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가 핵가족화되고 여성 경제 활동 인구가 증가하면서 맞벌이 가정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2022년 11월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국 맞벌이 가구는 총 582만 3000가구로 10년 사이 58만 2000가구가 늘었다. 맞벌이 가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배우자가 있는 전체 가정 중 46.3%를 기록하고 있다.
맞벌이 가정이 증가하면서 양육 환경이 변했고 양육에 대한 부담이 커지게 되었다. 예전처럼 조부모가 손주를 돌보아 주던 가족 분위기도 점차 사라져 일과 자녀 양육을 병행해야 하는 워킹맘의 고통과 불안감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런데, 국가에서 제공하는 영유아 보육 지원에 비해 초등학생 대상 돌봄 지원은 상대적으로 부족하여 학교 수업이 끝난 후 또는 방학 중 초등학생 돌봄에 사각지대가 발생하게 되었다. ‘초등 돌봄교실’은 이런 사회적 요구에 의해 출발하게 되었고,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려면 저학년 아이들을 방과 후 맡길 곳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공감을 얻으면서 전국 곳곳에 돌봄 교실이 신설됐다. 국가에서는 학교와 지역사회 간의 유기적 협력을 통해 초등학생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게 되었다.
봄학교는 돌봄학교의 다른 이름이다. 사교육비와 학부모의 양육 부담을 덜어주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해 학생 간 교육격차를 해소하겠다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정부는 올해 늘봄학교를 시범 운영한 후 당장 2024년부터 전국으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한 상태인데, 학교와 교사들의 부담은 엄청나다.
정부의 늘봄학교 확대에 대해 교사들의 반발이 큰 이유는 학교가 가진 교육 기관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에 기인한다. 일반 학생들이 등교하기 전 아침 돌봄부터 밤늦은 시간의 오후 돌봄까지 종일 돌봄 체계를 운영하도록 하는 늘봄학교 운영은 한정된 학교 공간을 활용할 수밖에 없어 정규 교육과정의 파행을 불러온다. 강당, 특별교실에 돌봄 공간이 마련되면 특별실에서 진행되던 다양한 정규 교육과정 프로그램이 위축되어 교실에서 진행하거나 조정하여 실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도 ‘교사들은 행정 업무, 민원 업무를 해결한 후 남는 시간에 학생 지도에 필요한 연구를 할 수 있다’라는 말이 있을 만큼 교사들의 연구 시간이 부족한데 늘봄 학교 업무는 교사에게 또 하나의 과중한 업무 부담이다. 늘봄 학교 업무는 민원도 가장 많고 업무량도 많아 모든 교사가 기피하는 일이다.
가정에서 자녀에게 제공하는 양질의 서비스를 희망하는 학부모들의 눈에 학교의 돌봄 서비스가 만족스럽지 않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교사 한 명이 여러 학생들을 돌봐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학부모들은 소소한 불만 사항을 끊임없이 제기하여 교사들의 힘을 소진시키고 있다. 특히, 늘봄 업무를 맡게 되는 담당 교사는 직무 스트레스가 폭증할 수밖에 없다. 수업 외에도 떠안아야 하는 교사의 업무 과중은 결국 수업의 질을 하락시킨다. 행정 업무 과중과 수업의 질 하락은 고스란히 학생이 떠안게 된다.
늘봄학교가 교육 격차 해소와 부모의 양육 부담을 해소하여 국가 경제 동력을 활성화할 수 있는 긍정적 기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과 같은 교권 추락의 배경에는 학교에게 짐을 떠넘긴 돌봄 기능 역시 중요한 원인으로 지적해야 한다. 학습과 생활 지도에 역량을 발휘해야 할 교사들에게 돌봄 기능을 떠넘긴 교육 정책으로 인해 교사는 본질적인 임무를 소홀히 하게 되고 교육자로서의 권위 역시 추락할 수밖에 없었다.
학부모 역시 자녀를 안전하게 보살피고 보육에 충실해야 할 책무자로 교사를 인식하게 되면서 학교 민원을 제기하는 수위도 점점 저급해지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아이 학원 시간에 맞추어 하교 시켜 주세요.”, “우리 아이가 싫어하는 음식은 먹지 않게 해 주세요.” 와 같은 학부모 요구 사항은 이제 각 교실에서 일상적인 민원이 되었다. 지극히 사소한 문제까지 교사에게 요구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분위기, 교사의 추락한 권위는 학부모 갑질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학부모가 교사를 ‘선생님’으로 대하는 것이 아닌 ‘돌보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된 일을 정부가 방치해선 안 된다. 늘봄 학교 운영의 취지를 떠나 학교가 민원 천국이 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학교가 교육 기관으로서 제 기능을 찾도록 늘봄학교 운영은 지방자치단체로 이관되어야 마땅하다. 내년부터 전국에 확대하겠다는 성급한 시도보다 적어도 전문 인력 및 전용공간 확보가 선행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