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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윤 May 03. 2022

매 순간 낯설어 아름다운 봄날의 캠핑으로 오라

집 앞에 반듯하고 묵직해 보이는 황톳빛 택배 상자 2개가 배달되어있었다. 내 옷이 왔나? 반가운 마음에 살펴보니 이번 주말 캠핑을 위한 장작이다. 남편이 주문한 이 묵직한 택배 상자 안에는 아직은 쨍하게 차갑지만 그래서 한없이 가볍고 상쾌하게 뺨을 스치는 연둣빛 봄밤의 공기와 만나 나의 무릎과 손, 그리고 마음을 훈훈하게 데워줄 마른 장작이 한가득 담겨있다.



  상자를 한 개씩 집안으로 옮기며, 내 마음이 제멋대로 설레었다. 아, 이 지는 기분...! 자존심 상하게 설래버렸다. 이 설렘을 경험하는 순간 나는 알아차렸다. 남편 따라서 어쩔 수 없이 따라다닌 캠핑이었지만 이젠 나도 어느 정도 캠핑을 기대하게 되었다는 것을!         


 

  요즘 우리 가족은 주말마다 캠핑을 간다. 숲으로 가는 날엔 모든 봄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언제고부터 그 자리를 지켰을 고목들은 제 가지가 간질간질해서 웃음이 절로 날 것만 같다. 오래된 그 가지들에는 새끼손톱만 한 새 잎들이 봄 빛에 달려 딸랑딸랑 빛이 난다. 또 벚꽃이 피고 자두꽃이 피는 나무에는 새하얀 봄이 내린다. 이렇듯 고목들의 가지는 언제부터인지 모르나 그 가지들마다 새 잎과 새 꽃이 오래된 고목을 간지럼 태운다. 오래된 나무는 그렇게 매해 새로운 나무가 된다. 봄의 숲엔 그렇게 새로운 나무가 되어 호들갑을 떠는 부산스러운 들뜸이 가득하다.          


  바다는 또 어떠한가. 봄 바다의 바람은 그 끝에 봄의 수분이 달려 끝이 부드럽고 무르다. 맑고 시원한 데다 너그럽기까지 한 봄 바닷바람이 내 볼에 닿을 때, 이 나른한 상쾌함은 절로 나를 행복하게 해 준다. 적절한 기온과 습도의 리듬에 봄기운이 가득한 바람을 만난다는 것은 봄의 호사이다.     


     

  빛이 나는 봄의 오후, 사이트에 의자를 폈다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맥주를 따는 일이다. 여기서! 오후 야외의 맥주엔 라임이 들어가 주어야 한다. 라임이 두세 방울 들어간 맥주를 마시는 순간, 이곳은 봄의 지중해이다(지중해는 안 가봤지만,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허세...).       



  맥주가 아니라면 시트러스 향이 가득한 상쾌한 쇼비뇽 블랑을 웰컴 드링크로 마시는 것도 내가 정말 사랑하는 캠핑 오후의 리츄얼이다. 쇼비뇽 블랑을 더욱 음미하기 위해 샐러드를 준비하는 내 손길은 유독 간결하면서 리드미컬하다. 오목한 접시에 하얀 부라타 치즈를 놓고, 가장자리는 빨간 방울토마토나 연둣빛 샤인 머스켓, 수분 가득한 연두색의 샐러리를 두른다. 그 위에 초록 루꼴라를 얹었다면 재료는 완벽하다. 이제 드레싱의 차례, 나는 소금 톡톡, 바질 올리브 오일 한 바퀴, 화이트 발사믹 한 바퀴의 조합을 선호한다.     


      

  이제는 음미할 시간. 시트러스 향이 가득한 쇼비뇽 블랑을 한 모금 한다. 그리고 포크 가득 녹색의 샐러드를 먹는다. 내 입안에서는 짭조름함과 산뜻함 그리고 부드럽고 아삭한 식감을 가진 샐러드와 푸릇한 쇼비뇽 블랑 한 모금이 차례대로 부서진다. 무엇보다 여기는 지금 봄의 숲, 또는 바다. 내 볼엔 봄의 햇살과 바람, 내 눈엔 연둣빛 새 잎과 꽃들, 내 입엔 근사한 수분이 가득한 음식이 오감을 살랑살랑 일깨운다. 봄의 행복은 여기에 있다.          



