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좋은데 오늘 Mar 20. 2022

자작나무

By Robert Frost

로버트 프로스트는 간결한 내용의 시속에 깊은 의미를 담는 시인으로 유명합니다.


제가 영시 번역을 시작하게 된 것도 이런 프로스트 씨 덕분이었습니다. 그의 시 ‘눈 내리는 저녁 숲 가에 서서’ 를 만나고부터니까요. 사실 그 후로는 주로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번역하긴 했지만 (사실 그건 에밀리 디킨슨의 시가 너무 수수께끼 같아서 그걸 푸는 맛이 장난 아니게 좋았기 때문이었어요) 누구보다도 프로스트의 시를 좋아합니다.

      

에밀리 디킨슨의 시는 처음부터 하버드 대학교 영문학 강좌를 들여다봐야 할 정도의 난해함을 선사합니다만, 그의 시는 얼핏 보기엔 단순히 현재 또는 어느 순간의 느낌을 묘사하거나 과거를 회상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면서 누구라도 영문 자체를 읽으면서 즐길 수 있는 정도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 시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누구나 공감되는 슬픈 인생에 대한 통찰이 묻어 있기 때문에 그의 시가 주는 느낌이 인생 선배의 조언처럼 들리며 남다를 수 밖에 없더군요.

     

그런 면에서 볼 때 그가 쓴 유명한 시 ’자작나무‘는 그의 어떤 시보다도 심오하고 깊이 있는 인생 통찰을 전해 주고 있었습니다.


이 시는 읽는 이의 나이와 시대, 그리고 그가 처한 상황에 따라 굉장히 다양하게 해석되는 시인데, 이런 시적 매력 때문에 아직도 영미권의 시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시를 즐겨 낭송하며 눈물짓는 것 같습니다.


다만 이 시의 국내 번역본들이 표면적 해석에 집중하다 보니, 우리 감성에는 잘 맞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 시의 표면적 감성은 미국인들에게 꽤나 빈티지한 느낌을 줄 거라고 생각되지만 우리나라에는 잘 맞지 않거든요.


그래서 이번 번역에는 이 시가 가지고 있는 내면의 의미를 살려서 우리가 이 시를 조금 더 깊이 있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자작나무


Robert Frost


이리저리 굽어있는 자작나무들이 보인다.

곧게 늘어선 울창한 숲을 지나며,

아이들이 나무를 흔든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혼든다 하여 굽어진 채로 남아있진 않을 테니,

아마 눈보라가 그랬겠지. 우리가 보아왔던 것처럼.

빛나는 겨울날의 아침은 추위로 가득했고

비온 뒤, 물방울은 스스로 떨구더니

바람이 불어오고, 단풍 들기 시작하자

작은 균열과 같은 껍데기들.

그리고 곧 찬란한 태양이 떠올라 그 투명한 껍질을 벗겨내어

얼어붙은 눈더미 위에 산산이 부수고 쏟아내 버리면

그렇게 다시 사라질 반짝이는 조각들.

우린 아마 천국을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삶의 무게가 저 나무들을 말라버린 고사리처럼 보이게 할지라도,

꺾이진 않을 테지. 단지 한번 굽혔을 뿐이니까.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흐르면, 다시 서지는 못하겠지.

그래서 저 숲속에는 아치 모양 나무들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세월이 더 가고 나면, 저 잎사귀도 땅에 닿을 테지,

햇빛에 머리를 말리려고 고개를 넘기기 전에

긴 머리카락 늘어뜨리고 엎드린 소녀들처럼.

에둘러 진실이 말하려 했던 것처럼

사실 이 모든 것은 눈보라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난 아이들이 나무를 굽힌 거라고 생각하련다.

오랜 세월 이리저리 오가며

마을이 멀어 야구를 하지 못하는 아이에겐,

유일한 놀이가 바로 그것이었을 테니까.

여름 그리고 겨울이 오기까지, 그렇게 혼자 놀아야 했을 테니까.

아이는 한발 한발 아버지의 나무에 오르기 위해

나무를 오르고 또 내려가길 수없이 반복한다.

