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심리 긍정심리
교실은 매 시간 살아 숨을 쉬고, 기지개를 펴고, 두리번거리며 돌아다니고, 여기저기 눈들이 파랗고 빨갛고 노랑의 반짝이는 빛을 내고, 야무지고 설거운 말랑말랑한 손가락이 꼬물 꼬물대고, 입술이 올망졸망 움직여 소리를 내는 곳이다. 이 알록달록한 소란들이 하루의 햇살에 딸랑딸랑 거리며 움직일 때마다 교실에서는 작은 실패와 그만큼의 성취가 반복된다. 수학문제 풀 때의 실패는 음악시간에 목청껏 노래하며 풀리기도 하고, 팀 활동에서 제 목소리가 받아들여지지 않던 시무룩함은 미술시간에 저만의 생각을 제 작품에 표현하는 도중에 a4도화지보다 큰 웅장한 만족감에 냉큼 자리를 빼앗기곤 한다.
어린이들은 교실에서 확장된 성취의 씨줄과 세밀한 실패의 날줄이 엮어지며 저만의 무늬를 만들어내는 중이다. 나의 역할은 어린이들이 반복되는 실패와 성취의 롤러코스터를 타느라 미처 관찰하거나 발견하지 못한 제 무늬를 보게 해주는 것. 아이들이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활동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귀한 실패와 성취의 경험은 결국 어린이들이 제 무늬를 발견하길 바라는 마음에 계획된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미술시간은 일주일 중 단 2시간이지만, 내가 참 좋아하는 시간이다. 눈이 닿는 어디에도 아름다움은 본디 새겨져 있거나 의도적으로 표현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아름다움을 쫒는 일은 내 일상을 확장시켜주곤 했다. 그 확장은 잊고 있던 나를 발견하는 쪽이기도 했고, 익숙한 세상을 낯설게 바라볼 수 있는 질문을 던져주기도 했다. 20대에 시립미술관에서 처음 만난 샤갈에서 나는 파랑에 반했다가 신혼여행 때 니스에서 만난 샤갈에서는 사랑을 보았다. 미술은 그렇게 늘 현재의 나에게 조명을 비춰준다. 일상의 권태에 숨겨져 있던 나를 감각하게 해 준다. 그 고마움을 알기에 나는 미술시감을 아끼고 공들여 만지작거릴 수밖에 없다. 매 시간 기대를 품고 신이 나서 활동자료를 찾고 고르고 선택한다.
오늘 선택한 활동은 데페이즈망(depaysement) 기법을 활용한 건축물 표현이다. 데페이즈망은 주변의 대상을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하면서 동시에 그것과는 전혀 다른 요소를 배치하는 초현실주의 기법이다. 대표적으로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을 예로 들 수 있다. [피레네의 성]에서는 대학 강의 때 프로이트의 정신세계를 설명할 때 자주 쓰곤 하던 거대한 암초가 바다 위에 떠있다. [레슬러의 무덤] 작품은 방보다 장미가 더 크다. [골통드]에서는 건물 지붕에 사람이 가득 내린다.
이질적 요소들의 우연한 만남은 너무도 생경해서 우리를 낯선 세계, 상상의 세계로 순간이동 시킨다. 그리고 내 생각의 습관에 질문을 던진다. 정말 그게 맞아? 당연하게 여기던 게 당연한 게 맞냐구. 안된다고 생각한 게 정말 안 되는 게 맞는지. 어쩌면 내 생각의 습관에 내가 사로잡혀있는 것은 아닌지 내게 묻는다. 좋은 질문을 보고 나는 지금까지와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어린이들에게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을 보여준다. 일단 어린이들의 눈이 확장되고 여기저기서 신기하고 어이없으면서도 웃기다는 말들이 보물 자루에서 보물이 쏟아지듯 쏟아져 나온다. 이런 반응이라면 성공. 르네 마그리트는 우리 어린이들에게도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상상은 엉뚱해도 된다는 것.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것들의 만남에서 새로운 생각과 혁신이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눈으로 정확히 감각했다.
오늘 준비한 활동은 미술에 넘치는 애정을 가지신 선생님께서 공유해 주신 내용이다. 데페이즈망 기법에 따라 인도의 타지마할, 조명이 켜진 파리의 에펠탑,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복궁의 사실적인 사진을 붙이고 그 배경은 파스텔로 채운 후, 그 건물 주변을 고양이, 돌고래, 용 삽화를 색칠하여 붙이는 것이다.
마그리트를 만나 흥분한 아이들은 랜드마크 건물 사진과 삽화들을 조합할 생각에 이미 신이 났다. 그림에 소질과 애정을 가진 서연이와 연서는
“선생님! 고양이나 돌고래 붙이는 거 말고 제가 따로 그려도 돼요?”
“그럼~당연하지.”
“선생님, 배경은 마음대로 그려도 돼요? “
“그럼요. 내가 상상한 이미지를 파스텔로 표현해 보면 됩니다. 파스텔은 무른 재료여서 손에도 묻고 책상에도 묻을 거예요. 대신, 색이 부드럽게 잘 섞입니다. 잘 활용해 보세요.”
“선생님, 저는 이미 제 작품에 반할 것 같아요. “
“선생님, 벌써 기대돼요!”
“자, 여러분들이 작가님이 되셔서 작품에 책임을 가지고 진심으로 표현해 주세요. 마지막엔 멋지게 서명까지 합니다”
잔잔하면서도 명랑한 음악이 나오는 2시간 동안 어린이들은 올망졸망 손을 움직인다.
“선생님, 타지마할 자르기 너무 어려워요.”
