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차> 멈추고, 뒤돌아 보라

Billy Taylor trio - Theodora

by 도미니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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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lly Taylor trio의 Theodora란 곡이 있다. sleeping bee라는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재즈 연주곡들을 들을 때 난 제목을 보지 않고 먼저 한번 듣는다. 그렇게 곡을 듣다 보면 정확한 형상의 이미지가 떠오르지는 않지만, 대충 어떤 느낌이 떠오르게 마련이다. 그러고 나서 두 번째는 곡의 제목을 보고 나서 연주가가 어떻게 표현했는지 다시 한번 느낀다. 세 번째는 곡의 작곡가나 작곡 당시의 배경, 앨범의 콘셉트 등의 다양한 뒷배경들을 알고 나서 종합적으로 한번 더 듣는다. 처음 들을 때와 두 번, 세 번 들을 때의 느낌이 참 많이 다르다. 특히 가사가 없는 재주 연주곡들을 더욱 그렇다. 마치 알 수 없는 사람의 마음속을 헤아리는 것 마냥 어렵지만, 한편으로는 하나하나 알아가는 재미가 있기도 하다.




theodora라는 곡을 처음 들었을 때는 오래된 시골 전원주택의 테라스에 앉아 따스한 햇살 아래 커피 한잔을 마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계절적으로는 여름과 겨울은 아니었고 봄 아니면 가을 정도였다. 묵직하지 않지만, 가볍지 않았고, 잔잔하면서도 다운되지 않는 그런 느낌이었다. 이렇게 혼자만의 풍경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두 번째 들었을 때 theodora라는 제목을 알았는데 무슨 뜻인지 몰랐다. 지명이나 이름 정도일 거라 어렴풋이 짐작했다. theodora라는 지역과 관련된 풍경을 연주했을 수도 있고, theodora라는 사람을 위한 연주일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세 번째 들었을 때는 이 곡은 theodora라는 아내를 위한 곡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연주 몇 번 듣는 것으로 사람을 어찌 알겠냐만은 적어도 그녀는 따뜻하고, 섬세하면서도 강한 사람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반대로 오감으로 즐긴다는 와인을 마실 때 난 많은 것을 알고 마시게 된다. 화이트인지, 레드인지, 어느나라 와인인지, 어느 품종을 몇 년 숙성한 건지 등 수많은 정보들과 함께 목으로 넘긴다. 물론 아무런 정보 없이 어떤 지역의 어떤 품종의 어떤 와인인지 단번에 아는 전문가들도 많겠지만 대부분은 그렇게 와인을 즐기지 않는다. 알고 마시는 와인과 그냥 상상력 만으로 즐기는 와인은 차이가 크다. 위스키도 마찬가지다. 스카치위스키인지, 아이리쉬 위스키인지, 도수는 얼마인지, 오크통은 어떤 것을 사용했는지, 몇 년을 숙성했는지, 블렌디드인지 싱글몰트인지 다양한 사실들을 알고 마시는 것과 그렇제 않은 것은 차이가 크다. 물론 취하기 위한 용도로서의 술이라면 크게 중요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난 위스키를 마실 때는 재즈 음악을 들을 때와는 정반대의 방식으로 마신다. 먼저 위스키의 내용과 배경들에 대한 것들에 대한 조사를 끝마치고 잔에 따라 마신다. 배경에 대한 것들이 얼마나 맞는지, 예상했던 것들과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미리 상상하고 직접 느끼는 재즈와는 거꾸로 즐기는 것이다. 어느 정도는 이 위스키가 버번위스키인지, 아일라 섬 쪽의 위스키인지, 그냥 스카치인지 짐작은 하지만, 잘 모른다. 오히려 내 생각과 정반대인 경우도 많았다.



우리는 수많은 판단의 시간을 갖게 된다. 누구나가 잘 알고 있는 공통된 사실에 대한 부분을 제외한 개인적인 의견이 필요한 선택과 판단의 시간에서의 선택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맞고 틀리고가 분명한 문제이지만, 맞고 틀린 것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선택들이다.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 속에서 과연 난 어떻게 선택하고 있는지를 뒤돌아 보았다. 하다못해 편의점에서 물을 하나 사려해도 우리는 선택의 고민에 빠지게 되고, 커피를 한잔 마시려 해도 어떤 음료를 마실까, 차가운 걸 먹을까 뜨거운 걸 먹을까 선택의 연속이다.



음악을 들을 때도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그냥 들을 때는 누군가가 정확한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 한 장송곡을 들어도 그저 잔잔한 자장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피트 향 가득한 아일라 섬의 라프로익 위스키를 마셔도 미국 테네시 버번위스키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서 그때 그 음악이 자장가가 아니라 장송곡이었다는 사실을, 그때 그 위스키가 옥수수 같은 구수함이 가득한 그레인위스키가 아닌 피트 향 가득한 스카치위스키였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하더라도 큰 문제는 없다. 크게 손해 볼 것도 없다. 그냥 몰랐던 것들이니까. 하지만, 난 더욱 알아가고 싶다. 그리고 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까지 진실로 믿었던 얄팍한 지식들에 대한 확인은 물론이거니와, 몰랐던 것들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가장 무서운 것이 적당히 아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확고한 나만의 기준과 확신이 부족한 나같은 부류의 사람은 조금이라도 나 자신을 의심하지 않으면 오만이라는 구렁텅이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아예 모르거나 아주 잘 알거나의 중간 정도인 위치가 가장 위험하다. 적당히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고 어찌 보면 둥글게 모나지 않게 사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이는 선택에 있어서는 장점이 거의 없다.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고.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고, 지나친 관용으로 인한 판단과 선택의 장애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부족함을 인정하고 채우기 위한 노력을 수반함으로써 그나마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나를 판단하는 살마들을 만날때는 내가 어찔 할 수가 없다. 나는 남들을 그렇게 판단하거나 함부로 확신에 차 어떤사람이라 예상하지 않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남의 차를 운전하며 눈에 보이는 나의 겉모습이나 말투 그리고 직접적인 위치들을 바탕으로 나를 평가하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직업적인 귀천이 없다고는 하나 귀천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나는 하나의 천한 직업을 가진 사람일 것이고, 그들은 그렇게 갑과 을의 관계를 마음속으로 정해놓고 나를 을로 부려먹으려 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지만, 아직도 꽤나 많은 사람들은 그런식으로 사람을 평가하려한다. 나는 왜 이런 대우를 받으며 사는 것인가. 나의 어떤 모습에서 그들은 나를 이런 정도의 대우를 받는 사람 취급을 하는 것일까. 수많은 고민 끝은 항상 똑같은 답이다. "적어도 나만큼은 쉽게 판단하지 말아야지" 다짐을 하며 Billy Taylor trio의 Theodora를 듣는다. 요새 자꾸만 글이 이런 식으로 만 써진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난 왜 이런 대우를 받으며 사는가.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답을 알 수 없는 문제로 매일매일 머리가 너무 복잡하다. 오늘은 일 안 하고 집에 일찍 가서 Billy Taylor trio의 Theodora나 들으며, 위스키나 한잔 해야겠다. 뭐 물론 또 똑같은 답이겠지만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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