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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윤 May 25. 2023

나는 왜 하기 싫은 일을 열심히 할까

자기결정성 이론에 따른 동기

  월요일이에요. 출근했다는 것만으로도 오늘 할 일은 다 해낸 것이 분명한 날이죠. 일요일 늦은 오후부터 일주일에 대한 부담감으로 물에 젖은 솜처럼 푹 가라앉았던 마음도 탈탈 털어내야 했고, 월요일 아침엔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 분명한 눈꺼풀을 열고 몸을 일으키는 일은 얼마나 힘겨웠던가요. 정말 이게 실화냐. 싶죠. 그런 월요일 아침을 보내고 어느덧 숨을 돌리니 오전 11시쯤 되었네요.



  참 이상한 사람이에요, 나란 사람은. 그렇게 싫다 싫다 하며 보낸 아침에 또 그렇게나 열심히 머리를 감고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려요. 그리고 출근을 해서는 아침 침대에서의 나는 상상도 못 할 만큼 멀쩡한 내가 되어 동료에게 명랑히 인사를 하죠. PC를 켜는 것은 내 머릿속에도 전원 스위치를 켜는 것과 같아요. 따라라~하며 모니터 속 화면이 켜지면, 내 머릿속의 회로도 돌기 시작해요. 그렇게 나는 아주 열심히 일해요. 하기 싫다고 그렇게 발버둥 쳤던 것도 나인데, 이렇게나 열심히 하는 것도 나예요. 왜 그런 거예요?



  우리는 왜 이렇게 재미없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을까요? 심지어 그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요. 학창 시절에 공부도 그랬던 것 같아요. 재미없거든요. 근데 정말 최선을 다해요. 지금 운동은 또 어떻고요. 요즘 필라테스를 배우고 있는데 가기 전에 언제나 고민해요. 가지 말까? 그 순간 저는 저 자신을 그렇게 아껴요. 혹시나 갔다가 더 피곤할까 봐 걱정이 되기 시작하죠. 필라테스는 근력운동이어서 버티던 다리가 달달 떨리는 걸 분명히 경험할 거고, 배가 (원래는 복근 이어야 하지만 전 그게 없으니 그냥 천연의 배, 복부가 맞아요) 빨래 짜듯이 비틀어질게 분명하거든요. 꾸역꾸역 가면서도 왜 나는 돈을 내고 재미없는 일을 하러 가나. 심지어 왜 돈을 내고 벌을 받으러 자진해서 가나 싶어요. 왜 그러는 거예요? 왜 이렇게 재미없는 일을 열심히 하는 거죠? 동기가 없는데도 어떻게 이렇게 특정 활동에 참여하고, 게다가 열심히 하는 거죠?



  Ryan과 Deci(2000)은 이런 저도 동기가 있는 거래요. 어쩌면 그동안 우리가 동기를 오해하고 있었는지도  모르는 거죠. 다양한 동기의 측면 중 우리는 단지 2가지만으로 동기를 한정시켰는지도 몰라요. 가끔 우리는 자주 듣고 봐서 익숙하면 대상을 다 안다고 생각하잖아요. 동기도 그럴 수 있다는 거죠.

 

  

  우리는 동기를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그 활동이 재미있고 또 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드는 내적 동기와 외부의 상이나 벌에 의해 특정 행동을 하게 되는 외적 동기가 그것이죠. 하지만 이 두 동기만으로는 제 상태를 설명하기가 어려워요. 딱히 필라테스를 안 한다고 해서 벌도 상도 없거든요. 그리고 내재 동기의 특징이 계속된 연습과 참여인데 저는 즐겁지 않은 공부도, 직업도 열심히 참여하거든요.



  Ryan과 Deci는 자기 결정성 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 SDT)을 통해 외재 동기를 발전가능한 연속체로 설명합니다. 자기 결정성이란 우리에게 익숙한 용어로는 자율성(autonomy)으로 이해될 수 있어요. 즉 자신의 삶에서 욕구를 충족시키거나 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일과 그 방향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을 의미하죠. 자율성의 중요성은 자율성이 발휘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얼마나 답답해하고, 내 존재를 의심해 왔는지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가 돼요. 강압적인 상사 아래에서 내 의견을 말하지 못할 때, 고등학교 시절에 내가 선택하지 않은 주어진 수업시간과 공부를 해내야 했을 때의 그 답답함의 경험은 한 번쯤은 경험해 봤으니까요.



  Ryan과 Deci는 자기 결정성에 따라 외적 동기를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그러면 그들이 설명해 주는 동기의 구체적 모습을 살펴볼까요? 그 과정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동기의 모습도 찾아볼게요. 하나 기억할 것은 점차 발전되어 감에 따라 자율성의 정도가 더 확대되어 간다는 점을 기억하면 좋아요.



