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mmy Flanagan - peace
개인적으로 술을 잘하지 못한다. 어느 정도가 술을 잘하는 거인지 정확한 구분은 없지만, 적어도 라면에 반주로 소주 정도는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난 아니다. 파전을 먹을 때 막걸리가 생각나지도, 치킨을 먹을 때 맥주가 생각나지도 않는다. 7시 이후 난 대부분 술을 즐기는 사람들과 함께 일한다. 기분이 좋아서 한잔, 기분이 나빠서 한잔, 걱정이 많아서 한잔, 일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한잔. 수 없이 많은 이유이지만, 술을 마신 사람들과 함께 대화하게 된다. 적당히 술에 취한 사람들도 있고, 인사불성의 사람들도 있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인사불성의 상태로 기사를 부르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부분은 기분 좋게 아니면 적당히 술에 취해 차에 오르는 경우가 많다.
술을 잘하지 못하는 것이지 술 자체를 싫어하지는 않는다. 사람들과의 술자리는 즐겁고, 힘들 때 나도 모르게 술을 찾기도 한다. 다만, 술을 마시고 취해서 잘못된 행동들을 하거나, 민폐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서 통제불능이 될 정도로 마시는 것을 피할 뿐이다. 오이를 먹지 않는 사람은 단지 편식이 심한 사람인 줄 알았고, 커피를 못 마시는 사람은 단지 쓴 맛을 싫어하는 사람인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원인은 우리가 선천적으로 갖고 있는 유전자 때문이라고 한다. 흔히 말하는 ‘주당’들은 술을 아무리 많이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거나 신체적으로 변화가 없다. 반면에 술을 못 마시는 나 같은 사람은 한 잔만 마셔도 홍조, 어지럼증, 구토 등 신체적으로 큰 불편함을 겪는다. 예전 tv 프로그램에서 봤던 기억이 있는데, 술을 한 잔만 마셔도 빨개지는 사람부터 세 병 이상을 거뜬하게 마시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유전자의 비밀을 실험을 통해 알아보았던 게 기억이 난다. 그 결과 술을 못 마시는 경우 알코올 분해 유전자와 아세트 알데히드 분해 효소 유전자 변이가 있었고 반면에,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의 경우 변이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같은 양의 술을 먹어도 취하고 안 취하는 사람이 있다는 소린데, 나 같은 사람은 똑같은 양을 먹어도 뇌졸중 같은 병의 발생 위험도 30% 넘게 증가하기도 한다고 한다. 그러니 애초에 내가 술을 좋아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가끔 술을 드시고 오셔서 몸도 가누지 못하고 힘들어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자란 나로서 술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지금은 집에서 위스키나 와인을 한잔 두 잔 정도 즐기는 편이다. 힘든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과하지 않은 술 한잔은 몸을 노곤하게 만들어주고 기분마저 차분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한잔 정도를 마시고 샤워를 마치고 잠자리에 누우면 잠도 잘 오고 오히려 숙면에 취하는 느낌에 요 근래는 자주 술을 하는 편이다. 하지만, 직장생활 초기에는 술을 극도로 싫어했다. 신입사원이라는 위치의 막내 사원은 부어주는 술을 억지로라도 먹어야 하는 강압적인 사내 문화가 있었고, 술을 잘 마시는 것은 성공의 한 능력인 것처럼 인정하는 분위기에서 홀로 술을 빼며 분위기를 망치기 쉽지 않았기에 몸을 사리지 않고 주는 술을 받아먹곤 했다. 화장실에 가서 두세 번 정도 토하고 나서 새벽 4시 정도가 되어야 마무리가 되던 당시를 생각하면 아직도 등골이 오싹하다. 삼겹살에 소주 한잔을 걸치고, 맥주집에 가서 맥주 한잔을 마시고, 마지막으로 노래방에서 폭탄주를 마시는 게 일반적이었다. 저녁 6시에 시작한 술판은 새벽 3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 술에 취해서도 윗 상사분들을 나 같은 대리기사분들을 불러 집으로 모시거나 택시로 보내드리고 나서야 나도 집에 갈 수 있었다. 집에 가서도 한차례 토하고 나서 힘겹게 눈을 뜨고 또 그날 저녁에 술을 마시는 일과의 반복이었다. 힘든 티도 낼 수 없었고, 술잔을 거부하기는 더욱 어려웠다. 그렇게 3,4년을 원치 않는 술을 마시다 보니 몸무게는 10킬로 이상 쪘고, 항상 피곤함이 가득했다. 간이 어느 정도 적응(?)을 할 만도 한데, 내 간은 술을 언제나 거부했다.
