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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윤 Jul 16. 2023

불안정 회피 애착도 잘 살아요

성인애착

  글을 읽다 보면 흠칫 놀랄 때가 있어요. 어? 이거 내 이야기인데? 나도 이때 이러는데! 하며 작가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싶은 순간! 방구석 독자인 저는 겸손한 세리머니로 밑줄을 긋고 인덱스를 붙이곤 하죠. 내 경험이나 생각과 맞닿은 문장을 만날 때면 언제보다 반갑게 밑줄을 긋게 돼요. 그 문장들은 내 머리에서 형태가 없이 떠돌아다니던 생각들을 핀셋으로 콕 집어서 각각에 정선된 단어를 붙여 짜임새 있게 엮어준 것이잖아요. 그제서야 내 생각도 인정받고 공감받는 것 같고 의미를 갖게 되는 것만 같아요. 문장의 힘은 그런 것 같아요. 생각들에 중력의 힘을 부여해 주는 것. 내 생각에 대한 문장을 만나는 건 그래서 참 고마워요.



  불편한 문장을 마주할 때도 있어요. 이거 내 이야기인 게 확실한데 동시에 내가 아니었으면 좋겠는 마음. 나도 무의식적으로 감추려고 했던 내 모습을 문장으로 만나버리면 나는 불편해져요. 흠칫 놀라죠. 이윽고 서둘러 들키지 말아야지 하고는 의연한 표정 뒤에 나를 감추죠. 그래도 궁금해요. 나는 언제나 내가 궁금하잖아요. 나를 설명하는 것만 같은 그 불편한 문장들을 들춰볼 수밖에요. 그리곤 몰래 인정하곤 해요. 그리고 나만 알고 있어야지 하고는 호주머니 속에 쏙 넣어두곤 했어요.



  '불안정', '무시형'이 2 단어를 보는 순간 제가 그랬어요. 들킨느낌. 모른 척 살아왔는데 어쩌면 이미 세상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던 것만 같은 느낌. 불안정이라는 단어가 주는 그 불편함. 왠지 나는 결핍으로 가득한 사람인 것만 같아 순간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더라구요. 그 안온한 단어, 안정애착. 그 단어가 그렇게 부럽기도 하구요. 내 표정은 어떻게 감추었지만 내 마음은 약간은 붉으락푸르락하고 있는 걸 나에게는 들켰지 뭐예요.



  나만 그런 게 아니더라구요. 애착을 주제로 한 강의에서 서두는 한 번쯤은 들어봤을 오리를 통한 로렌츠의 각인이론이나 여러 연구들에서 레퍼런스를 가져와서 애착 발달을 설명하곤 하죠. 이때는 평소와 같아요. 또 이론이구나. 심리 배울 줄 알았더니 또 이론가들 이름만 외우겠구나 하는 그 마음들이 보이죠. 그러다가 애착 유형을 구분하는 내용이 나오면 몇몇 학생들이 흠칫 놀라는 게 보여요. 아주 은밀하게 흠칫 놀라다가 표정 관리를 한 후, 수업자료에 대한 눈빛에 좀 더 힘이 실려요. 내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대게 안정애착을 형성했다고 믿는 학생들은 편안해 보이지만 불안정 애착 유형이 소개되면 흠칫 놀라는 학생들이 보여요. 저도 그랬었어서 그게 보이는지도 모르겠어요.



  애착(attachment)은 유아가 갖는 양육자와의 친밀한 정서적 유대예요. 유아는 주양육자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내가 과연 사랑받을만하고 가치 있는 존재인가에 대한, 자기 자신의 신념을 만들어나가죠. 유아들이 주로 상호작용하는 대상이 주양육자이기 때문에 그들과의 관계가 어떠했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애착 유형을 형성해요. 주양육자가 내가 울거나 웃을 때 얼마나 내 변화를 알아채주고 일관되게 반응해 주었느냐에 따라 안정(secure) 애착, 불안정 회피(insecure-avoidant) 애착, 불안정 저항(insecure-resistnat) 애착, 혼란(disorganized) 애착이라는 서로 다른 애착 유형을 형성하게 되죠.



 

 자신이 웃거나 울 때, 주양육자가 내 변화를 알아채주고 일관되게 반응해 줄 때 아이는 부모를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여겨요. 또 나 자신이 사랑과 보살핌을 받을만한 존재이구나! 하는 자신에 대한 가치감이 생겨요. 이런 아이들은 안정애착을 형성하죠. 하지만 어제 내가 울 때는 달래주더니 오늘은 쳐다보지도 않는다던지, 내가 웃어도 주양육자는 반응이 없으면 내 가치감과 세상에 대한 신뢰가 어느 정도는 줄어들게 되는 거죠. 이 아이들은 불안정애착을 형성해요.



  이 신념은 이후 성인기에까지 영향을 미쳐요. 신념은 쉽게 바뀌지 않으니까요.

  '세상은 믿을만한 곳이야. 혹은 이 사람은 믿을만해. 나는 중요하고 사랑받을만한 사람이야.'

