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의 역사

나를 설레게 하는 순간들

by 아름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강렬한 설렘은 한 통의 전화 때문이었다. 초등학생이었을 때 내심 마음에 품고 있던 K라는 남학생이 있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감정을 숨기는 재능이 없는 나는 늘 누군가를 티 나게 좋아했다. "OO있나요? 저, OO친구인데요."라며 집 전화로 연락하던 시절, 난 뜻밖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저기, 그동안 말 못한 게 있는데, 사실 나, 너 좋아해.”


수화기 너머 전해진 느닷없는 고백에 나는 한참동안 어안이 벙벙했다. K였다. 대답이나 제대로 했는지 모르겠다. 떨리는 손으로 수화기를 내려놓고는 한껏 달뜬 얼굴로 온 집안을 이리저리 서성였다. 족히 한나절을 배시시 웃기만 하다가 밤마저 꼬박 새웠던 그 어린 날, 장난을 친 친구가 여자애였다는 걸 알았을 때 남녀 분간도 못할 정도로 분별력을 상실한 내 자신을 얼마나 책망했는지 모른다. 어쨌건 그토록 강렬한 설렘은 내 인생에 다시없을 정도였다.


그날 이후로 난 K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그게 장난전화였다는 걸, 나를 좋아한다고 조심스레 말하던 목소리가 K의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나서도 나는 여전히, 아니 그전보다 더 K를 좋아하게 되었다. 수화기 너머의 그 목소리가 끊임없이 K에게 오버랩 되면서 실제로 K가 날 좋아한다고 착각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할까. 아니면 그냥 누군가를 마음 깊이 좋아하는 일 자체를 즐기게 됐다고 할까. 하여간 K는 내 유년시절의 삶의 의미였다.




첫 연애, 첫 키스의 추억은 다소 진부하니 차치하기로 하고, 내 기억 속 또 다른 강렬한 설렘은 지금의 신랑과 연애하던 시절에 과감히 떠난 해외 밀월여행 때문이었다. 이건 좀 다른 성격의 설렘이었는데, 내가 마치 금지된 사랑의 불장난을 하는 여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외박은 물론이고 늦은 귀가에도 제약이 많았던 나로서는 애인과의 해외여행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는 일이었는데, 때로는 스스로도 감당치 못할 만큼 과감하게 덤비는 구석 또한 있어서 나는 꽤 치밀한 계략을 세웠다. 부모님도 다 아시는, 오래된 친구들과의 여행이어야 했기 때문에 미리 그 친구들의 도움을 구한 것은 물론이고, 현지에서 불시에 받을지도 모르는 부모님의 연락에도 나름의 대비책을 철저히 세워 놓았다.

여행을 떠나기 전날 밤 나는 이런저런 생각들로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물론 애인과의 여행에 대한 엄청난 기대감과 설렘도 존재했겠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왠지 모를 죄책감과 두려움 때문이었다. 착하기만 한 딸로 살아왔던 내가 그런 발칙한 거짓말을 끝도 없이 늘어놓았다는 죄책감,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 돼버린 데 대한 두려움과 약간의 후회, 조만간 부모님께 들통 날지도 모른다는 조바심, 그리고 나의 이런 불효막심함을 하늘이 괘씸하게 여겨 행여나 비행기 사고가 나거나 현지에서 큰 사고에 휘말려 죽을지도 모른다는 망상 등이 나를 밤새 괴롭혔던 것이다. 그때의 나는 여전히 모범적인 쫄보였다.


다행히도 나는 무사히 여행을 다녀왔을 뿐만 아니라 여행지에서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고 왔기에, 더욱 과감하고 저돌적인 여자가 되었다. 그 뒤로 나는 국내와 해외를 가리지 않고 더욱 담대하게 애인과 여행을 다녔다. 그 애인이 지금은 신랑이 되어 버려서 더 이상 애인과의 여행이 불가능해졌다는 사실이 매우 아쉬울 뿐이다.


나는 여전히 그 모든 여행의 실제 동반자를 부모님께 털어 놓지 않았는데 앞으로도 계속 그 비밀을 유지할 생각이다. 언젠가 예기치 못하게 탄로가 나더라도, 혹은 지나간 일에 대한 너그러운 용서를 기대하며 스스로 진실을 밝히는 날이 올 때까지, 나는 착한 딸로서의 삶을 좀 더 유예하고 싶다. 그런데 불현듯 떠오른 생각. 이 모든 것을 부모님께서 이미 알고 계실지도 모른다는 것. 혹시 알고도 모른 척 해주신 것은 아닐까. 아, 갑자기 무서워진다.




이외에도 내 삶에는 숱한 설렘의 순간들이 존재했다. 첫 출근을 하던 날, 결혼을 앞두고 신혼살림을 하나씩 준비하던 나날들, 임신을 하고 출산을 기다리며 아기 용품을 서툰 솜씨로나마 직접 만들던 시간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설렘이라는 감정은 온전히 설렘으로만 다가오지 않았다. 때로는 설렘과 함께 오는 다른 감정들, 두려움이나 걱정 따위에 짓눌려 설렘 자체를 고스란히 즐기지 못했다. 경험치가 쌓이고 아는 것이 많아지면서 어떤 일의 수순이나 결과가 어렵지 않게 짐작되어 그런 것일까. 진한 설렘의 경험이 드물어지는 것은 내 삶에서 미지의 영역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증거이진 않을까.

어쩌면 지금부터는 시간과 마음을 내어 나를 설레게 하는 일들을 찾아다녀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지난해 가을부터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나의 과거와 현재, 내 주변을 지키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짧지만 솔직한 글을 쓴다. 쓰기 전에는 막막하고, 쓰는 동안은 괴롭고, 쓰고 나면 생각이 정리되는 경험을 매주 하고 있다. 부유하던 생각들을 구체화시켜서 글로 풀어내고 나면 머릿속이 명쾌해지면서 뭐랄까, 마치 쾌변을 한 듯한 느낌이 든다. 이런 걸 ‘글똥누기’라고 한다는데, 정말 기가 막힌 표현이다.


기존의 인연을 돌보는 것만으로도 벅차다고 생각했었는데, 글벗들을 만나면서 새로운 인연은 삶을 관성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걸 알게 됐다. 주변의 모든 것에 민감해지려는 사람들, 자신을 돌보고 삶을 가꿀 줄 아는 사람들과 함께 있다 보면, 적어도 가슴 뛰는 설렘을 잊고 반복되는 일상에 매몰되는 일은 없겠지 싶다.


글벗들을 만나는 날, 나는 다시 소녀가 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