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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윤 Sep 01. 2024

학교에 놀러도 갑니다

학교심리 관계

  지구는 성실히 하루씩 돌고 또 돌아 개학날에 우리를 가져다 놓았다. 여지없이. 아무래도 지구가 반쪽만 돈 것이 틀림없다. 여전히 세찬 여름 태양의 기세가 쨍쨍한 8월의 마지막주, 여름은 못 가져가고 방학만 가져간 야속한 시간이 교실에 가득하다. 지구가 남겨놓은 여름 덕분에 어린이들의 마음에 방학의 여운이 가득할 수밖에. 창밖의 초록 나무들이 크든 작든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듯, 어린이들은 개학이라는 매머드급 태풍에 직격탄을 맞고 있다.



  "여러분, 슬픈 일 있어요? 슬퍼요?"

사회적 얼굴 따위 없는 투명한 어린이들의 표정은 나의 웃음버튼이다. 무거운 마음은 온 얼굴로 올라가서 눈에도, 코에도, 입에도, 귀에도 내려앉았다. 중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해 겨우 반만 뜰 수 있는 눈, 호기심을 찾아볼 수 없는 시든 코, 이제 곧 얼굴에서도 떨어져 나갈 만큼 아래로 쳐져있는 입. 선생님, 여기는 어디고 저는 어디 있나요.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아요. 선생님, 왜 제 앞에 계시는 거죠. 옆에 앉은 너는 왜 여기 있고 나는 왜 여기 있니. 세상의 허무로 가득한 동그란 얼굴들이 교실에 정처 없이 떠다닌다. 나는 이 표정들이 너무 웃기다. 내가 이 표정을 보려고 개학을 했나 싶다.



  "선생님, 원래 저 이 시간이면 소파에..."

  "야, 나는 일어나지도 않았어."

  "나는 지금 선풍기 앞에서 시리얼 먹을 시간이야."

  "진짜? 나도 시리얼 먹고 싶다. 우리 엄마는 밥 먹으라고 해."

  "선생님 저는요..."

자잘한 빛이 쪼개지며 반짝이는 윤슬처럼 여기저기에서 말들이 터져 나온다. 말을 하고, 친구의 말을 듣고 반응하며 귀가 기지개를 켜고 입이 오물조물 도움닫기를 하고 눈이 탱글탱글 차오른다. 어린이들은 금방 물을 준 화분처럼 얼굴을 쫙 펴고 서로를, 나를 바라본다. 24개의 윤기 나는 둥근 볼과 반짝이는 눈, 장난치고 싶은 입이 동동 떠올라 온 교실을 채운다. 이 알록달록한 장난의 풍선이 모여 우리 교실이 둥둥 뜬다. 흔적 없이 휘발된 허무의 표정이 거짓말이었던 것만 같다. 극적인 표정의 변화, 번개보다 빠른 급속 충전은 어린이들만의 힘이다. 언제 봐도 신기한 이 장면이 오면 나는 나를 맡긴다. 덩달아 나도 둥둥 떠다닌다.



  "저는 학교 오니까 좋아요."

  "와, 사회생활 해버렸다."

  "야, 뭐가 좋아. 나는 싫어."

  "나는 심심했단 말이야. 학교에는 친구들이 있잖아."

  "저도 엄마가 출근하시니까 매일 혼자 도서관만 갔거든요. 학교 오니까 야구도 하고 좋아요."

  "그래. 뭐."

  "그렇지 그렇지. 개학이 좋지! 그럼 그럼!"

교실에 날아다니는 여러 말들 중에 나에게 쏙 필요한 말을 손가락으로 콕 잡았다. 선생님은 언제나 어느 순간에나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이니. 이 말 하나를 가지고 시작해 본다.



  "아침에 학교 오는 길이 얼마나 설렜겠어요. 일어날 때부터 가슴이 두근두근. 오늘은 또 어떤 신나는 일이 있을까 기대되고 그랬잖아요. 설레어서 밥도 잘 못 먹겠고, 세수를 해도 두근거리는 마음이 씻겨지질 않았을 게 분명해요. 너무 좋으니까. 학교 오는 게. 그렇죠? 학교에 오면 내 교실이 있고, 내 자리가 있고, 내 친구들이 있고, 선생님이 있잖아요. 이게 당연한 곳이 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에요. 그렇죠?"

