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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윤 Feb 10. 2023

실패 아니고 이별했어요

 “제가 좋아하는 이별 노래 시퀀스는 박원의 ‘노력’에서 어반자카파의 ‘널 사랑하지 않아’로 이어지는 라인이에요. 이별의 이유는 완벽히 하나예요. 널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죠. 울고 불고 밥도 못 먹고 이런 거 딱 질색이에요.”

  사랑에 대한 교양 수업을 듣고 있다는 말랑말랑한 스무 살 대학생에게 낡은 마흔이 이렇게 뭉툭하게 툭, 건조하면서도 납작한 얼굴로 말했다. 순간 몇몇은 피식하고 웃었고, 몇몇은 저 낭만이란 모르는 꼰대라는 느낌이었다. 다 괜찮았다. 나에게 그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뒤돌아 불안했던 건, 혹시 말랑한 스무 살들은 마스크 너머로 ‘저 교수 저렇게 메마른 사람일까 했는데 역시였네.’하는 생각을 굳혀주진 않았을까 하는 우려였다. ‘나 그래도 어느 정도 말랑말랑한 면이 있는데. 강의할 때만 좀 납작해지는 편인데.’ 약간 억울했으나 이미 말은 뱉었고, 그 말은 진심이었고, 그리고 강의할 때마다 사적인 이야기 없이 이론만, 그리고 납작해지는 것도 사실이었기에, B사감은 말이 없다. 인정.                


  이별이 사랑하는 현재에 대한 기쁨과 다가올 미래에 대한 기대의 단절이라면, 나는 이별했다. 나는 일 년간 즐거운 노력을 해왔고 도전했으나 나에게 돌아온 것은 거절과 무응답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가엽게도 긍정적 응답을 대놓고 기대하고 때론 남몰래 비밀스럽게 기대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내 마음은 그동안 사소하고 지난한 앙금의 잦은 소용돌이가 멋대로 부유하는 시간을 겪어내야 했다. 억지로 사랑한다 말하는 말에 기뻐하다가도, 날 만날 수 있는 날 친구를 만나느라 오지 않는 회신을 기다리는 들뜸의 시간이 온 하루를 지배했다. 좋은 소식이 있겠지. 설마, 아직은 진행 중이겠지. 끝이 나버린 건 아니겠지. 설마. 눈치가 없고 반응이 느린 나는 들뜬 기대를 가라앉히는데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회신을 받지 못한 나에게는 과정이고, 기대였으나 상대에겐 종료였다. 나도 누군가에게 무응답도 응답이라고 누누이 말해왔다. 하지만 당해보니, 대답을 기다리는 사람을 향해 무응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일에 주도권을 쥐고 있는 사람이 맞았다. 힘의 균형이 이미 내 쪽에 있는 사람, 이미 마음을 정리한 사람은 더 이상 응답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아무렇지 않으니까. 반면에 회신을 기다리는 나는 무응답을 거절로 인지하기까지가 참 지난하다.           



  내 성과에 대한 자신감과 잘 될 거라는 기대를 담은 뜨거운 마음들이 흥분하며 가볍게 증발하고 또 증발한다. 내 명랑한 기대들은 쌓여만 간다. 결국 설마. 나 탈락인가. 하는 불안과 함께 가벼운 물방울들이 모여 만든 투명한 기대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무거운 먹구름이 되어간다. 기대보다 불안의 면적이 점점 넓혀진다. 더 이상 버티지 못한 무거운 수증기들은 바닥으로 쏟아진다. 처음의 뜨거운 마음은 이제 차갑게 쏟아져 내 마음을 채웠던 흥분의 열기를 가라앉힌다. 그제야 나는 알아챈다. 난 탈락이었다. 수많은 지난한 귀납적인 사건들의 모음 끝에 ‘널 사랑하지 않아’라는 확신의 두괄식 문장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상대는 사랑을 하지 않는 게 아니다. 다만 날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너와 나는 맞지 않는 것이다. 한때는 맞았다 여겼을지 모르고, 언젠가 우리가 다시 맞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너와 나는 아니라는 뜻이다. 이제야 나는 단념이 된다. 내 마음속에 부유하던 기대와 좌절이 차가운 비를 맞고 흥분된 열기를 낮추어 묵직하게 결정화(crystallization)된다. 난 완벽히 너와 잘 될 수가 없다. 이번에 나는 실패가 맞다.      



  아니, 실패가 일을 잘못하여 뜻한 대로 되지 않는 것이라면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 나는 나대로 잘했다. 다만 너와 안 맞았을 뿐. 나는 그래서 너와 이별하기로 한다. 너와 갈리어 떨어지기로 한다. 그리고 더 이상의 기대는 단념하기로 한다. 나는 이제 다른 길을 찾아가느라 분주해질 예정이다.          



  이별로 마침표를 찍었다면, 이제 내 패를 분석해 볼까. 유머코드가 안 맞았다거나 결이 다른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주요한 원인은 내가 까탈스럽게 잘하는 것을 파악하는 밝은 눈, 발견한 재능을 간결하고 짜임새 있게 구현하는 구성력 부족일 것이다. 그 구성력의 부족에는 내가 잡은 주제를 입체적으로 사고하는 각도의 다양성과 깊이의 부족도 있을 것이다.     


      

  내 마음속에 누가 심어놓았는지 모르는 내 마음속 착한 낙관은 이렇게 내 이별의 모습을 탁탁 털어 양지바른 곳에 널어놓으며 샅샅이 살핀다. 그리곤 나 자체를 더 나은 나로 만들기 위한 전략을 생각해내느라 바쁘다. 낙관은 나를 어여삐 여기는 게 분명하다. 내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먼저 일어나 내 마음에 전등을 밝히고 환기를 시켜놓고 청소기를 돌린 후 정리정돈까지 해낸다. 낙관의 성실함 덕분에 나는 오늘도 노트북을 켤 수 있었다.          



  그래, 다시 찾아보자. 첫사랑과 이별했다고 연애를 못하는 법은 없다.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랑을 다시 찾아보기로 하자. 그때 더 근사한 나를 위해 내가 더 멋진 사람이 되어보자. 좋은 문장에서 배우고, 숫자와 현상에 담긴 날카로운 지적 해석에 밑줄 긋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주제를 찾아보자. 그러다 소개팅도 하고 애프터도 하듯 또 도전해 보자.           



  그러다, 아니 그래도 안되면. 완벽한 이별을 해도 좋다. 포기도 전략이다. 길은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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