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차>2억짜리스포츠카

jeff lynne - losing you

by 도미니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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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로 가는 콜을 잡았다. 명절 전이라 그런지 콜이 생각보다는 많았다. 고향으로 가기 전 주위 사람들에게 명절 인사와 함께 식사와 술을 함께하는 자리가 많아지기 때문이었으리라. 백화점 근처는 차가 움직일 생각을 안 했고,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도 꽉 막혀서 귀성길 고속도로 마냥 북새통을 이루었다. 12시가 넘자 교통정체는 차츰 풀렸고, 막히는 도로에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운전에 지쳐갈 때 즈음 콜을 잡았다. 과속까지는 아니더라도 제한속도 내에서 시원하게 달릴 생각으로 차주를 찾았다. 키를 건네며 차 쪽으로 나를 안내하는 고객을 따라갔다. 파란색 스포츠카였다. 조수석으로 타기 위한 고객이 손을 대자 자동차의 문이 위로 열렸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보던 차를 운전하게 된 것이었다.



BMW I8이라는 차종이었다. 나중에 검색을 해보니 2억이 넘는 고급 스포츠카였다. I8은 BMW의 주행·안전·친환경 기술을 총망라한 집합체였다. 어디서 주워들은 얘기지만 친환경차는 얌전하고 운전이 심심하다는 인식을 깬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스포츠카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공기저항 최소화를 의식한 날렵함과 심할 정도로 낮은 차체, 그리고 그릴부터 후면까지 팽팽하면서도 매끄러운 라인은 정말 멋졌다. 자동차에 크게 관심이 없는 나도 만약에 큰돈이 생긴다면 한번 정도는 사고 싶은 그런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마치 나비 날개처럼 위로 뻗는 걸윙 도어는 감탄이 나왔다. 일반 자동차보다 높은 문턱 탓에 내리고 타는 일은 불편하고 낯설었지만, 이마저도 새롭고 흥미로웠다. 운전석에 앉자, 심하게 낮은 차체 역시 어색했지만 마치 차와 하나 되는 느낌은 크게 나쁘지 않았다. 실내 인테리어는 고급차다웠고 블루 핑크 라인 조명이나 시트, 하다못해 계기판 디자인까지 신선했다. 시선을 전방으로 했을 때 전면 유리창 각도가 심하게 기울어져 부담스러웠지만, 시야는 괜찮았다. 시동 버튼을 누르자, 전자음이 시동이 켜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니 소리 없이 차가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고, 저속에서의 스티어링 휠은 생각보다 부드러웠다. 올림픽대로를 달리는 맛은 또 다른 재미였다. 스포츠카의 강력한 힘과 스피드를 느낄 수 있었다. 간간히 마주치는 과속단속 카메라가 얄미울 정도였다. 조용하던 저속 주행 때와 달리 날카로운 엔진음도 운전의 재미를 더했다. i8 엔진음은 전통 스포츠카에 비하면 '어린아이' 수준이라는 말도 들었지만, 그저 신기했다. 혹시 일부러 낸 가상음은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들 정도였다.




누군가에게는 여러 대의 자동차 컬렉션 중에 한대의 자동차일 뿐이겠지만, 나에게는 꿈에서나 탈까 말까 하는 그런 자동차였다. 잠시나마 내 차인양 운전을 하며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는 기분이 나빠졌다. 밟는 대로 주욱 미끄러져 나가는 날렵한 모습의 스포츠카를 대리 운전하고 있을 뿐인데, 내가 주인인 양 어깨에 힘이 들어간 내 모습이 처량했다. 대리운전을 하며 많은 고급차들을 몰아봤지만 이런 기분이 든 적은 처음이었다. 20대의 젊은 친구가 주인이라서 그랬을까? 아니면 꿈에서나 탈 수 있는 자동차를 몇 대씩 굴리고 있는 사람이라서였을까? 아니다. 성공과 실패의 기준을 자동차의 유무나 가격과 성능으로 나눌 생각은 없지만, 나도 모르게 비교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며 적잖은 상실감을 느낀 것이다. 내차도 아닌데 내차인 것처럼 행동하고 생각하는 나의 얇은 자존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성공의 기준은 제각각이지만, 객관적인 성공의 잣대 앞에서 나의 성공 인양 어깨가 들썩거린 어리석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 집착하고 있는 것 같았다. 견고한 나만의 목표나 의지는 내버려 두고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에 온 관심을 쏟고 있는 듯하다. 남들에게 보이는 내 모습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물론 신경을 써야 함은 함께 사는 사회에서 분명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와이프가 나에게 얼마 전 했던 말이 생각났다.


"우리는 남들을 외모나 옷차림 등으로 판단하면 안 되지만, 남들은 우리를 외모나 옷차림, 집, 차 등으로 판단해"


슬픈 현실이었다. 남들에게 비칠 내 모습을 가꿔야 하는 것이 슬펐고, 그렇게 보이기 위해 안절부절못하는 내 모습이 가여웠다. 특히나, 그렇지 않음에도 그런 것처럼 행복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 가장 애처로웠다. 내 삶인데, 내 삶을 판단하는 남들을 신경 써야 한다는 점이 가장 무기력했다. 점점 나를 잃어가는 것 같았다. 어려서부터 풍족하지 못한 삶이었다. 하지만 불행하진 않았다. 비싼 무스탕을 입지는 못해도 맵시 나는 군 야상으로 폼을 쟀고, 비싼 자동차를 타진 못했어도 편하게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정도의 중고차 정도는 타고 다녔다. 대기업 직원 같은 고연봉은 아니었어도 먹고 살만큼의 월급으로 외식도 하고 여행도 가고 나름 지루하지 않은 삶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리고 가정이 생기면서 세상은 변하기 시작했다. 남들의 눈치를 보지 않는 것은 나하나로 족했지만, 가족들이 느낄 무력감과 차이 앞에서는 나 자신도 점점 약해졌다. 나는 그렇게 살아도 내 가족들 만큼은 그렇게 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지만, 그러질 못했다. 내가 대리운전을 하는 가장 큰 이유도 바로 이것이었다. 난 밤에 잠도 못 자고 일하더라도 우리 가족만큼은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주고 싶었던 내 마음. 난 어떤 삶을 살아도 상관없지만, 우리 가족들 만큼은 그런 것들 눈치 안 보고 편히 살 수 있게 하는 것. 난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점점 잃어가도 우리 가족들이라도 잃어가는 삶이 아니라면 난 충분히 괜찮다. 슬프고 가여운 내 인생이 우리 가족에게 번지지 않는다면 난 괜찮다. 다 잃어도 좋다. 잠시나마 모든 차들의 속력을 이기며 추월해 나가는 멋진 스포츠가가 나인 양 들떴었지만, 그래도 괜찮다. 그렇게라도 해서 단돈 얼마라도 난 벌어서 우리 가족에게 보탬이 될 테니까. 물론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나와서 다음 콜을 기다리는 동안 엄청나게 공허한 마음을 다시 채우느냐 고생했지만, 길거리에서 우리 딸이 좋아할 만한 2000원짜리 장난감 반지를 사서 가는 내 발걸음은 그리 무겁지 않았다. 사실은 엄청나게 무거웠지만, 난 사실 날 잃을 시간도 부족했다. 가족을 위해 무언가를 더 채워야 할 시간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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