  "와, 선생님이 또 무대를 뒤집어 놓으셨다."

  "자, 그러면 친구들 제대로 한번 만나봅시다. 23개의 미션이 있어요. 교실을 돌아다니며 친구들을 만나 미션을 해결해야 합니다. 각 미션은 모두 다른 친구들과 해야 해요. 함께 미션을 수행한 친구의 이름을 학습지에 써야 합니다. 시작!"



  교실은 즐거운 소란으로 가득해진다. 여기저기서 어깨동무를 하고 서로 팔 껴고 스트레칭을 하고 팔짱 끼고 한 방향으로 돌고 사랑의 총알 날려주느라 바쁘다. 혼자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별거 없는 유치한 짝활동이 교실에서 친구들을 만나면 다르다. 너와 나 사이에 재미가 흐른다. 이 찌릿한 재미는 서로의 손과 눈을 타고 마음으로 들어와 온몸에 전류를 보낸다. 발이 가벼워지고 손이 춤을 춘다. 입은 닫는 법을 모르는 듯 환하게 열려 끊임없이 조잘조잘 움직이고 생기를 담은 힘이 온 눈에 출렁인다. 솟아오른 동그란 볼에 뭍은 신남이 들썩이는 곳에서 너와 나는 어이없어서 웃고 재미있어서 웃고 신이 나서 웃는다. 너와 나의 별거 없는 재미의 세상에 중력은 힘이 없다.



  친구들을 만나봤으면 이젠 친구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시간이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난 것은 다른 사람이니까. 어린이들은 여름방학때 했던 진짜 경험 3개와 그럴듯한 가짜 경험 1개를 간단한 그림과 문장으로 표현한다. 나머지 친구들은 여름방학 이야기 4개를 듣고 그중에서 가짜로 지어낸 경험을 맞춘다. 일명 진진가 게임.

  "저는 해수욕장을 2번을 가서 물놀이를 하고 놀았고요. 수영장을 다니면서 자유형을 배워서 마스터했습니다. 어제 가족들과 00이네 곱창에 가서 볶음밥을 먹었는데 맛있었고요, 선풍기 앞에서 수박을 먹으면서 얼굴에 씨 뱉기를 했는데 다 실패했습니다."

  "선풍기 앞에서 수박이 거짓입니다. 우리 엄마는 음식은 다 식탁에서 먹으라고 합니다."

  "00네 곱창은 곱창 파는 곳이니 볶음밥이 거짓입니다."

  "어, 제 경험으로는 1달 다녀서 자유형 못합니다. 그리고 연우가 수영을 잘할 것 같지 않습니다."

  "야, 너 나를 뭐로 보고!"

  "자, 연우 거짓은?"

  "칫. 맞습니다. 수영장에 다녔는데, 자유형 아직 못 합니다! 곧 할 겁니다!"

한 명  한 명의 여름방학 이야기가 뭉게뭉게 떠다닌다. 여름에 지는 해를 바라보았던 민겸이도, 파도가 세서 바다수영을 못해봤다는 지우에게 바다수영은 은모래 해수욕장이 좋다며 추천하는 예담이도, 워터파크에 갔다가 슬라이드를 탔는데 엄마가 엉엉 울었지만 나는 재미있었다며 허세를 부리는 선우의 이야기까지. 여름의 시간들이 웃음을 타고 서로의 귀에 스며든다. 우리, 각자 서로의 여름을 알아주고 공감해 주고 즐거워해준다.



  교실 바닥까지 한껏 떨어져 있던 무거웠던 24개의 마음들이 이젠 두둥실 교실을 떠다니는 오후, 이젠 또 신나게 뛰어 학교 밖으로 나갈 시간이다. 책가방에 꽂힌 야구배트와 손에 담긴 글러브를 쥐고 하교하는 민훈이와 지율이는 오랜만에 다시 야구를 할 태세다. 많이 참았네, 그동안. 1학기 동안 지지고 볶았다던 서연이와 주은이는 방학 때 서로 읽었던 책을 추천해 주느라 바쁘다. 학교에 오기 싫다던 송윤이는 별안간 남아서 교실을 청소하겠다고 칠판 앞에 딱 붙는다. 연재와 설아도 남겠단다. 송윤이는 칠판에 윤기가 나도록 깨끗하게 지우고, 설아는 물티슈를 뽑아 들어 친구들의 책상을 하나하나 다 닦아준다. 연재는 별안간 물티슈로 교실 바닥을 닦는다.