  먼저 무동기(amotivation)예요. 이건 동기가 없는 상태죠. 이런 상태도 있겠죠. 이제 동기가 시작되는 외재 동기로 넘어갑니다. 외재동기는 외적조절, 내사된 조절, 동일시된 조절, 통합된 조절의 4가지 동기로 구분되고 발전되어 갑니다. 먼저 외적 조절은 우리가 흔히 생각해 온 외적 동기와 유사합니다. 상과 벌, 외적 요구에 반응하기 위한 행동을 하는 거죠. 이때는 상과 벌에 의해 특정 행동을 하는 것으로 자신의 자율성의 정도는 아주 약한 단계로 볼 수 있습니다.



  내사된 조절(introjected regulation)부터는 자율성이 점차 확대되며 공부나 일에 대한 내면화가 시작되는 단계로 볼 수 있어요. 왜 우리는 가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어디서 오는지 모르는 책임감 때문에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죠. 때론 혹시나 내가 서투르게 했을 때 주변에서 나를 무시하지는 않을지, 내가 너무나 창피해질까 봐 되려 열심히 공부를 하거나 일을 준비할 때도 있죠. 전 특히 대학원을 다닐 때 지도교수님 수업은 학생 2명에 지도교수님 1분, 이렇게 3명이서 수업을 받았거든요. 교수님 연구실에서 큰 책상에 앉아 세 명이서 공부를 하는데 행여 제가 준비한 발표자료가 형편없으면 그 3시간 동안 저는 얼마나 창피하겠어요. 그게 무서워서 행여 제 발표가 있는 주가 되면 정말 어려워서 도망가고 싶은데도 기어이 책상에 앉아 발표준비를 하곤 했어요. 알고 보니 이게 바로 내사된 조절 동기의 모습이었어요. 여전히 외적 평가에 의해 행동을 하는 것도 맞지만 창피하기 싫으니 내가 공부를 하기로 선택을 했다는 점에서 공부에 대한 내면화가 시작되는 동기의 유형이에요. 내사된 조절은 참 양면적인 면을 가졌는데 이 동기를 가진 학생들이 꽤 높은 학업성취를 보인다고 해요. 동시에 학업에 대한 가치보다는 외부의 평가에 의존하기 때문에 학업이나 일을 하는 자신에 대한 만족도는 낮은 경향을 보인다고 하죠. 동기계의 양가감정이라고 할까요.



  다음으로는 동일시된 조절(idenrified regulation)이에요. 이 동기는 행동의 가치를 좀 더 내면화한 상태로 자율성을 좀 더 키운 모습을 보입니다. 내가 하는 행동의 가치와 유용성을 인정해요. 하지만 아직 그 행동이 내 가치관과 동일하진 않아요. 예를 들면 나는 영어 공부를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요즘엔 번역 앱도 잘 나오는 시대이니까요. 그런데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 또는 취업을 위해서는 영어 점수가 필요하니까 영어 공부를 하기로 결정하고 열심히 하는 거죠. 즉 내가 영어공부가 필요하니 열심히 하긴 하지만 딱히 영어공부의 중요성과 가치를 아직은 내면화하지 않은 상태라고 볼 수 있어요. 우리나라 중고등 학생 중 학업에 대해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동기 유형이 바로 동일시된 조절이라고 합니다. 어쩔 수 없죠. 학생들이 교육과정을 고르지 않았고, 대입 제도를 만들지 않았잖아요. 우리의 중고등학생들은 주어진 교과를 공부해야 하는 상황에서 미분 적분을 공부해야 시험 점수가 나오고, 이게 나에게도 필요하니까 하기 싫지만 공부를 하는 상황에 놓여있잖아요. 대입을 위해 중요하다고 인정하기 때문에 공부하지만 나중에 이 미분 적분이, 고시조의 의미가 나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을 기대하진 않는 거죠. 즉 학업에 대한 가치가 온전히 내면화되진 않았지만 그 가치 자체는 어느 정도 인정을 하는 상태예요.



  외적 동기의 마지막은 통합된 조절(intergration regualtion)이에요. 이 동기의 단계는 스스로 해당 활동이 가치 있고 중요하다고 여겨서 그 행동을 하는 거예요. 저는 운동이 제 삶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운동을 하고 나서의 그 개운함이 삶에 긍정적 정서를 주는 것도 경험했고, 운동을 하지 않았을 때의 찌뿌둥함을 알거든요. 근력이 좋아졌을 때 피로도가 적은 것도 알아요. 운동이 삶에 활력과 근력을 주는 것을 통해 운동의 가치가 내면화되어 있죠. 그래서 일단 클래스에 가면 열심히 해요. 이런 상태가 통합된 조절이라고 볼 수 있죠.



