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egation - oh honey
대리운전을 시작하고 나서 고객은 우리에게 별점을 준다. 다음 대리운전 서비스를 이용할 때 도움이 되기 위해서인지 많은 항목으로 나 같은 대리기사를 평가한다. 5점 만점 중 난 4.7점이다. 고객이 남긴 장점을 살펴보았다. 주차 마무리에서 평점이 가장 높았고, 두 번째로는 기사님의 복장, 세 번째로는 운전 실력이었다. 추가적으로 대화 매너나, 부가서비스, 차량관리 등의 항목이 있었다. 글로 남긴 한마디에서는 "안전운전 인성 최고였어요." 라던가 "친절하고 안전한 운전 감사합니다." 같은 후기들이 있었다.
난 복장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 아니었다. 편한 것이 우선이었다. 겉모습보다는 속 마음이 중요하다고 믿는 나의 신념 때문이었다. 와이프의 의견은 달랐다. 복장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설명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잠시 스치는 사이 정도의 모습에서 그 사람을 판단(?) 하는데 가장 큰 요소는 겉모습일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단지 대리 운전을 할 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그의 옷차림이 상대를 판단하는데 꽤 큰 몫을 한다는 것이다. 의아한 부분이 많았지만, 나도 이제는 그런 와이프의 의견에 동의한다. 우리는 남을 판단할 때 겉모습으로 판단해서는 안되지만, 남들은 우리를 판단할 때 잠깐 스치는 겉모습으로 판단한다는 와이프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름 복장에 신경을 많이 쓰려고 하고 있다. 때와 장소에 맞는 복장을 하려고 하고, 최대한 깔끔하고 무난한 스타일의 옷을 입으려 노력한다. 나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개성 넘치는 아이템이나 옷보다는 무난하지만 그 안에서 깔끔함과 반듯함을 보여 주는 그런 스타일들을 추구한다. 옷도 싼 옷을 많이 사서 이스타일 저 스타일로 변형을 주기보다는 큰 틀 안에서 약간의 변화를 주는 기본 아이템에 집중을 해서 구매하려 한다. 오히려 옷 구매하는 비용은 절약이 되고 유행을 타지 않아 비용적으로도 세이브가 많이 된다. 멋을 아는 세련되지만, 실용적인 아이템들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
모직과 울 소재에서 우러나오는 지적이고 은근한 멋은 거의 모든 연령에게 강력하게 어필하는 프리패스다. 소재가 중요하긴 하지만 고가의 수입 브랜드는 넘사벽이며 국내 중저가 브랜드라 하더라도 세일 전까지는 납득이 가지 않는 가격일 때가 많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이때는 어른 남자의 멋이 정점을 찍는 시기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종종 묘사하는 가을 옷차림인 모직 코트, 코듀로이 팬츠, 스웨터와 카디건이 등장한다. 차분하고 따스하며 실용적이다. 유행도 거의 타지 않는다.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패션이란 예산과 한 몸일 수밖에 없다. 특히 가을 겨울 옷이 대표적인데 중저가 브랜드, 수입 브랜드를 막론하고 재킷이나 코트류가 세일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가격표의 동그라미를 여러 번 확인하게 만든다. 마치 와인처럼 정가를 다 주고 사는 것이 억울한 지경이 됐다. 기성복 브랜드에서는 사실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브랜드와 가격대가 엄연히 존재하고 완성도 있는 마감에서 차이가 드러난다. 재킷, 코트 등 테일러링이 중요한 아이템에서 두드러진다. 반듯하게 각진 스타일보다는 조금 여유 있고 느슨한 빈티지 실루엣을 선택하는 것이 몸에 밴 자연스러움을 연출하기에 효과적이다. 그에 반해 카디건이나 스웨터 등 니트류는 고급 브랜드일수록 부드럽고 포근한 촉감이 증명된다. 보온력도 포함된다. 좋은 소재일수록 소재가 공기를 끌어안는 힘이 강하기 때문이다. 제한된 예산이라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니트류가 우선이다. 관리만 잘하면 반영구적으로 입을 수 있고, 아우터는 사실 이미 두 개 이상을 갖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만날 때 아우터를 입고 만나는 시간과 이너를 입고 만나는 시간 중 어느 편이 더 길지 생각해보라. 니트의 미덕은 입는 사람과 보는 사람 모두 편안하고 따스함을 느낀다는 데 있다. 재킷과 코트 안에 니트류를 받쳐 입는 것은 기본이다. 새로 구입한다면 무늬와 패턴 없이 솔리드 한 것으로 밝고 선명한 컬러를 살 것이다.
