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노력의 길

릴케의 편지

by 아름


“선생님도 해 보세요. 이거 생각보다 어려워요!”

주어진 형용사 카드 중에서 자신에게 어울리는 단어 세 개를 골라 자기소개를 해보자고 했더니, 한 아이가 난감해 하는 얼굴로 볼멘소리를 한다. 약간의 민망함과 학습된 겸손의 자기 검열을 거쳐 내가 신중하게 고른 카드는 ‘밝은’, ‘다양한’, ‘뜨거운’이었다.

그날 저녁 신랑과 맥주 한 잔 하며 하루 일과를 나누던 중, 문득 낮의 일이 떠올라 서로에게 어울리는 형용사를 한 번 써보자고 했다. 이때다 싶은 얼굴로 피식 웃으면서도, 그가 한참을 진지하게 써 내려간 결과는 다소 참담했다. ‘고집불통인’, ‘열정적인’, ‘세상물정 모르는’, ‘자기중심적인’, ‘감정기복이 심한’, ‘욕심이 많은’, ‘호불호가 강한’, ‘자유로운’ 등이었기 때문이다. 막힘없이 꽤 많이 써내려 간다 싶었는데, 개중에 그나마 긍정적으로 해석될 만한 단어는 두어 개 남짓이었다. 그렇다고 딱히 반박할 말을 찾지는 못해서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내가 내뱉은 말은 이거였다.

“그래, 역시 당신은 나를 잘 아는군.”




나는 스물여덟에, 내 남동생은 서른에 결혼했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결혼한 우리 남매를 두고, 때때로 엄마의 친구 분들이 ‘어떻게 그렇게 빨리 해치웠냐.’는 식의 부러움 섞인 질문을 하시곤 했는데, 그럴 때면 엄마는 이렇게 대답했다.

“집구석이 재미있어봐라, 그리 빨리 갔겠냐.”

그러고 보면 엄마 말이 아주 틀린 건 아니다. 나도 실상은 독립을 꿈꾸며 결혼을 선택한 것이었으니까. 아버지는 무뚝뚝하고 자기중심적이고 다혈질의 성격에 술을 즐기시는 분이었는데, 나는 철저히 엄마 편으로 살아왔다. “나는 우리 아빠 같은 사람이랑 결혼할 거야.”라고 말하는 친구들을 보며, 그런 아빠랑 살아서 참 좋겠다 싶다가도 이내 의기소침해지곤 했으니까. 그래서인지 나에게 이상적인 남성상은 아버지와 모든 면에서 반대여야 했다.

내가 지금의 신랑에게 매력을 느낀 것도, 결혼을 결심한 것도 그가 내 아버지 같지 않아서였다. 아버지의 심기를 건드리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으려 내내 조심하고, 아버지의 늦은 귀가에 노심초사하던 엄마를 보며 덩달아 밤을 지새운 날들이 많았던 나로서는, 그와 함께 하는 시간이 더없이 아늑하기만 했다. 그동안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나의 내밀한 욕망들, 미처 깨닫지 못한 나에 관한 진실-예를 들면, 그토록 불만스러워했던 아버지의 모난 면을 내가 적잖이 닮았다는 것-을 나는 안전한 관계 속에서 자연스레 마주했다. 그는 억지스럽지도 요란하지도 않았고, 깊고 신중한 배려로 나를 수용해 주었다. 그와 마음껏 사랑하는 동안 나는 내 안의 고통을 비워내며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나로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엄마는 현실적인 조건 면에서 내가 좀 더 욕심을 부리기를 원했고, 결혼을 두고 만만찮은 마찰을 겪어야 했다. 직업, 학력, 수입 등을 기준으로 배우자감 선호도를 매기는 결혼 시장에서 ‘여교사’가 가지는 경쟁력이랄까, 그래봐야 맞벌이의 안정적인 유지와 여성의 육아 전담을 동시에 기대하는 세속적 통념에서 비롯한 것일 테지만…. 아무튼 나는 그 모든 것에 반발심이 들었다. 그즈음 엄마가 했던 말을 기억한다.

