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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이날 Jul 30. 2021

내가 아이였을 때

돌이켜보면 그립지만 늘 혼자있던 어린 내가 안쓰러울 때

 내가 일곱 살이었을 때, 엄마, 아빠는 부산 덕천동에서 전기철물점을 운영하였다. 때마침 호경기였고 장사는 그럭저럭 잘 되었다.

물 들어올 때 노 젓기, 돈 한 푼 없이 빚으로 시작한 그들에게 가난을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노동에 오롯이 시간을 쏟아붓는 것이었을게다.  아침 일찍 문을 열고 밤 늦게 문을 닫는, 요즘 말로 저녁이 없는 삶.

덕분에 나는 오빠와 단 둘이 저녁을 차려먹고 잠드는 일이 많았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철물점이 집앞 4차로만 건너면 되는 거리였달까. 


 그런 생활이 익숙하던 차, 나는 국민학교 3학년이 되었고 우리 철물점에서 50미터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안경점의 딸 호선이와 친구가 되었다.

 호선이는 그때 막 지어진 맨숀에 살았는 데, 그곳은 내가 사는, 말이 단독이지 여러 가구가 혼재해 사는 오랜 주택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멋진 곳이었다.

그곳은 세련된 외관에 걸맞게 날씬하고 지성미 넘치는 사람들만 사는 곳이었다. 죠다쉬 양말을 신고 위아래 흰색 세트 운동복을 입고 헬스장에 다니는 멋진 아줌마들이 사는 곳이었다. 손톱에 늘 검은 기름물이 들어 손내밀기를 부끄러워하는 우리 엄마같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 아니었다.

 

호선이 엄마는 세련된 맨숀에 사는 신여성이었다. 우리 엄마와 달리 하얗고 예뻤고, 무엇보다 우리 엄마가 나를 혼낼 때의 그악스러운 목소리와는 결이 달랐다. 그녀는 화를 낼 때도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부잣집 사모님처럼 고상함을 잃지 않았달까.

 나는 진심으로 호선이 엄마가 나의 엄마이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호선이네 집은 세련된 맨숀에 걸맞게 훌륭한 흰색 냉장고에 큰 스쿱으로 보름은 매일 퍼먹어도 될 만한  대용량 아이스크림을 쟁여놓는 떡잎부터 다른 집이었다. 게다가 바닐라, 초코, 딸기의 구색까지 척척 삼박자를 고루 갖춘 격식있는 집이랄까.

 나는 매일 하교 후에 호선이네 집 벨을 눌렀다. 호선이가 학원가고 없는 줄 뻔히 알면서도.  왜냐하면 자상하고 따뜻한 호선이 엄마가 날 그냥 보내는 일은 없었으니까. 나는 호선이네 거실에 또는 현관 문턱에 앉아 호선이 엄마가 긴 플라스틱 컵에 담아준 아이스크림을 싹싹 비우고 집을 나섰다. 호선이 엄마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도 미주알고주알 다 일러바치고 말이다. 호선이 엄마는 나를 보고 자주 웃었다. 진짜 엄마처럼 푸근하게 또 예쁘게. 맨숀같은 엄마였다. 


 나는 어른이 되었고 호선이 엄마의 나이 즈음이 되었고, 어렸을 때 일어나고 겪었던 많은 일들을 잊어버렸다. 드문드문 또는 많은 해가 기억에서 통째로 날아가버려 추억할 것도 드물어졌다. 하지만 보랏빛 향기 강수지처럼 청초하고 따뜻했던 호선이 엄마와 시장에서 물건을 사며 쭈뼛쭈뼛 오천원을 내밀던 기름때 낀 엄마의 부끄러운 손은 잊히질 않는다.


 일을 많이 해서 퉁퉁 부은 젊은 엄마의 손.  


 우리 엄마는 지금도 열심히 일을 한다. 새벽5시에 택시를 타고 요양병원으로 출근해서 뜨끈한 밥과 맛있는 반찬들을 만든다. 엄마는 일을 많이 해서 가운데 손가락이 한쪽 방향으로 휘어있다. 젊을 때처럼 손톱에 검은 기름때는 없지만 여전히 퉁퉁붓고 거기에 주글주글한 주름이 더해졌고, 까칠함이 묻어있다. 이제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고상한 사모님처럼 늙기는 아예 글렀다.


내가 촌스럽기 그지없다는 빨간색, 핑크색 옷을 좋아하고 목소리가 커서 누가 들으면 싸우는 줄 아는 씩씩하면서도 톤 높은 갱상도 사투리가 오진, 앙칼짐으로 했던 말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면서 노후를 보내시겠지......

 

옛날에는 먹고 살기 바빠서 딸한테 사랑한다는 말도 못했다는 우리 엄마가 내게 말했다.

"우리 딸 사랑한다, 아프지말고 건강해라"라고...... 


나는 민망해서 알았다고만 했다.


엄마는 먹고 살기 힘들어서 소통을 못했다는 데, 사실 나는 혼자 놀던 아주 어린 시절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엄마가 나를 아주 많이 사랑하고 있는 걸 말이다. 또 절대 호선이 엄마와 바꾸지 않을 거란 것도 말이다. 그리고 또 우리 엄마는 '사랑'이란 달달한 단어와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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