동그란 두 개의 구멍에 말랑한 손가락을 끼워 넣고 타지마할을 세심히 자른다. 행여 가위질을 뭉텅하게 했다가 제 작품이 상할까 눈을 도안에 딱 붙이고 도안을 세밀하게 요리조리 돌려가며 고심을 한다.
“선생님, 제 손 좀 보세요. 손 씻고 와도 되죠?”
열 손가락에 더해 손바닥 전체에 파스텔 범벅을 한 도영이는 내 앞에 제 손을 활짝 펴 보인다. 동시에 뿌듯함도 감추지 못한다.
“선생님! 어때요? 제 하늘 좀 멋지죠?”
어린이들의 노력은 정성껏 가위질을 하느라 손에 남은 미세한 근육통에도, 까매진 손바닥에도, 돌고래를 어떻게 배치해 볼까 고심했던 두 눈에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누구의 것도 아닌 제 손으로 제 몸에 제 노력을 새겨 넣고 있다. 그럴수록 제 마음에 뿌듯함의 싹이 퐁퐁 자라며 간질간질한 마음을 감각한다. 그 마음들이 모여 오늘도 우리 교실은 울창해진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아름다운 순간이다.
한 명씩 완성할 때마다 교실 뒷 판의 네모난 각자의 자리에 저만의 작품이 걸린다. 작품이 하나씩 걸릴 때마다 한 개의 조명이 비추는 듯하다. 어린이들과 나는 24개의 작품이 걸린 교실 속 갤러리를 감상한다.
“우와, 서연이는 자유의 여신상에, 연서는 타지마할에 사람을 그려서 넣었네요. “
“와! 선생님! 그리스 로마 신화에 한 장면 같아요!”
“예담이, 민훈이, 도영이는 경복궁이랑 용을 선택한 게 같은데, 참 느낌이 다르다. 그렇죠? 예담이는 용에 은색을 써서 뭐랄까 신비한 느낌이 나는데, 민훈이는 검은색을 써서 에너지가 느껴져요. 도영이는 녹색 용을 써서 좀 더 밝은 느낌이네요. 우와, 신기하다. 어쩜 같은 도안으로 이렇게 다른 느낌이 날까요! “
“선생님! 혜윤이랑 민우도 타지마할이랑 돌고래인데, 느낌이 달라요! 혜윤이는 배경을 저녁노을로 해서 분위기가 있고, 민우는 하늘색 그러데이션을 넣어서 뭐랄까 좀 몽환적이에요.”
“그러네. 우와. 참 우리는 같은 곳에 있고 같은 선택을 할 때도 있지만 결국 자기만의 색과 표현이 있는 거 같아요. 마치 여러분이 다 같은 눈, 코, 입, 예쁜 볼이 있지만 얼굴 생김새는 다 다른 것처럼 말이죠.”
“선생님! 제 그림 이야기도 해주세요!”
“그럼 그럼.”
다 다른 작품들을 만나며 신기해하고, 감탄하고, 격려하고, 각자의 그림을 읽어주는 가운데 24명의 얼굴을 본다. 각자의 마음속에 개별의 뿌듯함이 뭉게뭉게 피어나는 게 보인다. 우리 모두 같은 교실에 있고, 4개의 랜드마크와 3개의 삽화라는 같은 조건에 있지만 우리는 다 각자의 생각과 목소리와 표현을 한다. 개별적인 다른 생각들은 더 다듬어진 것과 아직 성글은 것은 있더라도 틀린 것은 없다. 교실 벽에 붙은 같은 면적을 차지한 24개의 그림이 그 증거이다. 그러니 괜찮다. 네 생각으로 너만의 무늬를 만드는 일은. 그게 세상을 좀 더 다채롭게 만드는 일이니.
긍정은 좋게 생각한다는 것이 아니다. 국어대사전에서 ‘긍정하다’는 ‘그러하다고 생각되어 옳다고 인정하다’의 뜻을 가진다. 나를 긍정하는 것은 결국 나를 인정하는 것이다. 나의 실패와 성취로 짜여진 내 무늬를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나를 긍정하는 것이다. 쓰디쓴 실패의 과정에서 알게 된 나의 약점을 누구에게 들킬까 전전긍긍하며 숨기는데 애쓰는 것이 아니라 내 약점을 내가 쥐고 나와 타인에게 모두 인정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내 강점을 내가 알고 내 강점이 발휘될 수 있는 환경을 선택하여 나로 살아가는 에너지는 손사래 치며 겸손하는 태도가 아닌 내 강점을 인정하는 효능감이 필요하다. 그래야 나로 살 수 있다. 그러기 위해 나를 발견하고 인정해야만 한다.
교실에서 어린이들은 수학 문제를 풀 때, 리코더를 불 때, 그림을 그릴 때, 뜀틀을 뛰고 매트에서 스트레칭을 할 때, 쉬는 시간에 달팽이 놀이를 할 때마다 각자 다른 나를 만나고 너를 만난다. 개별적으로 다른 너와 내가 함께일 때 싸우고 눈을 흘기면서도 달라서 낄낄 웃는다.
어린이들은 각자가 만들어낸 무늬를 보며 내 무늬의 같고 다름을 발견한다. 나의 그림과 다른 친구들의 그림을 보며 나의 다름을 긍정한다.
동시에 그래도 괜찮음에 안심한다. 교실 벽에 모두 같은 면적의 자리를 갖고 있음이, 그 자리에 내 이야기도 두 다리 쭉 뻗고 걸려있음이 그 확실한 증거가 되어준다. 그렇게 교실에서 나라는 긍정이 두 다리 쭉 뻗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