  "아니야, 아니야, 연재야 그것까지는 안 해도 돼. 우리 어차피 실내화 신잖니."

  "아니에요, 선생님! 이렇게 해야 깨끗하지요."

  "아니야, 연재야 괜찮아. 근데 연재, 네 방은 잘 닦니?"

  "아, 선생님~그건 아니죠."

  "연재 엄마께서 지금 이 모습 보시면 배신감 드시겠는데!"

  "선생님, 진짜 이상하게 있어요. 왜 방청소는 너무 재미없고 하기 싫은데, 교실 청소는 재밌을까요?"

  "그렇지~나도 그래. 그리고 학교 급식에서 주는 디저트는 진짜 맛있어. 근데 같은 거 밖에서 사 먹으면 그 맛이 아니다."

  "맞아 맞아. 나 지난번에 샤인머스켓맛 음료수 똑같은 거 사 먹었거든. 근데 그 맛이 아니야."



  나도 그랬다. 중학교 때 학교 매점에서 사 먹었던 쌀과자가 참 맛있어서 집에 가는 길에 똑같은 과자를 사서 먹었던 날. 집에서 혼자 양껏 먹으니 왜 이리 맛이 없던지. 학교에서는 친구들이랑 나눠먹느라 조금밖에 못 먹어서 감질맛이 났을 수도 있겠다. 배가 더 고팠을 수도 있고.



  이 모든 추측들은 모두 이유가 될 수 있으나 완벽한 한 가지 이유는 따로 있었다. 학교에선 함께였고 지금은 혼자라는 것. 친구들과 함께 과자를 나눠먹으며 너와 나 사이에 흐르던 실없는 농담. 친구들과 주고받는 재미의 찌릿함. 친구와 함께일 때 나는 굴러가는 낙엽에도 웃었고, 둥실 떠오른 보름달을 보며 강강술래를 하며 웃었고, 생선을 물고기라고 말하는 친구의 편식을 만날 때에도 웃었다. 친구는 함께 있지만 다른 이야기를 가진 새로운 세상이었다. 함께여서 즐거웠고 달라서 재밌었다.



  여전히 학교에는 친구들이 온다. 나도 누군가의 친구이다. 우리는 같이 논다. 그러다 싸우거나 미안해지면 꼭 사과를 하고, 또 같이 논다. 같이 노는 게 좋으니까. 너의 이야기를 궁금해하고 내 이야기를 공감받는 게 좋으니까. 시시한 농담이 내 마음에 꽃을 피워주니까.



  외향성과 관계가 행복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긍정심리학에서 널리 알려진 결과이다. 왜 외향성인가. 바로 우리는 다른 사람이 가장 재미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늘 궁금하고 같이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집에서도 우리는 sns를 통해 타인의 삶을 궁금해하고, 인터넷 기사에서도 타인의 사건에 귀 기울인다. 새로운 이야기와 재미는 타인과 함께일때 자주 온다. 어쩌면 호모 사피언스로 살아남은 우리에게 당연한 일이다. 서로 나누는 이야기와 마음은 우리를 생존과 행복에 유리한 위치에 가져다주었다.



  더욱이 학교는 친구, 관계, 이야기, 놀이가 함께이다. 재미에 의미까지 더해진 새롭고 낯선 매일이 학교에 있다. 당연히 학교에서, 교실에서 친구와 놀 때 일상의 구태의연함과 무거운 중력이 무력해지는 경험을 매일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된다. 매일 아침마다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교실에 오르는 충분한 이유가 되어준다.

  “학교에 놀러가냐!”하는 말에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네, 놀러도 갑니다!”

친구들이 모여있는 곳. 매일 낯설고 익숙한 친구와 이야기가 있는 곳. 나는 자주, 그리고 쉽게 즐거웁기 위해 학교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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