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차> 위로를 해주니, 위로를 받았다.

peggy lee - pretty eyes

by 도미니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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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강화도로 가는 콜을 잡았다. 지는 해가 마치 내비게이션인 듯 길을 알려주는 아름다운 저녁 길이었다. 차도 안 막히고, 아름다운 석양을 보며 달리는 길은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나 마찬가지였다. 주위는 온통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고, 한 무리씩 날아다니는 기러기들을 마주하며 달렸다. 적당히 선선한 바람에 촉촉한 페기 리의 목소리를 함께 들으니 더욱더 몽환적인 밤이 되어가는 길이었다. 석양과 가을바람이 주는 풍성함을 차에 싣고 손님과 나는 강화도를 향해 달렸다.





"기사님, 사실은 제가 마음의 병이 있어요. 약물치료도 하고 있고, 상담치료도 함께 하고 있어요. 그런데 제가 버릇이 대리 기사님을 만나면 제 마음속 말을 하고 싶어 져요."



"아 그러시군요. 많이 힘드시겠어요. 제가 도움이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들어드릴게요 말씀해보세요."


이어폰을 귀에서 빼고 손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죄송한데 제가 이게 뭔가 버릇도 아니고 루틴도 아니고, 택시 기사님이나 대리 기사님한테는 속마음을 잘 털어놓는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털어놓기가 쉽지 않아요. 가족이든 친구든 말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기사님들한테는 스스럼없이 말이 술술 나와요."


"맞아요. 가끔은 친구나 가족돌처럼 가까운 사람에게도 힘든 고민이나 속마음을 저희 같은 사람들은 다시 볼일 없으니까 말하기 쉬울 수도 있죠."



그렇게 30분이 넘도록 손님은 지금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받았던 이야기부터 지독히도 힘들었던 가족사부터 현재 상황까지 털어놓았다. 어쩌다 이렇게 마음의 병까지 얻게 되었는지 정확히는 몰라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가만히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난다는 것을 나도 잘 안다. 손님과 마찬가지로 나도 나의 힘듦이나 고민을 남에게 잘 말하지 못한다. 가끔은 친구들은 그런 나에게 서운해하기도 한다. 본인의 마음을 잘 털어놓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친구 입장에서는 '아, 이 친구는 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구나. 믿음이 없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고민이나 걱정이 있어도 털어놓지 않는가 보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창피해서가 아니다. 친구에 대한 믿음이 없는 것도 아니다. 다만, 속마음을 잘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 나의 못난 성격일 뿐이다. 말한다고 해도 해결되지 못할 일을 남에게 이야기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게 내 속마음이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들 하지만, 내 경험상 기쁨은 나누면 시기 질투로 이어지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여러 명이 지고 가는 듯했다. 그래서 더욱 입을 굳게 다물게 된다. 그러다 대리기사님이나, 택시기사님처럼 한번 보고 볼일이 없을 듯한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거리낌 없이 본인의 속마음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강화도 손님에게 난 별다른 말 없이 "힘드시겠어요.", "저런, 얼마나 힘드셨을까" 같은 말 말고는 일절 나의 생각을 말하지 않았다. 그 손님이 듣고 싶었던 말은 그런 말이 아닐 것이다. 그냥 가만히 들어주는 것이 백 마디 말보다 더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주제넘게 그 사람의 슬픔과 고통을 이해한다는 듯한 말은 오히려 독이다. 같은 고통을 느껴도 다르게 반응하는 것이 사람이다. 그나마 "이해해. 그래도 주위를 봐봐 너보다 힘든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너 정도면 충분히 행복한 거야 그러니 기운내고 파이팅해"같은 말은 진심 최악이다. 그래서 난 누군가가 나에게 고민을 말할 때 항상 듣기만 한다. 100% 완벽한 해결책을 내가 가지고 있거나, 상황을 드라마틱하게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는 한 난 그냥 듣기만 한다. 그게 그 사람을 위한 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이 문제를 해결할 열쇠를 받아 문을 열고자 하는 사람에게 열쇠를 주거나 대신 문을 따주지 못할 바에 내가 제시하는 모든 답들은 오답에 가깝다. 열리 지않는 문을 함께 두들겨준다던지, 같이 낑낑 거리며 문을 밀쳐도 열리지 않는 문에 서있는다는 것은 무기력함을 공유할 뿐이다. 적어도 열리지 않는 문을 함께 열려고 노력은 했잖아 하는 뿌듯함을 위한 것이라면 상관없다. 하지만 난 그런 무의미한 노력도 하고 싶지 않다. 가끔 남들이 그런 슬픔을 이야기할 때에 난 들어주는 사람에 불과할 뿐이다. 물론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내일처럼 달려들어 해결한다. 그 사람의 절박함과 고통을 100% 이해하기는 어려우나 나에게 이야기하기까지 걸렸을 고민과 슬픔의 시간을 알기에 내 일처럼 열심히 달려든다.




그렇게 손님의 슬픔을 들어주고 1시간 남짓한 운행이 끝났다. 붉게 빛나던 태양은 산아래로 잠들었고, 하늘은 온통 암흑 투성이었다. 강화도 자체가 시골지역인 데다가 대중교통도 별로 없는 상황이었다. 강화대교를 건너 산속으로 꾸역꾸역 한참을 들어왔던 터라 대로변까지 나가는데 20분이 넘게 걸렸다. 가끔 들리는 강아지 소리와 기러기 울음소리를 배경으로 많은 생각들이 오갔다. 나도 힘들고 외로운 상황이지만, 나 같은 누군가를 위한 잠시 동안의 시간이 정말 소중했다. 말하지 못하는 내 슬픔에 대한 위로를 대신 받은 듯했다. 그 손님은 어떤 위로를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위로는 내가 해준 것이 아니라 본인의 슬픔과 고민을 이햐기해준 손님이 나에게 해준 것 같았다. 위로 아닌 위로를 해주며 난 위로받았다. 소재만 다른 같은 내용의 영화가 그렇게 해 엔딩으로 마무리되고 있었다. 밝은 달 덕분에 어둡던 밤은 밝게 빛나고 있었고, 갈길 바쁜 기러기들은 하늘을 수놓았다. 나도 모르게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귓속으로는 아련한 페기 리의 목소리가 자장가처럼 스며들고 있었다. 참 풍요로운 가을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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