   그런데 통합된 조절은 왜 내적 동기가 되지 못하고 외적 동기에 포함되어 있는 걸까요?  통합된 조절을 가진 저는 이렇게 운동의 가치도 내면화해서 운동을 선택하고 열심히 하잖아요. 그런데 왜 외적 동기죠? 그 이유는 여전히 나는 즐겁지 않기 때문이에요. 운동을 할 때마다 너무 즐겁고 신나고, 시간이 날 때마다 또 하고 싶고, 또 새로운 방법은 없을까 하고 도전하고 또 해보고 그렇게까진 아니거든요.



  즉 내적 동기와 외적 동기를 구분하는 가장 간단한 기준은 그 행동을 할 때 내가 얼마나 신이 나는지, 시간이 날 때마다 그 활동을 또 하고 싶어 하는지, 그 활동에서 새로운 챌린지를 만났을 때 늘 도전의 희열을 느끼는지의 여부예요. 통합된 조절은 거기까지는 아직 아닌 거죠.



  동시에 자기 결정성 이론이 갖는 힘은 여기에 있어요. 각 동기들은 발전할 수 있다는 거예요. 내가 진입한 활동에 대한 가치가 내면화될수록 우리는 보다 윗 단계의 동기, 즉 내가 좀 더 자율성을 손에 쥔 채 행동할 수 있다는 거예요.



  전 지난여름에 수영에 대해 통합된 조절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느 날 평영 발차기를 배운 날 조금은 달라졌어요. 평영 발차기를 배워서 물속을 천천히 다니는데 마치 제가 해녀가 된 줄 알았다니까요. 더 이상 물에서 허우적대지 않고 여유롭게 천천히 바다를 누비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전복 어딨 니~ 해삼 멍게 어딨 니?' 하며 동네 수영장을 누볐던 그 여름날을 저는 기억해요. 그때부터 수영이 너무 좋은 거예요. 원래 제가 운동은 힘들기 전까지만 하거든요. 할 때마다 언제 끝나나 시계만 봐요. 하지만 그날 이후부터는 수영을 너무 잘하고 싶어 졌어요. 집에서 유튜브를 찾아서 다시 한번 보기도 하고, 수영 시간에 어떻게든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심지어 아이가 방학일 때는 아직 1학년인 아이를 수영장 옆 도서관에 넣어두고 가기도 했죠.



  제가 수영에 대해 내적 동기를 경험할 수 있었던 중요한 한 가지는 바로 수영에 참여했던 거예요. 자기 결정성 이론에 따르면 외적 조절에 의해서라도 일단 활동에 참여한 후, 활동이 갖는 가치를 내면화할수록 동기의 수준도 높아질 수 있다고 하거든요. 제가 그걸 경험한 거죠. 우리도 다들 그런 경험들이 있잖아요. 학교에 가기 전에는 또는 직장에 가기 전에는 정말 귀찮고 싫은데 또 막상 가잖아요? 그럼 또 괜찮거든요. 일단 참여해 보는 것은 내 삶의 키를 내가 쥐고 갈 수 있는 동기 수준을 높이는 시작이 되어준답니다.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은 이렇게 근사한 일이에요. 내가 나를 어떤 시작에 힘겹게 데려다 놓았고 처음엔 남들만큼은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다음엔 남들이 가치 있는 일이라고 하니까 했던 일에 한 번쯤은 나도 모르게 진심을 다했을 때 나도 몰랐던 내 삶의 흥미가 생기기도 하니까요. 흥미로운 것이 많은 사람은 그만큼 자주 즐겁지 않을까요.



  근사해 보이는 누군가의 내적 동기도 실은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 작은 일에서 시작됩니다. 꼭 거창한 포부와 동기와 계기가 있어야 시작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이부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던 작은 움직임, 돈 주고 벌을 받으러 가는 것 같지만 그래도 오늘 저녁에도 필라테스를 가는 책임감, 운동하는 내내 끝나고 집에 가자마자 맥주를 마실까 씻고 마실까를 생각하지만 그래도 다리 덜덜 떨어가며 순간 진심을 다하는 과정을 경험했다면 언젠가는 그 안의 즐거움과 가치가 나를 발견하고 찾아오게 될 거예요.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것과 흥미의 면적을 넓혀가는 삶은 꽤 괜찮을 거예요. 관심 있고 좋아하는 것 몇 개쯤 호주머니에 넣고 사는 삶은 꽤 신날것이 분명하거든요. 우린 또 그렇게 내 삶을, 나를 키워가는 게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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