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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윤 May 13. 2022

집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작년 여름, 아는 교수님께서 이사를 하셨다며 고맙게도 나를 초대해주셨다. 내가 아는 사람 중 자신만의 문화가 확실하고 풍부한 분이어서 새 집은 또 어떤 공간일지 기대가 되었다.       


    

  나는 화분을 사 가기로 마음먹고 화원에 들렀다. 여름의 화원에는 많은 화분들이 물을 머금고 환한 잎을 보이고 있었다. 그중에 단 하나, 내게 있어 여름날 가장 시원해 보이고 예쁜 화분으로 저장된 몬스테라는 그날따라 잎에는 초록의 생기가 가득했고, 간결하면서도 여성스럽고 뻗은 줄기는 여느때보다 우아했다. 실은 처음부터 몬스테라를 염두에 두고 간 나이지만, 역시 실제로 봐도 역시나였다. 내가 보았을 때 둥근 잎에 사이사이가 시원하게 갈라져있고 잎이 넓은 몬스테라는 여름에 더 맑고 우아하며 예쁘다. 더욱이 몬스테라는 실내에서 정말 잘 커주는 상냥한 식물이다. 그래서 자신 있게 몬스테라를 들고 집들이에 나섰다.


          

  교수님 댁은 역시나 교수님의 취향으로 가득한 공간이었다. 해외여행을 갈 때마다 그 나라의 골무를 모으시는 교수님이어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골무들이 한 자리를 근사하게 차지하고 있었다. 이것들만 보는 것도 참 재미나다. 어떤 방은 강의와 작업을 위해서만 할애되어있었는데, 그 방에 들어서면 왠지 일이 아주아주 잘 될 것만 같은 아우라가 있었다. 그리고 거실엔 교수님께서 요즘 관심 있게 보고 계신다는 그림책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담고 가지런히 또는 자유롭게 놓여있었다.   


        

  한 사람의 취향으로만 가득한 공간에 초대되어 집안 공간을 보고 있으니, 마치 새로운 곳에 여행을 온 기분이었다. 한 사람의 취향은 곧 그 사람만의 문화가 되어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교수님이 고르셨다는 모던하면서도 클래식한 중문과 전체적으로 깔끔하면서도 우드 느낌이 주는 무게감이 골격을 보여주었다면, 그 안의 책과 골무, 가구들은 취향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어떤 간섭 없이 오롯한 한 개인의 문화가 담긴 공간에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곳에는 낯선 공기의 흐름과 아우라가 있었다. 그 낯선 기운이 나는 참 좋았다.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내 기존의 생각에 더 넓은 면적을 넓혀주는 기분이었다.


           

  나는 세 식구의 문화가 서로 간섭하고 배려하는 집에 살고 있다. 단적으로 거실엔 아이의 책과 내 책이 한 책꽂이에 같이 꽂혀있다. 사실 내 책장엔 어른 책이 꽂혀있어야 미적으로 더 예쁘다. 요즘 책들은 폰트 디자인도 감각적이고 표지 색도 다양해서 어떻게 꽂느냐에 따라 베리에이션이 달라져서 인테리어 효과까지 있다. 하지만 아이의 전집은 영역에 따라 노랑, 주황, 하늘, 초록으로 구분되어있다. 아이 방에 이 책들을 놓으면 컬러풀하고 밝은 분위기를 자아내어 예쁘겠지만, 내 책의 감각적인 디자인들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내 집에서 거실은 공용공간이기 때문에 내 책만큼 아이의 책은 동등한 무게의 중요성을 갖는다. 그래서 이 어울리지 않는 책들은 어쩔 수 없이 책장에 함께 꽂아야 했고 얼마간의 미학적 욕심은 타협해야 했다. 아이와 어른이 같은 무게의 동등함을 갖는 집. 그것이 내 집의 공간에 담겨있고 그것이 내 가족의 문화가 된다. 이렇게 집은 한 개인과 가족이 가진 문화의 집합체이다.


           

  서른 중반 이후, 나와 친구들은 결혼과 출산의 과정을 겪고 있었다. 그 시절, 우리는 아이가 어려서 데리고 나가면 많은 불편은 감수해야 했기에 약속 장소는 대부분 집이었다. 그때 오래보아 친숙한 내 친구의 집에 가면 적잖이 놀랐던 경험이 잦다. 어떤 친구 집에 갔더니 거실의 온 벽면이 모두 책장으로 뒤덮여있었고, 내가 이름을 들어본 전집이란 전집들은 다 그 친구 집에 있었다. 그리고 작은 방에도 가득 그림책들이 가득했다. 또 어떤 친구의 집에는 내가 들어본 육아템들이 모두 있었고 이후에 나는 궁금한 육아템이 생기면 그 친구에게 물어보곤 했다.             