  팔과 다리의 근육에 힘이 들어가고, 물건을 들어 올리는 허리와 텐트 천정을 맞추느라 올려다보았던 목 근육이 진심을 다해 움직이는 시간에는 약간의 땀이 함께 한다. 이때 한가하게 불어오는 너그러운 봄바람은 반가운 손길이다. 봄은 노동의 과정도 살살 달래준다. 힘들어도 계속하게 만드는 이 봄바람과 상쾌한 봄의 습도는 요물이자 캠핑 노동계의 팜므파탈이 맞다. 그렇게 내 손으로 정직하게 지은 우리의 텐트가 우리의 사이트에 견고한 픽을 박고 믿음직하게 자리 잡는다. 그리고 내 마음에도 뿌듯함이 자리 잡는다.          


  봄 캠핑의 밤은 낭만의 다른 이름이다. 화로대에 불을 붙이고 마른 장작을 충분히 태우면, 불길은 화로대 안에서 자유로운 붉은 춤을 춘다. 어떤 의도와 목적도 없이 그저 쨍하고 차가운 봄밤의 공기와 만나 춤을 추는 노랗고, 빨갛고, 파랬던 뜨거운 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있는 그대로의 본질의 모습이란 그렇게 자유로운 모습일 것이 분명하다. 눈에는 붉음들이 가득하고 코에는 불 냄새가 아린다. 불 냄새의 그 회색의 꼬소한 향은 늘 그윽하게 나도 모르는 과거의 어떤 추억을 가져오는 듯하다. 불은 현재라면 불 냄새는 어쩌면 과거의 것인 것만 같다. 이 황홀한 춤이 기억난다면, 어쩔 수 없이 다음에도 캠핑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밤의 시간만큼이나 내가 좋아하는 시간은 봄 캠핑의 아침이다. 캠핑의 아침엔 언제나 커피 한 잔이 함께 한다. 커피 향이 아직 서늘한 봄 아침의 공기 사이에 스며들어간다. 봄의 햇살은 바람만큼이나 너그럽다. 새것의 아침 햇살은 유난히 더 맑은 느낌이다. 의자에 앉아 다정한 봄 햇빛 샤워를 하며 커피를 한 모금하고 있으면, 어느새 새소리가 들린다. 그 가볍고 맑은 새소리를 BGM 삼아 커피를 마시는 캠핑 아침의 행복감은 부드러운 커피와 함께 은은하게 스민다. 이 소극적인 은근함이 편안해서 좋다. 이 고요한 평화 속에서 서서히 깨어나는 자연의 아침이 나는 정말 좋다.          



   하루의 햇살과 바람은 매 시기마다 각기 개별적으로 다르게 아름답다. 온종일 자연에서 함께하는 캠핑은 이 아름다움을 세세히 피부로 느끼게 해 준다. 연두색 다정한 봄바람이 불면 내 마음도 함께 들뜬다.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풀 향을 맡고, 새소리를 듣는다. 봄이 내린 아침과 오후, 밤을 모두 누리는 호사를 누리기 위해 기꺼이 땀 흘릴 준비가 되어 있다. 그리고 기쁘게 먹고 마실 준비가 되어있다. 내 눈과 코와 귀와 뺨은 그 순간들에 진심으로 열려있다.      



   내 감각들이 기쁜 호흡을 하는 순간을 만나고 싶다면 봄의 숲으로, 바다로 가자. 내 두 발로 오래도록 그 자리에 있던 흙을 밟고, 새것의 잎과 꽃을 향유하자.

나도 그 곳에 가면 살랑살랑 가볍디 가볍고 찬란히 아름다운 연둣빛 낯선 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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