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차> 너나 잘하세요

keith jarrett - be my love

by 도미니꾸



10시가 다 되어가는 저녁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당산역 인근에서 1킬로 미터 남짓한 거리에서 콜이 울려 손님에게 전화를 하고 달려갔다. 부천으로 가는 콜이었고 손님은 거나하게 취해있었으나 별말은 없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안전하게 모시겠다는 말과 함께 운행을 시작했다. 혼잣말로 계속해서 옆에서 뭐라고 말을 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운전에 집중해서 도착을 했다. 안전하게 주차까지 마치고 현금 결제였기에 25000원 결제를 부탁드렸다.


"나 카드 결제할 건데."


"현금으로 결제 요청하신 거라 현금으로 결제해주셔야 합니다."


버릇인 것 같았다. 상대에세 하는 무심결의 반말과 혼자 중얼중얼 거리며 기분 상한은 말을 되뇌는 것 말이다. 상대에게 직접적으로 욕이나 험한 말을 하진 않지만, 면전에서 하는 혼잣말은 거의 그런 수준이나 마찬가지였다.



"내가 현금이 없으면 어쩔 건데?"


"결제해주셔야죠......"



끊임없이 혼잣말을 하며 화를 낸다. "아 짜증 나네 진짜. 뭐 하자는 거지 지금?" 이런 식이다. 가만히 듣고 있던 나도 점점 화가 나기 시작한다. 한마디 해주고 싶지만, 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 손님의 잘못으로 콜을 취소했음에도, 손님의 잘못으로 30분을 넘게 대기를 했음에도 손님의 불평불만에 손을 들어주는 곳이 플랫폼 업체이고, 2회가 넘는 취소 시에는 며칠간 콜을 잡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일종의 갑과 을의 관계인 셈이다. 손님이 갑이고, 내가 을. 갑이 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그저 갑과 을의 관계로 잠시나마 함께 차를 타고 동행하더라도 내가 한 일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는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이런 식은 곤란하다. 돈도 중요하고, 일도 중요하지만, 마음이 너무 안 좋다. 무엇보다 내가 너무 하찮은 사람인듯한 대우를 받으면 나 스스로에게 너무 미안하다.



애초에 결제를 현금으로 할지 카드로 할지 결정을 하셨어야 한다. 그리고, 카드로 하신다고 하더라도 등록되어있는 카드로 자동으로 결제가 되는 것이기에 기사가 직접 카드결제기를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혼잣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주머니에서 구깃구깃 구겨진 3만 원을 꺼내서는 한 장 한 장을 세어보며 나를 째려본다. 들리지도 않는 말들을 하려기에 듣지 않았다. 내 앞으로 돈을 건네자마자 5000원을 주고는 자리를 떠나려 했다.



"영수증 줘야지"


반말을 떠나 이제는 점점 심한 말까지 혼잣말로 하고 있었다. 대꾸를 해야 하나 나도 화를 내야 하나 고민을 한참을 했다. 그래도 나도 똑같이 그렇게 하면 안 되지 하는 생각에 다시 설명을 찬찬히 드리려는 찰나 저리 가라는 제스처를 취하며 나를 밀쳤다. 정말 기분이 나빴다.





이 일을 하면서 저런류의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이런 취급을 받아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에 화가 났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난 뒤에는 이런 취급을 받아야만 하는 나 자신에 대한 미안함과 속상함에 화가 났다. 오늘의 화는 약간 다른 느낌이다. 이런 유의 사람이 한두 번이냐? 하고 참았다. 그리고 난 이런 유의 취급을 받을 사람이 아닌 귀중한 존재이지만, 어쩔 수 없는 현재의 복잡한 상황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좋게 좋게 참았다. 내가 진짜 화가 난 이유는 어려서부터 들어온 말들과 내 신조에 대한 불확실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40여 년을 착한 마음으로 착하게 남을 돕고 이해하고 배려하면 다 나에게 돌아온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아왔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이라면 도움을 주고 작지만 함께 나누며 서로서로 돕고 사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라는 것.



얼마 전 DP라는 드라마를 보며 군대 시절을 생각하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군 시절 남자들이라면 비슷하겠지만, 폭력이 만연한 시절이었다. 언어적으로는 물론이고 신체적으로도 폭력이 당연한 시절이었다. 일, 이등병 때부터 잦은 구타가 있을 때마다 난 내 후임병들에게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구타를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나에게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남들이 그런다고 너도 똑같이 그럴래? 그러면 너도 그 사람이랑 똑같은 사람이 되는 거야. 뭐가 달라"

그랬다. 내가 욕하던 사람이 내가 되는 것이었기에 부끄럽지 않게 난 후임병들을 구타하지 않았다. 가끔 얼차려 같은 것들은 줄 수 있었어도 구타만큼은 하지 않았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생각은 조금 다르다. 예전 같았으면 잘한 일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남들이 나를 그렇게 대해도 나는 상대를 존중한다는 게 내 마음의 기본 같은 거였는데, 요새 드는 생각은 많이 다르다. 그렇게 좋게 위해줬더니 나를 깔보거나 무시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 같다. 상대의 기분을 생각하며 배려해줬더니 내 마음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착한 일을 해서 언젠가는 내 복으로 돌아올 거라는 기대만으로 그렇게 참은 것도 아니었지만, 뒤돌아보니 막상 변한 것도 별로 없었다. 내가 진짜 기분이 나빴던 것은 그 사람의 손가락질도 아니었고, 그 사람의 기분 나쁜 언행도 아니었다.





진실이 아닐지도 모르는 일반적인 사실을 평생 진실로 믿고 살아온 것 같은 나의 무지함과

그렇게 40여 년을 속아왔으면서도 "에이, 그래도 착하게 살아야지"라고 다시 한번 마음을 다독거릴 나의 물렁함때문이었다. 화가 나도 상대를 위해 참고, 이해한답시고 내 마음은 까맣게 타버리는 것도 모르고 있는 미련한 나 자신에게 말하고 싶다.

이제 그만 너 스스로를 좀 챙기라고 말이다. 남들 배려하기 전에 니 속이 다 망가진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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