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차> 의외의 조합

PJ Morton - say so(ft. jojo)

by 도미니꾸


자꾸만 사람이 없는 곳이 편해진다. 북적북적한 소란함 보다는 조용한 평온이 좋다.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느껴지는 화려함보다는 혼자 쉴 수 있는 소박함이 더 좋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이태원이나 홍대에서 느껴지는 젊음과 흥겨움이 전부였던 시절이 있다. 주말이 되면 클럽을 찾아 술과 음악을 즐겼고, 맛집이라고 하면 몇 시간을 줄을 서서 먹어도 즐거웠다. 인기 있는 가수의 내한공연들을 찾아다니며 유행의 흐름의 잠시나마 잃어버릴까 트렌드를 찾아다녔다. 무엇이건 비어있는 것보다는 꽉꽉 차있는 것들이 좋았었다. 그랬던 내가 이제는 점점 비어있는 것들이 당긴다.


클럽이나 펍에서 드는 노래보다는 조용한 카페에서 듣는 음악이 좋다. 술을 마셔도 홍대나 이태원보다는 집 테라스나, 집 앞 공원에서의 술이 더 좋다. 빽빽한 사람들을 헤집고 들어가 먹는 맛집보다는 집밥이 좋고, 힙합보다는 재즈가 좋다. 나이가 들었던 것도 한몫했지만 심경의 변화가 가장 큰 것 같다. 유행에 뒤처지지 않으려, 가끔은 내가 트렌드를 이끌어나가는 사람인 양 몰두했던 시절이 있다. 주위 사람들도 이태원에 와서는 어디가 맛있냐고 주말마다 물어보곤 했고, 지방이든 해외든 어디든 놀러 가기 전에는 나에게 어디가 핫한 곳인지 물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지금의 나는 유행이나 트렌드를 잘 모른다. 관심도 없을뿐더러 알고 싶지도 않다. 대신 진정한 나의 취향이 무엇인지 다시 알아가는 중이다. 내 취향이 아님에도 줏대 없이 시대에 뒤처지지 않으려 놓아하는 것처럼 행동하며 즐겼다. 이는 어찌 보면 기만행위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점점 나이가 들며 남들이 생각할 나의 모습에 덜 신경 쓰게 되었고, 다행히 더 늦기 전에 나에게 미안함 짐도 조금 덜 수 있게 되었다. 이태원 클럽 앞에서 외국인들과 얼싸안고 양주병 나발을 불며 코가 삐뚤어지며 밤새 술 마시며 놀던 시절의 내 모습이 당시엔 뭔가 멋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는 한편 조용히 고깃집에서 삼겹살에 소주잔을 기울이던 사람들을 보며 유행에 따라오지 못한다며 혀를 찼던 내 모습을 반성한다. 남의 취향을 인정할 줄도 몰랐고, 내 취향도 철저히 무시하며 지냈던 시절을 반성한다.



