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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윤 May 27. 2022

내 호주머니 속 기쁨, 맥주 예찬


  운동은 왜 그럴까? 지금까지 내가 해본 운동이라 함은 수영, 테니스, 요가, 필라테스 등인데 다들 하나같은 공통점을 가진다. 바로 출발 리미트까지 고민하게 한다.

  ‘가지 말까?’          



  친구의 말에 따르면 운동 가기 전, 우리는 스스로를 너무나 아낀다. 조금이라도 피곤하면 행여 운동해서 더 피곤해질까 봐 어찌나 걱정이 되는지 모른다. 그렇게 10분 전까지 그렇게도 고민을 한다.

  ‘왜 나는 돈을 주고 벌을 받으러 가려고 하는가.’

운동 앞에서 나는 언제나 한 달 전에 야심차게 운동을 결재했던, 한 치 앞을 모르는 어리석은 나를 꾸짖는다.  


          

  그래도 일단 가면 또 괜찮다. 요가나 필라테스를 할 때 선생님의 우아한 시범과 함께 수업을 듣는 수강생의 성실한 태도가 내 앞에 있는데, 여기서 내가 저 동작을 안 하는 것은 반사회적 행동이다. 나는 그 분위기에 합류해서 내 코어를 위해 움직였다. 비록 움직임에 미처 대비 못한 관절에서 우두득 소리가 나고, 다리는 버티느라 창피하게 덜덜 떨렸으며, 급기야 경직된 고관절이 고만하라고 마구 찌릿한 신호를 보내어 잠시 앉아있었다 하더라도, 어떻게 한 시간을 채웠다.           



  지금 하고 있는 수영도 마찬가지이다. 회원들의 속도에 맞추어 열심히 키판을 잡고 발차기를 하다 보면 또 선생님께서는 한 바퀴 더! 의 우렁찬 격려(?)를 해주신다. 그 분위기에 순응해서 또 한 바퀴, 한 바퀴 하다 보면 숨이 가빠지고 다리에 힘이 없다. 그러면 좀 운동을 한 것 같아서 기특하고 그렇다. 그러다 수업이 끝나면, 그렇게 가기 싫어하던 나는 마지막 10분을 숨이 터질 듯이 연습한다. 이왕 왔고, 못하니까 잘해보고도 싶기 때문이다.   



  나에게 운동은 이렇게 가기 싫고, 가면 괜찮더니, 막상 하면 힘든데 또 잘 해내고 싶은 이상한 과정들이다. 게다가 정말 자존심 상하는 것은 운동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그렇게 몸보다 마음이 상쾌하고 뿌듯할 수 없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스스로가 굉장히 절제하고, 의지가 있으며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다. 끝까지 운동을 가기 싫어하던 사람은 없다. 나는 신나는 음악을 크게 켜고 밤공기를 시원하게 마시며 집에 돌아온다. 이렇게 나는 건강한 urban life를 살아가는 멋진 현대인이다.             



  하나의 움직임에 이런 다양한 감정이 동시다발적으로 드는 것을 보면, 운동은 요물이다. 운동을 하는 행위는 내 속의 다중이들을 모두 끄집어서 경험하게 해 준다. 게으른 나, 한번 시작하면 잘 해내려고 노력하는 나, 결국 한 달을 채우는 성실한 나, 내 삶에 만족할 줄 아는 나. 이게 모두 내가 맞다. 이런 다중이들은 견고한 유닛을 형성해서 언제나 내가 운동을 하려고 치면 색색의 형태를 가진 꽃다발이 되어 나에게 함께 와서 찰싹 붙는다.           



  그중 함께 오는 욕구가 또 한 가지 있다. 이 선명한 욕구는 바로 끝나고 마시는 맥주에 대한 기대와 간절함이다. 이렇게까지 운동했는데, 맥주 한잔 못 마신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그저 스트레칭과 버티기로 내 다리가 후덜덜 할 때에도, 리듬을 못 맞춰서 물을 먹고 레인 중간에 일어설 때에도 언제나 고민이 되는 것은 한 가지이다.

  ‘집에 가자마자 맥주를 마실까, 아니면 씻고 나서 마실까.’



  그렇게 집에 가면 나를 기다렸을 냉장고 속 차가운 맥주들이 명랑하게 웃고 있다. 내 귀엔 시원하게 탁! 하며 황홀한 순간이 시작되는 맥주 캔 따는 소리가 리드미컬하게 메아리 친다.



  연이어 내 목에는 까실까실한 청량한 기포가 폭죽처럼 가볍게 터진다. 향이 그윽한 밀맥주의 기포는 크리미한 질감을 오렌지나 고수향이 감싸며 감미로운 재즈가 되어 울려퍼진다. 또 어떤 날의 시원한 라거는 가벼운 경쾌함이 속도제한 없는 아우토반처럼 내 목을 질주한다. 이때 나는 이 흐름에 순응하고 즐기며 그저 음미하는 수 밖에 없다.



  그 순간 맥주는 운동의 이유가 된다.

  ‘내가 이러려고 운동했지.’




  그렇게 맥주 한 잔이면, 운동의 시작과 과정의 온 순간을 지배했던 싫음들이 다 잊힌다. 아마도 싫음들의 감정이 맥주 한 잔보다 더 다양하고 더 오랜 시간동안 나를 지배했던 것 같은데, 맥주 한잔에 대한 기대와 눈 앞의 청량한 노릇함이 반짝이는 실재가 만나면, 그 싫음들이 버블처럼 사라진다. 나는 그렇게 단순하다.      



  좋은 것 하나면 된다. 나를 달래주는 그 한 가지면 사소한 싫음들이 있더라도 괜찮아진다. 그리고 그 좋은 것 덕분에 한 번 더 싫음을 겪어낼 동기가 생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사소한 싫음 들을 자주 만난다. 귀찮음, 불편함, 어려움, 버텨내는 데의 버거움들은 공기처럼 우리 삶에 함께한다. 우리는 그 과정을 살아가기 마련이다.           



  그런 삶이기에 우리는 호주머니에 내가 좋아하는 것 하나쯤 쏙 넣고 다녀야 한다. 그래서 그 지난한 과정을 겪어갈 때 호주머니에서 그 맛있고, 재미난 것을 쨘 하고 꺼내서 스스로에게 먹여주고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      


 이때, 그 좋은 것은 진짜 좋아하는 것이어야 하고 손 닿으면 쉽게 가질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초여름의 오늘, 나에겐 그것이 맥주이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오늘도 한 잔만! 시원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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