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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윤 May 21. 2023

내 삶에 시간을 벌어주는 일

  지금은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내 손에 쥐어진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원하는 것이 내 눈앞에 없기 때문인데, 지금의 이 상태는 언제나 나를 시험에 들게 한다. 어쩌면 나는 재능이, 능력이, 그럴만한 그릇이 안 되는 것이라는 증거 아닐까. 스스로의 만족이 중요한 거라는 자족의 마음 한 방울을 어렵게 떨어트려보지만, 한 방울의 마음은 그만큼 가벼워 공기 중으로 쉽게 날아가버린다. 그리고 남는 건 여전히 나에 대한 의심이다. 내가 잘한다고 느꼈던 일이 어쩌면 착각일 수 있다는 자신에 대한 의심.  



  과거에 드문드문 찾아왔던 예상치 못한 짜릿한 성공 경험 하나쯤은 내 마음의 토양에 씨앗 하나를 뿌린 게 틀림없다. 내겐 그게 중학교 2학년 교내 글짓기 대회였다. 논설문 쓰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냥 썼다. 잘하고 싶은 마음보다는 성실히 과제를 한다는 마음이었다. 얌전히 시키는 일을 잘 해내던 여중생인 나는 아마도 200자 원고지에 바른 글씨를 꾹꾹 성실히 눌러 담았을 것이다. 며칠 후 교무실로 불려 갔다.

  "네가 진짜 다 썼니?"

  "네, 수업시간에 썼잖아요, 선생님."

  "그래. 알겠다. 가봐"

그렇게 나는 별안간 한 명뿐인 학교 대표가 되어 시 대회에 나가게 되었다.



  여느 드라마의 주인공들처럼 한 번의 기회가 내 삶을 바꿔놓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시대회에 입상을 하지 못했을뿐더러 나는 내 앞의 챌린지들을 격파해 나가느라 바빴다. 그 챌린지들이란 때마다 찾아오는 중간고사와 중간고사였다. 나는 매 시험 앞에서 벼락치기를 해내느라 시험이 끝나면 눈앞이 아득해지거나 구토를 참아내느라 바빴다. 나는 어디서 오는지 모르는 성실함과 책임감을 쌓아가느라 바빴다.



  이 성실함과 책임감은 내가 쌓아간 게 아니었다. 황사가 밀려오듯 어디인지 모르는 곳에서 불어오는 바깥세상의 바람에 실려온 모래가 내 마음에 차곡차곡 쌓여 무게를 더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하고 싶거나 잘하는 일에 대한 모험보다는 빠른 인정을 구하느라 외부의 미션에 충실했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라는 외부의 미션은 나를 빠르게 인정받게 했다. 외부의 인정을 받기 위해 수명이 단축될 것 같다며 우스갯소리를 하며 나를 퍼다 나르느라 나는 성실해졌고, 착해졌고, 딱 그만큼의 성취를 이뤘다.



  나는 재미없는 사람이 되었다. 어느 정도 성실했고, 어느 정도 성취를 이루었고, 어느 정도 책임감이 있었다. 그 중간만큼의 사람은 혼나지도 않고 튀지도 않는 평온한 하루를 살게 되었다. 외부의 평가에 적절히 대응하단 대가로 얻은 얼마간의 인정과 편안함은 나를 그 삶에 멈추게 했다.



  그런데 지금, 외부로부터 주어진 미션이 사라졌다. 나는 주어진 일은 어떻게든 성실히 해낼 수 있는 사람인데, 내가 움직여야 할 방향이 사라졌다. 아무도 시험이라는 깃발을 저 앞에 꽂아주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방향이 없는 막막하고 광활한 사막에 섰다. 여전히 바람은 분다. 하지만 그 바람도 이제 담고 올 모래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 무게감 없는 하루들이 나를 둥둥 뜨게 한다.



  어릴 적 꿈이 생각났다. 글을 쓰고 싶다는 꿈. 문득 읽었던 책에서 마음에 들던 문장을 옮겨졌던 노트를 가지고 있었던 초등학교 6학년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글짓기에서 상을 받았던 중학교 시절도 떠올랐다. 내가 썼던 편지 글을 두고두고 아껴주던 여고시절 친구도 생각이 났다. 그래, 나는 글을 쓰고 싶어 했다. 오래전부터. 그렇게 용기를 내어보았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어느 정도 중간만큼의 삶을 사는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었다.



  용기도 새것이 더 가치가 있어서 처음의 용기는 아름답다. 시작을 위한 용기란 운명이라 여겨지는 과거의 성공경험에 미래에 대한 희망이라는 낙관이 더해져 있다. 처음의 용기의 발걸음은 한없이 가벼운 무중력 상태의 그것이다. 한두 번의 실패쯤은 누구나 겪는 일이라 괜찮다. 난 이제 시작이니까 몇 번의 실패는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서사가 되어줄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시작은 했으나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보통의 날들만이 계속될 때, 이젠 아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들이 실패의 서사가 된다.  ‘어쩌면?’ 에 대한 의문은 확신이 되어간다. 나는 재미없는 글을 쓰는 사람인게 분명하다. 외부의 인정을 바라는 것이 나약함이라 하지만 우리의 문화는 사회적 합의와 맥락의 산물이 맞다. 그런 의미에서 생각과 생각 사이를 파고드는 날카로운 인식을 생산하지도 못하면서 공감을 얻지 못하는 글은 힘이 약함을 나는 안다.