강남역에서 버티고개로 가는 손님을 태웠다. 의외의 조합이라는 카페와 갤러리를 함께 운영 중이신 젊은 사장님 부부는 감사하게도 커피 한잔을 주셨고, 한적한 한양도성 외곽길을 온전히 즐기며 내려왔다. 신당역까지 걸어오는 20여분의 산책길에서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내려왔다. 과거의 나 그리고 현재의 나. 잠시 동안이나마 그리고 미래의 나. 덥지도 춥지도 않은 가을 날을 오롯이 느끼며 걸었다.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김포에서 강남까지 버스를 탄다. 본업이 있는 회사에 출근해 점심까지 일을 한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6시까지 일을 하고 두 번째 대리기사일을 하기 위해 어둑한 도시를 향해 또 출근한다. 12시 정도까지 기사일을 하다가 집에 가서 씻고 잠드는 날의 반복 또 반복이다. 주말은 아이와 함께 놀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다. 밀린 집안일이며 개인적인 정비들을 하다 보면 또다시 월요일이다. 무엇하나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나만의 시간은 대중목욕탕에 가거나 머리를 자르거나 하는 시간뿐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생각한 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심적인 여유가 없는 지금의 이런 상황에서 내 마음 편하자고 무언가를 하기는 불가능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무언가에 홀린 듯이 내 발걸음은 예전 한창 젊은 시절 놀고먹기 바빴던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한남동 단골 냉면집과 해장술을 마시던 북엇국 집을 향해 걸었다. 이태원 자주 가던 꼬치구이집과 카페들을 지나쳤다. 한 달에 한 번은 무조건 와서 먹던 부대찌개 집과 냉동 삼겹살집을 지나 클럽과 술집이 즐비하던 이태원 녹사평을 지나쳤다. 삼각지 동태탕 집을 지나 용산 육개장 집들을 거쳐 일산으로 향하는 콜을 잡았다. 다음 콜을 잡기 전까지 1시간을 넘게 걸었던 것 같다. 10여 년 정도 되는 시간 동안 많은 것들은 변해있었다. 영업을 하지 않는 가게들도 많았고, 분위기도 내가 느꼈던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중에서 가장 변한 것은 바로 나였다.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반가운 예전의 기억이 있는 장소를 가도 심경의 변화가 없었다. 무감각해진 것 같달까. 내 신경은 과거의 내 추억보다는 지금의 다음 콜을 잡아 한 푼이라도 더 버는 쪽에 치우쳐져 있었다.



그때 당시의 나는 쇼윈도에 비친 내 모습을 자주 보곤 했다. 특별히 내가 잘난것은 아니었지만, 쇼윈도에 비친 내 모습이 그냥 좋았다. 거리낄 것이 없었고, 늘 즐거운 일 투성이었던 것 같다. 하루하루가 재미났고 다음날이 오면 또 어떤 즐거운 일이 있을까 하는 기대감이 넘쳤다. 실제로도 하루하루가 재미났고,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지금의 나는? 매일이 같은 하루하루의 연속이다. 더 이상 쇼윈도에 비친 내 모습을 보지 않는다. 보고 싶지도 않다. 바닥을 보고 걷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고개들 들어 가을 하늘이 얼마나 높은지 느낄 겨를 도 없이 내 눈은 핸드폰에 고정된 채 가까운 거리의 콜을 잡는데 혈안이 되어있다. 오랜만에 쇼윈도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패션 센스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헐렁한 바지에 더러운 신발. 목이 축 늘어진 검은색 반팔 티셔츠에 가방을 둘러멘 배가 불룩 나온 전형적인 40대 아저씨의 모습이었다. 차마 얼굴을 자세히는 볼 엄두도 나질 않았다. 다행히 이른 저녁이 찾아봐 얼굴을 흐릿해져 잘 보이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했다.





의외

(意外)

[의ː외/의ː웨] 발음 듣기

명사

전혀 생각이나 예상을 하지 못함. 의외의 대답.




그렇게나 내 잘난 맛에 살던 내 현재의 모습이 정말 의외였다. 이렇게나 변한 나의 모습을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적나라하게 느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세월이 흘렀고 나 자신도 많이 변했기에 어느 정도 내 마음도 준비를 했는지는 몰라도 생각보다는 충격도 덜했다. 이 또한 의외였다. 엄청 실망할 줄 알았는데.....

의외의 내 모습들을 많이 발견했다. 그나마 현실을 인정은 할 줄 알는 사람이었고, 나 자신을 이해는 할 수 있는 정도의 녀석이라는 점은 다행이었다. 나이는 점점 더 들어갈 것이고 나 또한 변할 것이다. 이제는 내 얼굴에 책임져야 할 나이가 다가온다. 불혹을 넘어 지천명이 다가오는 중이다. 과거를 후회해도 소용없고 그리워해도 소용없음을 안다. 50세가 되어도 하늘의 뜻을 알 수는 없을지언정 지금보다는 좀 더 현명해지고 이해심 깊은 내가 될 수 있길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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