재킷과 코트, 카디건과 스웨터 모두 단 1%라도 캐시미어와 울의 혼방인지를 확인하자. 따스함, 촉감, 눈으로 보았을 때의 고급스러운 광택, 부드럽게 몸을 감싸며 흐르는 느낌이 다르다. 또 네크라인과 가슴 부위에 불필요한 장식과 패턴이 든 것보다는 심플하고 미니멀한 스타일이 겹쳐 입기에도, 받쳐 입기에도 좋다. 이렇게 단순한 라인은 오버핏도 슬림핏도 아닌 신체 사이즈에 딱 맞게 입어야 깔끔하다.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찾았다면 다른 컬러로도 구입해두면 좋다. 트래디셔널 한 아이템일수록 눈과 몸에 꼭 들어맞는 것을 찾기가 쉽지 않다. 또 하나를 지속적으로 입는 것보다 여러 개를 번갈아 돌려 입는 것이 내구성 유지 차원에서도 유리하다.
지난 주말 와이프와 1+1 세일을 한다는 매장에 들렀다. 바지부터 조끼, 아우터까지 수많은 상품들이 있었다. 사고 싶은 아이템들이 많았지만, 난 캐시미어와 울 혼방의 밤색 조끼와, 맨투맨 티셔츠만을 구매했다. 예전 같았으면 무리를 해서라도 이것저것 사서 쇼핑백을 가득 채웠을 것이다. '1+1이니 아건 무조건 남는 장사야'라는 어리석은 속마음과 함께 옷장 구석에 쌓아두고는 두어 번이나 입다가 봄 옷장 정리 시즌에 사라질 옷들을 구매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정말 필요한 옷만을 구매했다. 해외여행을 나가 명품 매장에서 멋진 디자인이라며 필요치도 않을 프린팅 티셔츠를 사며 흥분했던 때가 생각났다. 두바이 여행을 갔을 때 금색 나이키 로고에 두바이라고 적혀있는 티셔츠는 금으로 색을 칠 한것처럼 7만 원이 넘는 가격이었다. 3만 원 이어도 살까 말까 하는 일반 티셔츠를 흥분하며 구매했던 때가 있었다. 몸에 맞지도 않는 브룩 브라더스 셔츠를 세일 기간임을 핑계 삼아 살 빼고 입어야지 하는 야무진 꿈을 핑계로 여러 벌 구매했던 적도 있었다. 아직까지 기본 아이템 몇 벌로 여러 벌의 옷을 입는 효과를 내는 스타일링의 고수는 아니지만, 적어도 쓸데없는 소비를 하지 않는다는데서 마음 한구석이 뿌듯해짐을 느꼈다.
와이프에게서 문자가 왔다. 전날 방문한 매장에서 구매한 옷을 교환하려 왔는데 바지가 너무 이쁜 구매하지 않겠냐는 문자였다. 여러 가지 사진도 보내주었다. 예쁘기 않거나 디자인이 별로인 것은 아니었지만, 이미 내가 가지고 있는 바지들로 충분했고, 세일이라는 핑계로 잘 입지 않을 바지를 구매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되어 안 사도 된다는 답장을 보냈다. 남들이 볼 때는 당연한 일이겠지만, 소비에 중독되어있던 나에게 이 정도는 박수받을 일이었다. 오늘도 이렇게 비워내지는 못할지언정 쓸모없는 것들을 더욱 쌓아두지 않으려는 나만의 다짐을 이행했다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어제 산 조끼를 입고 회사로 출근했는데, 오늘도 복장 단정으로 후기가 올라왔으면 좋겠다. 운전기사는 운전을 잘해야 함이 당연하다. 운전은 당연히 잘해야 하는 것이고, 주차에서부터 센스 있는 언행과 옷차림으로 고객이 낸 돈이 아깝지 않게 하는 것이 밤 시간 동안 내가 맡은 일에 대한 최고의 처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