  나의 집도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당시 내 집의 거실에는 육아 관련된 고정형 물품이 전혀 나와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나도 다른 집에 가보았을 때 국민 육아템인 아이 체육관부터 아이의 피아노, 책장 등이 모두 나와있는 풍경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나는 아이 관련 물품은 아이 방에만 넣어두고, 필요한 책을 가지고 와서 거실에서 볼뿐 거실에 고정화된 아이의 물건은 없었다. 의도성은 없었다. 처음부터 깔끔한 거실을 지향했던 것도 아니고 아이의 물건과 완벽한 분리를 해야지! 하고 의식적으로 배치한 것이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어 내 집의 공간을 만든 것이었다.


           

  아마 친구들의 집도 그랬을 것이다. 의도하지 않게, 자신이 선호하는 방향으로 어떤 친구는 책을 많이 샀고, 어떤 친구는 육아템을 많이 샀다. 어떤 친구는 다 새것으로만 육아템을 갖추었고, 또 어떤 친구는 유복함에도 물려받은 물건들이 가득했다. 어떤 친구는 화장실에 물기 하나 없고 집이 걸레질로 윤기가 날만큼 반질반질했고, 어떤 친구는 연령이 지난 장난감도 여전히 거실에 있을 만큼 수더분했다. 그 집에 담겨있는 모든 과정들은 자연스러웠고, 자신들만의 선호와 취향, 특성으로 갖추어진 문화가 담긴 세계였다.


           

  나는 그 세계들을 보며, 나에 대해서 그리고 내 친구들에 대해서 모르던 면을 알게 되었다. 아니, 어쩌면 이때 알게 된 모습이 나와 내 친구들의 진짜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그런 사람이었던 특성이 나이를 먹으며 더 선명해지는 것이라 하였다. 어린 시절, 우리는 물리적으로 나이가 어린 까닭에 사회 속에서 나를 좀 더 둥글둥글하게 깎아서 보여줘야 했다. 예의를 갖추어야 했고, 주변의 눈치를 보느라 내가 하고 싶은 행동을 좀 더 우회해서 나타내야 했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나이가 들면 눈치를 덜 본다. 사회생활 속에서 나에게 조언하는 사람도 줄어들고 내가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늘어난다. 어린 시절 “이렇게 해도 될까요?” 했던 내가 이젠 “이렇게 하자!”가 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엄마의 집에 살던 내가 이젠 내가 선택한 것들로 가득한 내 집을 구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들 속에서 내가 가진 개별화의 각이 더 도드라진다.     

 


  친구들과 십수 년을 알아왔지만, 어린 시절부터 알았기 때문에 나는 그들이 사회화가 되어 다듬어진 모습만을 만나왔고 그 모습들이 기억을 구성하였다. 그들과 나는 닮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우리는 더 친하다고 여겼다. 우리는 서로의 의견을 내세우기보다는 언제나 좋은 쪽으로 결정했고 그게 자연스러웠다.           

 


  마흔이 된 지금 나와 내 친구들은 각자가 개별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같은 34평형 집도 나와 친구들 집에 놓인 가구가 다르고 소품이 다르고 배치가 다르다. 같은 현상을 보고도 생각의 방향도 다르고 해석하는 시각도 다르다. 아마도 어릴 때 서로 이랬다면 지금까지 안 만났을 것만 같다.           

 


  하지만, 지금은 이 다름을 만나는 것이 좋다. 마치 책에서 보고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그 나라에 가서 구석구석을 여행한 덕분에 그 나라가 더욱 새롭게 다가오는 것 같다. 다르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뿐만 아니라 덕분에 그 사람을 이해하는 면적을 더 넓힌 것만 같다.           

 


  성장기인 마흔에는 이렇게 서로의 다름을 발견하고,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이해하며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가 보다. 아마 이를 위해서 나와 친구들이 구축한 집에 가보는 것은 하나의 발달과업이 아닐까 하는 발칙한 생각도 해본다.           

  


  문득 내 집에 나를 좀 더 담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좀 더 근사한 나와 내 가족의 문화가 담기는 공간이 되도록 노력해보아야겠다는 기특한 생각도 든다.

아, 인테리어의 완성인 청소를 먼저 해야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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