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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길 Oct 19. 2020

연옥님이 보고계셔(억수씨) : 삶을 설득시키는 작품

한 인물이 어떤 상황에 던져졌을 때 어떤 감정이 들었을지를 상상하고, 그 상상을 기반으로 표정과 몸짓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점에서 만화 작가는 배우의 면모를 지니고 있다. 연기를 해야 하는 인물이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만화를 그리는 일이 얼마나 고된 상상력을 요구하는 작업일지 쉽사리 상상이 되지 않는다.

‘배우가 인물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는 극의 설득력과 직결된다. 아무리 이야기의 짜임새가 좋다고 하더라도, 이야기 안에서 배우가 겉도는 것이 느껴지면 관객은 극에 몰입을 할 수 없다. 반대로 이야기의 짜임새가 조금 떨어지더라도 배우가 인물 속에 들어가 있으면 관객은 그 배우가 연기를 하는 순간만큼은 극에 몰입을 할 수 있다. 관객은 배우를 통해 무대 위의 사건을 바라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인물의 감정을 상상하는 일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기에, ‘이야기를 만들어 보자’라고 생각을 하면 보통 ‘내가 겪은 이야기’를 먼저 떠올린다. 낯선 세계에서 낯선 인물이 겪을 감정을 상상하는 것보다는 나의 경험 속에서 나의 감정을 떠올리는 게 쉬울 테니. 하지만 오히려 자전적인 이야기로 관객을 설득하는 일은 훨씬 어렵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나’의 감정을 깊게 분석하는 일이 무척이나 괴로운 과정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강렬한 감정은 결핍에서 나온다. 따라서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선 우선 자신의 결핍을 이해해야 한다. 괴로운 일이다. 자신의 가장 아프고 약한 곳을 집요하게 파헤쳐야 하니까. 그리고 그것을 관객에게 그대로 꺼내서 보여줄 용기도 필요하다. 이 작업으로부터 도망가는 순간, 관객은 ‘저건 너의 이야기’라고 느끼며 작품과 선을 긋는다. 관객을 설득시키는 데 실패하는 것이다.

만화 ‘연옥님이 보고계셔’를 후반부만 뚝 떨어뜨려놓고 봤다면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라는 생각이 들만큼, 주인공의 감정과 행동은 비이성적이다. 하지만 작품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본 독자라면 ‘남들은 몰라줄지 몰라도, 적어도 나는 당신의 말과 행동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억수씨는 자기의 이야기로 독자를 설득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더 나아가 작가의 삶에도 설득이 됐다. 얼마나 강력한 설득력인가.

이런 설득력은 작가 본인이 자신에 대해 상당히 많은 부분 이해하고 있으며, 이것을 당당하게 꺼내어 보여줬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온전한 이해에 기반한 설득은 엄청난 힘을 가진다. 인물이 갑자기 이상한 말과 행동을 보여도, 카메라가 갑자기 생뚱맞은 풍경과 사물을 비춰도, 대사 없는 장면들이 그냥 스쳐지나가도, 이 모든 것이 설득을 위한 강력한 장치로 활용될 수 있다. 그야말로 ‘자유로운 설득’의 경지에 다다르는 것이다. 바로 이 자유로운 설득이 억수씨의 만화가 갖는 무기이자 개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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