하구요. 유독 연애를 할 때 상대를 의심한다거나 내 고민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잘 털어놓지 못하는 친구들은 아마도 유년기에 불안정 애착을 형성했을 가능성이 있죠.



  저는 후자예요. 전 제 이야기하는 게 어색한 사람이거든요.


  '내 이야기를 하는 게 얼마나 의미 있겠어?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하는 거지. 내 책임이지.'

  '이 일이 누구에게 말할 만큼 별일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도 있구요. 사실은 많은 순간 상대에게 할 내 이야기가 생각나지 않아요. 감추는 게 아니에요. 이제는 정말 할 내 이야기가 생각나지 않아요. 간혹 생각이 나더라도 한참 이야기하고 있는 상대 앞에서 타이밍 잡기도 어렵구요. 무엇보다 안 하던 행동은 결국 어색해지다가 퇴화하니까요. 제겐 제 이야기를 남에게 하는 게 퇴화된 것 같아요. 친한 친구들도 제가 언니가 있는 줄, 동생이 있는 줄 한참 나중에 알게 된 경우도 많았어요. 가족이야기, 내 마음속 고민들은 언제나 제 안에 있었죠.



  내 이야기는 나에게만 의미가 있지 다른 사람에겐 별일 아니라는 생각은 자연스럽게 관계에서도 번져있었어요. 제 인간관계는 점조직에 가깝거든요. 사람을 일대일로 만나는 걸 좋아해요. 낯을 가리는 성격도 있지만 4명 이상의 모임이라면 저는 바로 생각해요.

  '내가 갈 의미가 있나? 내가 그 모임에 그렇게 중요한 사람 같지는 않은데?'

하고 빠질 궁리를 하죠. 물론 친목을 목적으로 하는 모임에서요. 빠질 궁리만 하다가 결국 참석하게 된 5명 이상의 모임에서 저는 거의 듣고 있는 편이죠.



  물론 유리한 점도 있었어요. 독립적이었죠. 중요한 문제를 스스로 고민하고 선택했어요. 학창 시절엔 공부나 숙제하라는 말은 들어본 기억이 거의 없어요. 밀려서 하든 계획을 세워서 하든 내 책임이라 여기고 알아서 했고 끝까지 해냈죠. 조금 심한 에피소드라면 신입 시절, 월급날까지 일주일이 남았는데 10만 원이 부족했던 적이 있었어요. 가장 쉬운 길은 함께 살고 있던 부모님께 말씀드리면 되었겠죠. 그 당시만 해도 취업을 준비하던 언니와 대학생인 동생은 매달 부모님께 용돈을 받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저는 그 10만 원을 어디서 구할까 하다가 카드 신용대출을 받았던 적도 있어요. 그만큼 내 일을 남에게 말하기보다 제가 처리하려고 했죠. 누군가에겐 어이없는 행동이지만 저는 그랬어요. 일주일 만에 바로 갚고 나서 마음이 편했죠. 지금도 다음 달의 저에게 부담주기 싫은 마음에 체크카드와 현금만을 사용하곤 해요. 이쯤 하면 저 조금,,, 과한가요.



  이런 저, 유아기라면 불안정 회피애착에 속하죠. 이후 Brennan과 동료들에 의해 정리된 성인기 애착 유형에서도 저는 애착 무시형(dismissing)에 속했어요. Brennan과 동료들은 내가 사랑과 보살핌을 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인가?라는 차원과 타인은 믿을만하고 나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인가?라는 차원을 긍정과 부정으로 조합해서 4가지 성인 애착 유형을 설명했거든요. 잠시 살펴볼까요?



  안정형(secure)은 자신도 긍정하고 타인도 신뢰하는 사람이에요. 나는 사랑받을만한 사람이고, 타인은 내 요구에 반응하고 수용하는 사람이라고 여겨요. 안정이고 신뢰로운 대인관계를 형성할 가능성이 높죠.


  집착형(preocccupied)은 나는 부정하면서 타인은 신뢰하죠. 나는 남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거나 나를 인정하지 못하는 면이 있어서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아야 안심이 돼요. 그러다 보니 타인이나 타인의 평가에 의존하는 성향을 보이죠.


  공포형(fearful)은 자신도 부정하고 타인도 부정하는 유형이에요. 나도 사랑받은 가치가 없고 타인도 믿을 수 없어요. 이런 사람들은 친밀한 관계를 맺기 어려워하죠.


  애착 무시형(dismissing)은 나는 긍정하지만 타인은 신뢰하지 않아요. 나는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인데 타인은 믿을 수 없다고 여기죠. 관계에서 실망하지 않으려고 의존하기보다는 독립성을 강조하는 유형이에요.