늘 궁금했다. 쓴 술이 왜 맛있다고들 할까? 왜 먹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술을 마시라고 그렇게 강제로 권유할까? 아직도 난 정확한 답을 모른다. 컵라면에 소주, 치킨에 맥주보다 컵라면은 김치랑 더 좋고, 맥주에는 콜라가 좋다. 나이가 들면 너도 알 거라고들 말했지만, 40이 넘는 지금도 여전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정확한 것은 알겠다. 많은 사람들이 술로 스트레스를 푸는 문화가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서서히 한두 잔 먹다 보면 음주의 횟수와 양이 늘며 과음, 폭음의 회수가 늘어나며 본인도 모르는 사이 중독이 되는 것이다. 누군가는 알코올 사용장애라고 부르던데 이러한 것들이 공격적인 언행이나 사고로 이어지고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술김에 또는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로 신체적, 언어적 폭력을 우리나라만큼 관대하게 넘어가는 문화도 문제일 것이다. 알코올 사용장애는 알코올 중독까지는 아니라도 신체적 치료가 필요한 만성 진행형 질환인 것이다. 흡연 등의 문제에는 그렇게 날을 세우면서 술에는 관대한 우리들의 문화는 난 아직도 잘 이해가 가질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 정도는 알 것 같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이기지도 못할 술에 취해 집에 오자마자 곯아떨어지면서까지 술병을 놓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서는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나와 같은 알코올 분해 능력이 떨어지는 아버지는 얼굴이 검붉게 변해서 충혈된 눈을 하면서도 기어코 술을 놓지 않았다. 기분 좋게 취하는 일도 거의 없었다.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지만 가족들에게는 들키기 싫었던 것 같다. 힘든 하루를 마치고 한숨을 쉬며 가족 모두에게 그 걱정을 남겨주기 싫었던 나머지 술로 자신을 포장했던 것 같다. 술에 취해 나도 모르게 잠들게 되면 잠시나마 무거운 짐을 놓을 수 있었을 테니까. 몸이 피곤해 눈을 감고 싶어도 막막한 현실과 걱정 때문에 눈을 감아도 뜬 것 같은 불면증에 시달릴 바에는 술에 취해 잠이라도 자는 게 더 나을 테니까. 아들이나 아내에게 고민 걱정을 시키기보다는 술 좋아하는 사람으로 오해받을지언정 가장의 쓸쓸한 모습은 보여주기 싫었을 테니까.
윈스턴 처칠은 이런 말을 했다. "술이 내게서 앗아간 것보다 내가 술로부터 얻은 것이 많다"라고.
먹고 토하기를 반복하며 절대 자의로는 마시기 싫었던 술을 나도 이제는 밤에 한잔씩을 하곤 한다. 여전히 술맛도 잘 모르겠고, 술에 취해 온몸이 벌겋게 달아오르면 술 마신 걸 후회하며 화장실로 토하러 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술병에 손이 간다. 어두 컴컴한 밤이 되면 나도 모르게 40도가 넘는 스카치위스키나, 버번위스키를 찾는다. 맛도, 향도 마시는 이유도 잘 모르는 술을, 그렇게나 증오하고 싫어하던 술을 밤이 되면 찾는다. 나도 아버지처럼 밤동안만이라도 잊고 싶은 일들이 많은가 보다. 해가 사라지고 달이 떠있는 동안만큼이라도 편히 자고 싶은 마음에 그렇게 술을 찾는가 보다. 술에 취한 손님들을 무사히 집으로 보내드리고 오늘도 난 먹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위스키를 글렌캐런 잔에 담아 휘휘 돌려보며 마신다. 힘들고 지쳤음을 들키기 싫어서 마시는 것처럼 보이기 싫어 위스키를 공부해보고 싶다는 핑계를 앞세워 향을 맡고, 맛을 음미한다.
마흔이 넘은 지금도 내 입에 위스키건 소주건 맥주건 모두 아직도 쓰기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