“네가 한 선택이야.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

엄마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는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엄마의 그 말은 꽤 오랜 시간 나를 괴롭혀 왔다. 퇴로가 막힌 사랑의 시작에서 나는 행복해야 했고, 내 선택은 옳은 것이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내가 가장 상처를 준 사람은 바로 신랑이었다.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결혼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낭만적인 허울 속에서 나는 그에게 일방적으로 많은 것을 바라기만 했다. 내가 그를 선택한 이유가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서였을까. 그는 내 모든 것을 이해해 줄 거라는 생각이 오만과 착각이었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걸까. 결혼 후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인습과 마주하면서, 아이를 낳고 가히 지각 변동이라고 할 법한 일상의 변화를 겪으면서, 나는 내 자아를 잃지 않기 위하여 자주 이기적이었다. 그리고 그런 부자연스럽고 불완전한 행복을 누구에게라도 인정받고 싶어서 함부로 그의 경계를 침범하곤 했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소홀할 수 있음을 나는 여러 번 간과했던 것이다.




결혼을 앞둔 어느 날, 동료 선생님께서 불쑥 하신 말씀이 있다. 꽤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신 분이었는데, 결혼을 결심하며 했던 생각이 ‘이 사람이 완전무결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아. 지금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이 사람일 뿐.’이었다는 것이다. 설사 이혼을 하더라도 혼자서도 충분히 잘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결혼을 한 것이라고 하셨다. 결혼은 선택이지 필수가 아니라는 말도 덧붙이면서…. 늦지 않았으니 결혼을 재고해보라는 말인지, 결혼 선배로서 뜻깊은 조언을 해주신 것인지 아리송한 상태에서, 한 달 뒤 나는 결혼을 선택했다.

한동안 잊고 있던 그 말이 프란츠 카푸스에게 보낸 릴케의 편지를 읽으며 불현듯 떠오른 것은 이제야 그 의미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전혀 융합이나 헌신 그리고 상대방과 하나가 되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아직 순화되지 않은 존재, 마무리되지 않은 존재, 아직 독립하지 못한 존재끼리의 합일이 도대체 무엇이겠습니까? 사랑은 개인이 성숙하기 위한, 자기 안에서 무엇이 되기 위한, 하나의 세계가 되기 위한, 즉 상대방을 위해 자체로서 하나의 세계가 되기 위한 숭고한 동기입니다.’

릴케는 상대방에게 섣불리 자신을 내맡기며 고독하지 않게 사랑하는 태도, 삶의 수많은 가능성을 상실하게 하는 쉽고 경박한 사랑의 태도를 경계했다. 그렇다면 나의 사랑은, 나의 결혼 생활은 어떠했나. 나는 사실 내 고유성을 지키기 위해 그의 고독을 존중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랑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사랑을 구하기만 하고, 사랑을 행하려는 노력은 외면했는지도 모르겠다.


무언가가 어렵다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그 일을 하는 이유가 되어야 한다면, 누군가와 사랑하며 사는 것이야말로 반드시 해야 할 인생 최후의 과제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도 나에게 사랑이란, 나 스스로를 갈고 닦는 과제가 되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겠다. 홀로 하나의 세계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실은 상대방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함을 늘 기억하면서…. 사랑에는 다양한 관계와 방식이 존재하고, 그 중 내 선택이 결혼이었으니, 이왕지사 그와 나의 얽힘이 만들어낸 모든 관계 속에서 차곡차곡 우리의 매일을 쌓아가야지. 릴케의 말처럼 우리의 사랑도 언젠가는 ‘각자의 고독이 서로를 보호해 주고, 서로의 경계를 그어 놓고 서로에게 인사를 하는 사랑’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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