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을 모시고 올라왔다.
부모님과 임시로 같이 살기 시작하다. 1일 차
아침 8시에 일어나서 거의 쉬지 않고 움직이고 지금은 저녁 9시
이제 끓일 물을 올려놓고 겨우 시간이 난다.
지난 설날 전주 아버지가 넘어지셔서 고관절수술 후 요양병원에 들어가시느냐 아니면 우리 집으로 모시느냐 여러 갈등 중 아내의 고마운 결단으로 오늘부터 어머니, 아버지와의 일시적 동거가 시작되었다. 80세 이상 노인분에게 고관절 수술은 그리 어려운 수술은 아닌데 문제는 다리의 힘이 없어져서 넘어지고 뼈가 부러진 것이라서 다리의 힘을 기르지 않으면 또다시 넘어질 테고 뼈가 약하기 때문에 다시 넘어지고 그러다 보면 더 이상 걷지 않게 되어 돌아가시게 된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그래서 3형제인 우리 형제는 각자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고 그 생계를 꾸려가야 하기에 아버지를 요양병원에게 보내려 했다. 하지만 사실 이 행위가 현대판 고려장은 아닐까 내심 두려운 마음 또한 가졌다. 그러면서 애써 외면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니 좋게만 생각했다. 사실 나는 생각지도 못했지만 생각을 했다고 하더라도 아내에게 우리 집으로 모시고 오자고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낳아주신 부모님에게는 죄송한 일이지만 나에게는 내가 책임져야 할 가정이 있고 그 책임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이 깊은 아내가 불쑥 아버지 어머니를 광주에서 서울로 모시고 오자고 했다. 고마웠다. 자신이 나도 생각지 못한 일들을 지금까지 잘 챙겨주던 며느리인데 항상 어려운 일이 생기면 먼저 나서서 챙기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동안의 어머니의 투정이 쌓여서 힘들어 ㅏ기도 하고 3형제 중 둘째인 우리만 책임지고 힘든 일을 할 필요가 있겠는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요양병원 들어가시면 아버지는 더 이상 집에는 못 오실 거라고 집으로 모시자고 한다.
아버지는 참 며느리를 잘 얻으셨다. 8년 전에도 형제 모두의 노력과 나의 아내의 최고의 희생으로 아버지를 살렸는데 이번에도 아내의 결단으로 아버지는 아마도 다시 걷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리의 힘이 생겨서 꾸준히 운동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그려본다.
나에게도 힘든 생활이 시작되긴 했다. 아내의 생활에 비하면 새발의 피라서 명함도 못 내밀겠지만 그동안의 하루를 보내는 것보다는 더 많은 시간을 가족 공동의 일에 시간을 쏟아야 하고 많은 부분에 대해 신경을 더 써야 할 것이다. 아마도 블로그의 글도 자주 올리지는 못 할 것이고 책도 그전보다는 많은 시간을 보지 못할 것이다. 지금과 같은 집에서의 편안하고 아내가 나를 조력했던 생활은 끝일 것이다. 이제는 어머니, 아버지가 불편하지 않으시게 둘이 힘을 합쳐 집안일을 하고 발행하는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하리라.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산에 다니면서 코로나 이후 떨어졌던 체력을 보충해 두어서 육체적으로는 힘듦이 덜 하다는 사실이다. 체력이 좋아지니 더 많은 일을 같이 할 수 있다. 시아버지를 일시적으로나마 모시기로 한 아내의 마음이 고마운 오늘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