    그럼에도 글을 쓰는 것이 의미가 있는 일일까. 아니, 나아질 수 있을까. 과연. 과정의 순간마다 찾아오는 나에 대한 의심과 회의에도 불구하고 나는 처음의 싱그러운 낙관을 계속 가져갈 수 있을까. 이미 처음의 낙관은 시간이 갈수록 산화되어 가는 게 내 눈에도 보이는데, 어쩌면 나는 또 버티고 있는 건 아닐까. 퇴사가 트렌드라는 세상에서 버티는 일이란 무식하고도 바보 같은 건 아닐까. 아닌 것 같으면서도 구질구질하게 질척거리는 건 너무 없어 보이는 거 아닌가. 나는 여전히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에 목메는 여고생이었다.    

      


  어쩌면 삼십 년 동안 나는 외부의 시험을 준비하고 결과에 종종거리며 살았다. 그 삶은 내게 소속감과 성실함과 얼마간의 자부심과 현재의 안정적인 직업을 보장해 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 대가로 내 삶의 키를 내가 쥐고 살아갈 수 있는 배짱과 기다림을 내어주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중간고사 때처럼 빨리 결과가 나오길 바랐다. 몇 점이고 몇 등인지가 궁금했다. 상대적인 줄 세우기에 익숙한 내가 혼자 하는 삶의 레이스가 가진 규칙에 대해선 전혀 알지 못했다.  



  내 삶에서는 내가 나를 기다려줘야 했다. 삶은 한 줄에 쭉 서서 자신의 레일로만 달려 가장 빠르게 도착하는 사람이 우승하는 레이스가 아니었다. 길을 가다 문득 보이는 풀 숲의 입구에 호기심을 가지고 한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했고, 들어선 숲 길을 찬찬히 살펴보는 시간도 필요했다. 밝은 눈과 용기 있는 다리는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익숙해졌다면 이젠 내리쬐는 세찬 햇살에 송골송골 맺히는 땀으로 응수할 수 있는 끈기도 필요했다. 그러기엔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을 알아야 했다. 그 속도를 나는 알지 못했다. 그리고 여전히 알지 못한다. 어쩌면 나는 이제야 시작이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나는 시작할 수 있는 놀라운 재능 한 가지를 가지고 있다. 맥락없음, 두서없음, 그리고 엉뚱함. 이 대책없는 생각들은 사고처럼 나를 덥칠때가 있다. 하기싫다며 일을 하고 있던 어느 저녁, 갑자기 새로운 생각이 나를 둘러쌌다.

  '어떻게 하면 90살가지 일을 할 수 있을까?'

무의식적으로 들어버린 이 생각 이후 나는 맹렬히 그렇게 되고 싶었다. 그러기엔 내가 좋아하는 일이어야한다. 하고 싶은 일이어야한다. 그러기위해 그나마 조금 잘하는 일이어야한다. 어쩌면 나는 그게 쓰는 일이었으면 좋겠다는 소망.



  그나마 다행스러운건 90살을 떠올렸다는 것이다. 지금의 내 글쓰기에 대한 회의와 불안과 의심이 시간을 벌었다. 내가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다. 나는 갑자기 시간부자가 되었다. 그래서 내 글쓰기를 기다려줄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오늘부터의 내 시작은 처음의 그때보다 더 닳았다. 어느 정도 내 한계를 느낀다. 그럼에도 나는 헌 시작을 계속해나가려고 한다. 그리고 꿈꾼다. 90살까지 매일 시작하기를. 매일 한 문장을 쓰기를. 길게 보기를. 나를 내가 기다려주기를.



  아무 의미 없는 경험은 없다고 했듯이 그래도 십 대 시절에 맛본 것이 있다면 성실이라는 힘이다. 그때 비록 나는 외부의 시험에 대처하기 위해 의자에 엉덩이를 붙여보았지만, 이젠 내 삶에 엉덩이를 무겁게 붙여보기로 한다. 성실함은 나를 재미없는 사람이 되게 했지만 이젠 내가 나를 위해 그 노잼 성실함을 살려보기로 한다. 노잼 성실함 요놈! 누가 정해주지 않는 방향없는 삶의 과정에 내가 둥둥 떠있을 때마다 내 성실함이 내 손을 키보드 위에 데려다주길 바란다.  여러번 해봤으니까. 그래도 그건 어떻게 하는지 내가 좀 알고 있으니까. 난 버티기로 선택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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