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츠부르크 중앙역 [2014년 11월, 아내를 만나러 가던 길 / 잘츠부르크에서 아내와 처음 만났다]
2006년 말이었는지 2007년 초였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그날도 어김없이 아버지와의 의견 차이로 인하여 다툼으로 시작되어 다툼으로 끝났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세상으로부터 '도피'의 목적으로 유학을 가는 건 아닌가 걱정을 하셨다. 전직 군인이셨던 아버지께서는 유학길에 앞서서 나에게 대략의 계획을 원하셨다. 몇 년이 걸릴지... 재정적인 부분... 입학 전 그리고 입학 후의 계획을 대략적으로 잡아오라고 하셨다. 그 당시 내 입장으로서는 절대 말도 안 되는 것이라 생각되어, 단지 아버지께서 나의 유학길을 허락하지 않는다고만 생각했었다. 2007년 초 졸업을 앞두고 있었던 때라 아버지께서는 취업 준비를 하지 왜 계획에도 없는 유학을 결심하게 되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고 하셨다. 당시에는 어머니께서도 마냥 환영하는 건 아니었다. 당연하다.
도피라... 그래 하고 싶었다. 집을 벗어날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겠다 싶어서 찾아낸 방법이 유학이었다. 마침 주변 선후배들이 유학길에 올라 정착하면서 생활해 가는 모습이 부러웠다. 처음엔 다들 힘들어했지만, 외국의 학교만 붙을 수 있다면 시작은 할 수 있겠구나 싶어서 나도 그렇게 마음을 먹게 된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일단 어느 지역을 선택해야 하는지부터가 고민이었다. 영어가 편해서 미국 지역을 생각도 해봤지만 생활비 및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했을 때 재정적인 면에 있어서 천문학적인(?) 숫자가 나올 것 같아서 미국으로의 유학 욕심을 부릴 생각조차도 없었다.
유럽이라... 고등학교 때 배운 독일어(그렇다고 잘한 건 아니었다. 기억이 날 리가 없지... das des dem das)가 생각이 나서 독일 유학은 어떨지 생각이 들어 먼저 유학을 간, 혹은 준비 중인 선후배에게 연락을 취했다. 생각보다 소득이 있었다. 생활비도 저렴하고, 우선적으로 학비가 너무 만족스러웠다.
그래, 독일로 가자 싶었다. 독일에서는 어떻게 시작을 할 수 있을지 주변 지인들에게 문의를 하기 시작했다. 이미 정착 한 선후배에게도 연락이 닿아서 앞뒤 안 가리고 이것저것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가까스로 유학의 준비를 시작할 수 있겠다 싶었을 때 아버지와 다시 얘기를 시도했다. 2008년 1월 독일에서의 생활 1년 전부터 나의 준비는 시작될 수 있었다.
우선 독일어 학원부터 접수했다. 강남의 어느 독일어 어학원을 접수했다.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첫 달은 너무 재미있었다. 나를 포함하여 같이 수강하는 학생들도 전부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흥분이 되더라. 지금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 1년 동안 어학원을 3번 바꾼 것 같다. 주입식의 교육이 너무나도 싫어서 그랬던 것 같다. ‚도피’의 이유로 시작되어서 그런지 금방 지치기도 했다. 포기할까도 생각했었던 것 같다.
무슨 공부를 하고 싶은지가 가장 중요했다. 고등학교 당시 나의 성적으로는 한국의 어느 대학교도 지원이 어려웠기에 어머니의 권유로 시작하게 된 작곡으로 나의 한국에서의 대학생활은 시작이 되었었다. 공부를 못해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나의 대학 생활은 너무나도 행복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사실 되돌아보면 작곡에 투자했던 시간보다, 밤새 학교 연습실에 남아서 피아노를 치면서 즐거워하던 시간이 훨씬 더 많았던 것 같다. 학생 시절 총보 수업 선생님께서 지휘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하셨던 때가 생각이 나서, 지휘를 하고 싶다고 결심이 서게 되었다.
독일어 학원 등록을 마쳤던 나는 나의 스승을 찾아뵙기로 결심했다. 유학을 가고 싶다고. 나는 진지했지만 교수님께서는 그렇게 비치지 않았던 모양이다. 졸업을 앞둔 학생의 방황이라고 판단이 되셨는지, 우선 한국에서 본인 밑에서 더 공부를 하고 대학원을 마치고서도 그때에도 유학을 다녀와도 늦지 않다고 하셨다.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고 하셨다. 갑작스러운 유학 얘기에 선생님께서도 제자를 아끼는 마음에 그러셨다고 생각이 들었다. 나의 각오가 부족해 보였다고 판단이 들었던 나는 내가 얼마나 진지하게 준비하는지 보여 드려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