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9년 차, 주말 부부가 되었다.
사실 그동안에도 위태위태한 순간은 더러 있었다. 신혼 초부터 잊을 만하면 나오던 그이의 서울 발령 이야기에, 나는 줄곧 “그럴 거면 그냥 그만 둬.”라는 말로 일축했다. 배우자 없이 육아를 도맡을 생각이 나로선 전혀 없었다. “갈 거면 애는 네가 데려가라.”는 말로 더 이상의 거론을 사절했다. 가족 간 생이별을 강요하는 무자비하고 일방적인 인사 발령에 순순히 응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배우자만 바라보고 생활의 근거지를 송두리째 옮기기엔 내 개인사도 꽤나 복잡했다.
그런데 올해는 사정이 좀 달랐다. 그간의 격렬한 기세에 비해 나의 반대 의사가 한풀 꺾였다고 해야 하나. 그 사이 아이는 많이 자랐고, 그이가 없는 일상을 큰 두려움 없이 상상할 수 있을 정도로 나는 부인으로서의 자아가 왜소해진 상태였다. 차라리 퇴사를 선택하라던 엄포는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고, 가정경제에 대한 현실적 우려로 인해 잔뜩 소심해진 나만 남게 되었다. 무엇보다 나는 그이의 변화를 직감했다. 그이의 눈빛과 말투에서 낯선 공간, 새로운 업무, 달라질 인간관계에 대한 적잖은 호기심을 느꼈달까. 이번 서울행이 그이에게 직업적 성장의 계기가 될 거라는 믿음으로 마지못해 응원하기로 했다. 내조 따윈 개나 주라며 나의 자아실현에만 몰두해 있었던 지난날을 돌아보는 심정으로.
“에미도 에미지만 가족 떠나 타지 생활하는 애비가 고생이지.”
지인과의 통화 중에 무심코 흘러나온 어머님의 속내는 과연 예상대로였다. 물론 나이 마흔에 뛰어드는 서울 살이가 어찌 달갑기만 하랴마는, 적어도 평일 저녁에 누릴 수 있는 자유 시간이란 게 그이에겐 생기지 않았나. 나는 그게 너무 부러워서 미칠 지경이었다. 어머님께서 손수 만들어주시는 맛난 음식과 매일 업데이트되는 아이의 재롱을 놓치지 않는 이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이의 몫인 ‘저녁의 자유’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결국 어머님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하고 애먼 그이에게 화풀이를 했다. 앞으로 내가 도맡아야 할 집안일과 육아의 고충을 일일이 나열하며, 고생의 수위에서 내가 우위를 선점하고자 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자명한 이치를 인정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서운함에 씩씩대던 나는 치기스레 마지막 말을 보탰다.
“우리 엄마는 혼자 애 키우랴 일 하랴 내가 더 고생이라고 생각할 거야.”
떠나기 전 주부터 그이는 계속 늦게 귀가했다. 송별의 정을 너그러이 이해하는 마음으로 며칠간 인내하던 나는 떠나기 직전 밤에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짐은 언제 챙기려고 그러느냐, 직장동료고 친구고 나발이고 가족들 얼굴 한 번 더 볼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니냐, 내일 너 혼자 가라, 등의 말을 쏟아 놓으며 전화기를 붙잡고 꺼이꺼이 울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그이가 한달음에 집으로 달려왔다.
술기운에 벌개진 얼굴을 들이밀며 연신 사과를 해대는 그이를 보자니 그쳤던 눈물이 다시 솟구쳤다. 우리 둘을 번갈아 쳐다보며 어리둥절해 하는 아이를 보고는 잠시 멈칫하는가 싶더니 별안간 그이가 울기 시작했다. 연애와 결혼 기간을 통틀어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나는 그이의 눈물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이 사람도 저리 울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하는 당혹감에 내 눈물은 쏙 들어가 버렸다. 머쓱해진 나는 상황을 대충 얼버무리고는 세수한다는 핑계로 자리를 떴다. 아이를 매일 보고 만질 수 없다는 슬픔과 내가 분별없이 내뱉은 감정의 잔해를 곱씹느라 그이는 꽤 오랜 시간을 그러고 있었다.
서울로 떠나던 날엔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너 혼자 가라던 지난밤의 엄포가 무색하게도 나는 그이를 총총히 따라나섰다. 함께 방을 치우고 물건을 정리하고 각종 생필품을 사 넣으며 그이가 그곳에서 홀로 보낼 시간들을 상상했다. 그리고 나 혼자 집으로 되짚어가야 할 시간에 대해서는 애써 상상하지 않으려 했다.
“밥 잘 챙겨 먹고. 도착해서 전화할게.”
더없이 담백한 이별이었다. 문제는 엄마가 보낸 문자 메시지였다.
“내려오는 중이니? 어쩌냐, 허전해서….”
부지불식간 차오른 눈물이 한 번 흐르기 시작하니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그이가 없는 일상이 도무지 무사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한껏 청승을 부리던 중에 평상심을 되찾아 준 것은 주말부부 3년 차 친구의 문자 메시지였다.
“애틋하다, 애틋해. 나도 그럴 때가 있었는데 요즘엔 오면 귀찮다, 얘.”
그이가 없는 저녁마다 나는 그의 빈자리를 마주했다. 든사람 자리는 몰라도 난사람 자리는 안다고, 그이 몫의 일상을 나는 새삼 의식해야 했다. 동시에 그이가 누리고 있을 ‘저녁의 자유’에 대해 부러움이 스멀스멀 밀려오기도 했다. 허전한 자유를 누리는 게 나을지 충만한 구속을 누리는 게 나을지 저울질하는 사이, 돌아보면 주말이었다.
그간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주말부부의 삶을 정작 내가 살아보니 보이는 게 많아지기도 했다. “우리, 주말부부 됐어.”라는 내 말에 왜 다들 더 묻지도 않고 “혼자 애 키우랴 일하랴 힘들겠다.”라고만 하는 걸까. 부부가 떨어져 지내야 한다면 육아나 자녀 교육은 으레 엄마 책임이라는 걸까. 만약 내가 타지방으로 발령받은 상황이었다면 아이는 아마도 내가 데려가지 않았을까. 이토록 비대칭적인 역학관계 속에서 아이 있는 주말부부의 삶은 결코 녹록치 않을 터였다.
우리는 앞으로 얼마나 떨어져 살아야 할까. “없으면 허전한데 오면 귀찮아요.”와 같은 말을 하는 순간이 나에게도 올까. 지금으로선, 아웅다웅 다투더라도 매일 얼굴 맞대고 살을 부비며 일상을 공유할 그날이 얼른 다시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