 '안정'이라는 편안한 단어 대신 '불안정', '무시형'이라는 단어 딱지가 붙으니 좀 불쾌하더군요. 그래도 어쩔 수 있나요. 지금 나를 보면 그게 맞잖아요. 받아들여야죠. 받아들인다는 건 나의 강점도 약점도 모두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거니까요. 그래야 내가 생각하는 내 약점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키워줄 수 있죠. 모든 문제는 다 방법이 있게 마련이잖아요. 제 방법은 자신에 대한 신뢰를 믿는 거였어요. 애착 무시형은 그래도 나에 대한 신뢰는 굳건하잖아요.



  내 애착의 장점은 키워봐야죠. 독립적이고 책임감이 강한 내 성향은 마흔이 되니 어느 정도 태도로 자리 잡은 게 보여요. 내가 보기에 적어도 제 일은 책임감 있게 해내거든요. 코로나로 인해 오후 늦게 다음날 강의를 원격으로 진행해야 했을 때, 밤을 새워서라도 자료를 만들고 익숙지 않은 프로그램을 컨트롤하는 법을 배워 다음날 원격 수업을 무리 없이 해냈어요. 마감이 있는 일은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성격이에요. 그래서 가끔

  "그래도 너는 다 해냈겠지."

라는 말을 듣곤 하죠. 맡은 일에 대한 책임감은 있는 편이에요.



  애착 무시형의 반대편엔 관계 맺기에 대한 약점이 있죠. 낯을 가리고, 내 이야기를 하지 않는 일은 상대를 서운하게 할 수 있는 면이어서 좋은 사람을 떠나보낼 수도 있는 치명적인 약점이거든요. 이건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관계 맺기를 어색해하지만 의미 있는 관계의 따스함은 알고 있거든요. 관계맺기가 어려운 사람이 혼자 노력한다고 해봤자 속히 그나물에 그밥이죠. 사랑을 책으로 배운다고 알 수 있나요. 보고 배워야하고 도움을 받아야죠. 내 부족함은 가끔은 나보다 나은 사람이 보여주는 세상을 통해 배울 수 있어요.



  다행히 애착 무시형인 나를 인정하고 나니, 주변사람들에게 내 약점을 스스로 먼저 말하는 게 괜찮아졌어요. 참 신기하죠. 나도 나를 모르던 상태에서는 내 약점을 내가 알게 된 사실만으로도 내가 먼저 부끄러웠는데, 내가 인정해 주니 괜찮아지더라고요. 남편에게, 주변 지인들에게 말했어요.



   "나 무시형 애착을 형성한 사람이야. 혹시 내가 내 이야기를 안 하는 거 같으면 일부러가 아니라 요즘은 진짜 생각이 안 나서 그렇거든. 그러니까 그럴 때 말해줘."

  


  이유는 하나예요. 잘 지내고 싶으니까요. 누구보다 그 사람들과 말이예요. 어쩌면 도움을 구한 거죠. 나는 지금 애착 무시형 인간이지만 안정애착의 세계도 있다는 것과, 안정애착이 만들어가는 의미 있는 관계가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알고 있으니까요. 비록 나는 안정애착까지는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중간까지만이라도 가도 성장한 거니까요. 내가 뻗은 손을 잡아줄 얼마 없는 제 주위 지인들은 그런 저를 이해해주면서 저를 끌어줄 거라고 믿거든요. 그러다 보면 지금은 긴장해서 수축한 제 관계근육이 유연하게 스트레칭되는 순간도 가끔 있지 않겠어요?



  고백하자면 노력과 성장의 과정인 지금, 만나면 대화의 절반 이상이 시시한 농담인 제 친구들이 가끔 말하곤 합니다.

  “김주윤 사람 됐네.” 하구요.

물론

  “사람된줄 알았는데 아직 아니네!”하는 말도 함께요. 이 정도면 그래도 의미있는 과정을 밟고 있는 게 맞겠죠? 이 관계의 스트레칭 과정들이 모이면 언젠가 전 엘라스틴걸이 될지도 몰라요. 내 지인들 덕분에요.



  어쩌면 내가 어떤 유형의 사람인가를 아는 것만큼 중요한 건 그 이후인 것 같아요. MBTI를 하고, 성격검사를 해보는 건, 나를 진단한 이후에 나를 내가 어떻게 키워줄까를 생각하기 위한거죠. 우리가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는 건 그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이지 그냥 알고 싶어서 가는 건 아닌 것과 같죠. '나 원래 그런 사람이야. 어쩌라고!'가 아닌, 지금 잘하고 있는 건 계속해서 탁월한 수준으로 키워주고, 내가 부족한 면은 인정을 통해 평균치까지는 올리는 것. 그걸 하는 게 내가 나를 키우는 방법이 아닐까 해요. 마흔부터는 엄마도, 선생님도 아닌 내가 나를 키워줘야 하니까요.



  여러분은 어떤 애착 유형을 가지고 계실까요? 알게 되었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억할 건, 모든 문제에는 모두 각자의 방법이 있다는 거예요. 나 혼자 잔잔하게 해결책을 생각하기 뿐만 아니라 주변 의미 있는 관계들에게 솔직하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해보길 권유합니다. 애착은 나와 너의 관계가 맺는 이야기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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