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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윤 Feb 21. 2023

낯은 언제까지 가려요?

   그래, 물론 내가 1년 휴직을 했다. 일단 그것까진 감안해본다. 좋다, 새로운 곳에 새롭게 꾸려진 팀에 들어간 것도 사실이다. 아니 그래도 내가 경력이 17년 차인데? 그래도 내가 해오던 게 있고 그래도 아는 게 있을 텐데? 나도 귀가 있고, 입이 있고, 경험이 있을 텐데?



  사회생활 17년 차 더하기, 아줌마 더하기, 마흔을 더하면 능숙하지는 못해도 새로 만난 팀원에게 사교적인 말 한마디 할 수 있지 않나? 회의에서 그래도 내 의견을 좀 말할 수 있지 않나? 그 모든 물음에 답하자면, 나는 사람 된 줄 알았는데 아직 멀었다. 나는 여전히 집에서는 왈가닥이지만, 새학기 새 교실에선 새초롬하게 얌전하기만 한 두 얼굴의 소녀에 멈춰있었다.



  첫 만남엔 다들 어색한 분위기였어서 나의 어색함도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회의가 진행될수록 팀원들은 각자의 경험과 생각을 능숙하게 나누었다. 회의에는 어색함이 녹아있으면서도 예의 있는 동의와 반대의 목소리들이 오고 갔다. 팀원들의 어색함은 해동되는 게 확실한데, 나만 여전히 얼음이었다. 지금 여기서 나만 한결같이 어색하다. 촌스럽게. 나름 준비하고 한 말인데, 한 번 반대의견을 만나고, 한 번 묻히게 되니 어색은 위축으로 바뀌어간다.



  내 의견에 반대의사를 표한 팀원은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데에도, 새로운 제안을 하는 데에도 적극적이고 확신이 보인다. 또 한 팀원은 자신의 경험이 담긴 자료를 적극적으로 공유하면서도 회의 과정에서 신속한 결정을 내린다. 주도적인 팀원의 의견과 동의가 겹쳐진 덕분에 회의 주제가 해결이 되어간다. 그동안 내 자리만큼 내 자아도 점점 작아져서 콩만 해졌다.



  이런 내 서툰 사교성이 정말 속된 말로 꼴 보기 싫다. 이 나이를 먹도록 아직도 능숙해지지 못한 내가 마음에 안 들어 죽겠다. 지난 1년간 친숙한 사람들과 지낸 탓에 스스로 사교성이 괜찮다고 크게 오해했다. 나는 이렇게 나를 모른다. 게다가 더 마음에 안 드는 것은 내 어색함은 상대에게 전이된다는 것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나는 이제 안다. 그런 나를 그들도 어려워한다는 것을.



  ‘노력하지 않아도 먹는 나이 따위 뭐가 중요해.’ 하며 후배들에게도 말 놓으라고 했던 나는 정작 선배든 후배든 모두에게 말을 놓지 못하는 사람이다.

  ‘나를 막대해줘. 나 쉬운 여자야.’하고 진심으로 말하지만, 나는 안다. 나는 늘 타인에게 어느 정도 거리를 둔다는 것을. 이런 내 기질은 결국 타인들도 나를 어려워하는 관계를 만든다.



  나는 상대방에게 나에 대해 할 이야기가 비어있는 사람이고, 내겐 이게 자연스럽다.

  ‘내 어려움을 타인에게 왜 말하지? 내가 해결할 문제잖아.‘

  ‘내 이야기가 상대에게 뭐 얼마나 중요하거나 흥미 있겠어?’

하고 생각해 왔다. 더욱이 아이가 커가는 과정에서 타인의 눈이 띄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커져갔다. 그렇게 나는 전형적인 회피형 불안정 애착을 가진 사람으로 살았고, 친밀한 몇몇 지인과 관계를 이루며 지냈다. 나는 이 조용한 포지션에 꽤 만족했다.



  좁은 사교성은 내 선택이었다 여기며 만족해 왔는데 내 선택이 아닌 기질이라는 것을 확인해 버리니, 이제 나도 사교적인 사람이 부럽다. 행복연구에서도 행복을 이루는 요인 중 불변의 요인은 외향성이다. 인류 진화에서도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고 했고, 능숙한 의사소통과 공감, 협력은 큰 무기이다. 다 안다. 나도 인덱스를 붙이고 밑줄 그으며 읽었다. 아니 그렇게 글로 읽었는데, 나는 왜 이래요?



  인싸의 삶이란 어떤 걸까? 그런 사람은 싸이월드 투데이도 많고, 생일에 친구들에게 축하도 많이 받고 그랬겠지? 인스타 팔로워도 어마어마하고, 브런치 작가라면 내 구독자 수는 언제 지나갔는지 모를 만큼 많은 구독자와 좋아요가 당연하겠지? 말과 문장에는 위트와 여유, 그리고 다정함이 있겠지? 좋아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호감을 자연스럽게 자주 표현할 줄 아는 사랑스러운 따뜻함이 배어있는 사람이겠지?



  힝. 생각할수록 나와 멀다. 나는 일단 재미가 없고, 낯선 사람에게 건네는 말과 글은 딱딱하다. 아니 도대체 유머는 어디서 배우나요? 책에서 배우나요? 위트 있고 간결한 말투는 어떤 세련된 입을 가져야 나오는 건가요. 스몰토크는 언제, 어떤 타이밍에 하는 걸까요? 마흔이 되어도, 경력 17년이 되어도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분명, 소나무인 아이에게 왜 넌 은행나무처럼 잎이 넓지 않니? 하고 나무라면 안 된다고 배웠다. 각자가 가진 개별적인 강점을 발견하고 키워야 한다 생각해 왔다. 그래도 오늘 뾰쪽하고 대쪽같은 소나무인 나는 풍요로운 잎을 가진 은행나무가 너무 부럽고, 인싸의 삶이 궁금해죽겠다.



  오늘의 이 발끝까지 꽉 찬 사교적 인싸에 대한 동경과 부러움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모른다. 시간이라는 포장지는 꽤 힘이 세서 지난 일을 아름답게 포장하곤 했기에, 언젠가는 지금의 부러움도 인상 깊은 기억 중 하나로 예쁜 리본 묶어 포장해 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마흔의 오늘, 나는 인싸들의 삶이 부러워 죽겠다. 인기없는 사람이 인기있는 사람이 되고 싶으니 부러움이 나를 꽉 채우느라 하루종일 은은하게 여기저기 나를 가렵게 하고 입을 삐쭉 나오게 한다. 그래도 여전히 부러움이 남은걸 보면 나는 아직도 다 크려면 먼 것이 확실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오랜만에 부러움이 와락 안겨 한 방 맞은 오늘도 내 하루가 맞다. 매일의 하늘이 다르듯, 오늘은 그런 날이다. 이 부러움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모르겠으나 오늘은 부러움을 머리맡에 배고 잠을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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