들의 내일 입을 옷들을 한켠에 접어 놓는 아내를 보며 잠깐 사랑스레 느꼈다. 그 찰나의 시간 뒤 내일 아이들을 위해 할 목차를 읊어주는 교관이 되었고 나는 또 잘못아닌 잘못한 느낌이 든다.


  이런 저녁 11시가.. 그래도 난 참 좋다.

매거진의 이전글 둘아이아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