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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 회식이면 괜찮아.

by 자 상남자
우리를 중독시키는 것들의 겉모습은 '쾌락'이지만 그 본질은 '마비'다.
-정여울 작가 '두근두근'중에서

한때 회식이 내 일주일 중 50%를 넘나들던 시절이 있었다.


하루걸러 하루씩 회식을 했었고 매 회식마다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다음날은 뇌가 정지된 사람처럼, 살짝 데쳐진 오징어처럼 흐물흐물한 하루를 보내곤 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충전을 마치면 다시 다음날은 회식이었다.


내 몸과 가족에 대한 양심은 있어서 이틀 연속, 삼일 연속 달린(?)적은 없었는데 간혹 어쩌다, 어쩔 수 없이 연속으로 술을 입에 대게 되는 날이 있었다. 첫 잔엔 구역질 비슷한 게 느껴지고, 둘 째잔엔 술 냄새가 역하게 느껴지다 셋째잔엔 묘하게 속이 편해지는 기분이 든다. 이렇게 중독이 되는구나 싶어 더 이상 술을 허락하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내 MBTI성향이 I라는 것을 더 진하게 느끼고 있다. 예전에는 퇴근 이후에 회식이 있으면 오늘은 어떤 사람들을 만나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무슨 안주에 술을 먹게 될까에 대한 소소한 설렘과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요즘들어 퇴근 시간 이후에 내가 움직여 잡은 약속이 아닌 모임이나 회식에는 참석하려고 생각을 하는 순간부터 에너지가 소모되는 기분이 든다. 막상 가서 사람들을 만나면 반갑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게 되긴 긴하지만 그렇다고 소모된 에너지가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이왕 사람들을 만났으니 술이라도 먹자는 생각에 한 잔,두 잔 술을 말다보면 어느새 다음날 내 일정과 내 컨디션이 제대로 말려 있음을 깨닫게 된다.


어제도 회식이 있었다. 갈까말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소중한 인연들과 인사를 나누는게 좋겠다는 판단하에 별로 안내켜하는 몸을 이끌고 회식 장소로 향했다. 누가 먼저 와 계실려나 싶을때 1층에서 선배님을 만나 인사를 드렸고, 같이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입장했다. 한 분, 두 분 뵐때마다 오랜만에 안부를 물었고 그 간 보지 못하고 지냈던 세월이 걷히며 옛날 이야기, 추억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내일 아침에는 꼭 수영을 가야하니 오늘은 꼭 술을 조금만 먹어야겠다'


다짐하며, 술을 나눠먹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 두 세잔은 원래 속도로 마셨지만 그 이후부터는 술 보다는 안주, 대화에 집중했다. 다들 내가 왜 술을 적게 마시는지에 대해 궁금해할 것 같았지만 오래본 사이들이라 그런 관심은 없었다.


'그래, 이 정도만 먹어도 충분히 회식에 참여할 수 있구나'


적시기(?) 보단 대화에 집중하며 무사히 회식 1차 자리를 20시 경에 마무리하고, 2차 가는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유유히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새벽 수영을 하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아침 7:40분.


술 적게 먹는 회식도 괜찮은거구나.


엄청난 깨달음.

스크린샷 2025-03-14 134439.png 회식은 119..120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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