그들 중 가장 강해질 때까지,

그러다 지쳐서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

아이는 거기서 모든 걸 배웠다.

서둘러 오르지 않는 법과

나무를 부러트리지 않는 법.

그리고 결국 땅에 다시 내려오면, 또 그러길 되풀이했다.

나무 꼭대기에 조심스레 오르는 것은

잔이 가득 차오르도록, 아니 그 이상으로

하나 가득 채워진 고통과도 같은 것이고,

발을 내디뎌 휙 소리치게 몸을 날리는 것은

허공 속을 버둥대다가 되돌아오려는 것이다.

그랬다. 나도 한때는 자작나무에 매달렸었다.

그래서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픈 꿈을 꾸는 것인지도 모른다.

수많은 상념에 힘들어질 때마다,

그리고 인생은 길 없는 숲과도 같아서

달아오르기도 하고 거미줄처럼 간지럽기도 했지만

지나친 작은 나뭇가지에 부딪혀

한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릴 때마다.

잠시 이곳을 떠나갔다가

다시 돌아와 시작하고 싶다.

운명이 제멋대로 날 흔들어 대지 않기를

그리고 내 소원을 방해하거나

되돌아오지 못할 정도로 내쳐버리지 않기를.

사랑으로 가득 찬 바로 이곳에서,

난 이보다 더 좋은 곳을 알지 못하므로.

자작나무에 오르고 싶다.

그리고 눈처럼 휜 나무에 걸린 검은 가지에 올라

하늘을 향해서, 나무가 견디지 못할 때까지,

그래서 고개를 숙이고 나를 내려놓을 때까지.

가는 것도 오는 것도 모두 좋은 일이고,

나뭇가지에 매달린 이보다 더 힘든 이도 있는 법이므로.





Birches


BY ROBERT FROST


When I see birches bend to left and right

Across the lines of straighter darker trees,

I like to think some boy's been swinging them.

But swinging doesn't bend them down to stay

As ice-storms do. Often you must have seen them

Loaded with ice a sunny winter morning

After a rain. They click upon themselves

As the breeze rises, and turn many-colored

As the stir cracks and crazes their enamel.

Soon the sun's warmth makes them shed crystal shells

Shattering and avalanching on the snow-crust

Such heaps of broken glass to sweep away

You'd think the inner dome of heaven had fallen.

They are dragged to the withered bracken by the load,

And they seem not to break; though once they are bowed

So low for long, they never right themselves:

You may see their trunks arching in the woods

Years afterwards, trailing their leaves on the ground

Like girls on hands and knees that throw their hair

Before them over their heads to dry in the sun.

But I was going to say when Truth broke in

With all her matter-of-fact about the ice-storm

I should prefer to have some boy bend them

As he went out and in to fetch the cows

Some boy too far from town to learn baseball,

Whose only play was what he found himself,

Summer or winter, and could play alone.

One by one he subdued his father's trees

By riding them down over and over again

Until he took the stiffness out of them,

And not one but hung limp, not one was left

For him to conquer. He learned all there was

To learn about not launching out too soon

And so not carrying the tree away

Clear to the ground. He always kept his poise

To the top branches, climbing carefully

With the same pains you use to fill a cup

Up to the brim, and even above the brim.

Then he flung outward, feet first, with a swish,

Kicking his way down through the air to the ground.

So was I once myself a swinger of birches.

And so I dream of going back to be.

It's when I'm weary of considerations,

And life is too much like a pathless wood

Where your face burns and tickles with the cobwebs

Broken across it, and one eye is weeping

From a twig's having lashed across it open.

I'd like to get away from earth awhile

And then come back to it and begin over.

May no fate willfully misunderstand me

And half grant what I wish and snatch me away

Not to return. Earth's the right place for love:

I don't know where it's likely to go better.

I'd like to go by climbing a birch tree,

And climb black branches up a snow-white trunk

Toward heaven, till the tree could bear no more,

But dipped its top and set me down again.

That would be good both going and coming back.

One could do worse than be a swinger of birches.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