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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작가 Oct 16. 2020

첫 의문

에세이 [진짜좋은거] / 1. 들어가며 -4

내가 행복으로 향하고 있지 않음을 알게 된 날


재미없이 공부를 하고 있던 어느 늦은 저녁, 진짜 꿈을 툭 내뱉었던 그날처럼 이날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갑자기 짜증이 났다.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의 꽁무니를 졸졸 따라가고 있는 내가 불현듯 너무 한심하고 찌질해 보였다.


“하…, 나 원 참….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내가 왜 계속 동의 해야 하는 거지? 이것들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인가? 아니면 언젠 가는 이해하고 수긍할 수도 있는 것들인가? 내가 아직 어려서, 내가 멍청해서 아직은 이해할 수 없는 걸까? 아니면 정말 말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물론 이렇게 진지하게 질문하지는 않았다.

“아으씨…” 정도의 짜증이었을 거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 때문에 답답함은 늘 있었지만 

나는 별다른 의문이나 저항 없이 그냥 잘 따르는 착한 아이였다. 


그런데 이날은 달랐다.

진리로 알려진 것들이 진리가 아닐 수도 있다는 느낌 그리고 모든 것이 도대체 왜 그래야만 하는지에 대한 의문과 불신이 생기기 시작했다.


물론 이 의문들이 내 인생을 나아지게 한 건 아니다. 

전보다 더 혼란 스러워졌을 뿐이고 차라리 그전이 나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이런 의문들에 답할 수 있는 지식이나 아이디어가 내게 있던 것도 아니니, 

그저 짜증만 더 늘었을 뿐이다.


하지만 꿈이 생겼던 그날 서재에서 내가 행복을 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처럼, 

이날은 내가 처음으로 행복으로 향하고 있지 않다는 걸알게 된 것만으로 충분히 의미 있는 날이었다.


어디서부터인지,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뭔가 잘못돼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스멀스멀….


내가 선택하지 않은 삶 속에서의 선택은

내 선택인가 아닌가?


내가 태어나기를 선택하지 않은 것처럼,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로 선택하지 않았다. 

그런데 태어나 보니 하나님은 나의 창조주이며 나는 그의 피조물이 돼 있었다. 

게다가 피조물답게 살지 않으면 나는 죽은 목숨이라고 했다.




피조물, 아들, 남자, 한국인, 직업이나 역할 등의 정체성과 교회, 집, 학교, 국가와 사회에서 배운 수많은 이념이 가랑비에 옷 젖듯 천천히 ‘나’를 만들어갔다. 


내가 충분히 이해하고 동의한 선택이 많지 않았기 때문인지, 

삶은 나 스스로 선택하며 펼쳐가는 즐거운 것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뭐, 어쨌든 난 나름 열심히 살았고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다닐 수 있었다.


전공과 직장을 내가 선택한 건 맞지만 내가 선택하지 않은 삶 속에서 내린 결정들이었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는 진짜 선택은 아니라고 느꼈다.


마치 내가 원하지 않은 도시에서, 내가 원하지 않은 식당에서 고른 메뉴가 나의 선택이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그래도 내가 선택한 건 맞잖아’라며 스스로를 타이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다 짜인 삶의 시나리오 속에서 자유 의지를 선물 받았 다는 이유로 결국 모든 것이 ‘네 책임’이라고 하는 말에 왜 그리도 서운 하던지….



내가 원하지도 않았던 그것이

얻어지지 않았을 때 느껴야 하는 감정이

도대체 무엇이어야 하는지 몰라서

여전히 답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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