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심리 학교폭력 아동발달
"선생님, 엄지손가락이 아픈데 보건실 다녀와도 될까요?"
"어머, 무슨 일이야. 어쩌다 그랬어?"
"방금 서우랑 야구 태그놀이를 했어요. 제가 서우 태그 하다가 제 손가락이 서우 발에 밟혔어요."
"어디 보자. 많이 아파?"
"좀 아파요."
민국은 제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왼손으로 잡고 말한다. 오른손 엄지손가락이 왼손가락에 비해 빨갛다.
"그래, 어서 보건실에 다녀와. 보건 선생님께 어쩌다가 다쳤는지 자세히 설명드리고. 서우야, 민국이랑 같이 놀다 그랬으니 같이 다녀와."
"골절은 아닌 것 같다고 하셨어요. 그래도 점심시간까지 부으면 병원에 가보라고 하셨어요."
"지금도 아파?"
"네, 좀 아파요."
민국은 손가락 간이 보호대를 하고 교실로 돌아왔다. 골절은 아니라니 다행이다. 그렇다면 이제 나의 쇼타임.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민국이와 서우를 바라본다. 과장된 음률에 실어 한 글자씩 스타카토로 끊어가며 민국에게 내 목소리를 보낸다.
"아, 그런데 지금 교실에서 태. 그. 놀. 이. 를 했다는 거지? 그것도 맨. 손. 으.로?"
"아... 네..."
"태그 하려고 서우는 열심히 달려오고 민국이는 서우의 속도와 무게에 맨. 손. 을. 댔다는 거지? 번갈아가며 열심히 뛰었겠네? 교. 실. 에. 서?"
나는 장난 한 스푼을 섞은 뉘앙스였으나 나는 민국에게 선생님이다. 유머러스한 민국과 평소엔 농담을 주고받기도 하지만 민국과 나는 서로의 역할을 존중한다. 내가 쏜 한 글자들이 민국의 귀와 얼굴에 닿을수록 투명하고 하얀 피부를 가진 민훈의 얼굴은 점점 붉어졌다.
"왜 교실에서 뛰면 안 되지?"
"교실은 실내여서 좁으니까요."
"뛰다가 옆 사람이랑 부딪힐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 선생님께서 여러 번 말씀하셨지. 너희는 지금 태어난 이래 가장 키도 크고 힘도 세다구. 너희가 얼마나 힘이 센지 모르고 어릴 적처럼 몸으로 놀다 보면 다칠 수 있잖아. 그러면 재미로 놀려고 했다가 서로에게 미안한 일이 생긴다고 했잖니. 이제 수업 시작하자. 자리로 들어가세요."
"네."
민국과 서우는 여름 땡볕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귀까지 붉어질 정도로 서로의 우정을 땡글땡글하게 익혀가면서도 사소한 일에는 마치 그런 적이 없었던 듯 제대로 다투는 사이다. 놀다가 다치는 일에는 광활한 마음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도 서우의 떨어진 연필 한 자루를 누가 줍느냐로 싸운다.
"네가 주워."
"야! 미안해.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어."
"그러니까. 네가 주우라구."
"알았다."
"어! 그런데 이거 연필 부러졌어. 이거 물어내."
"뭘 물어내. 이거 이미 쓴 거잖아."
"그래도 새 걸로 물어내. 연필 부러졌잖아."
"내 거 하나 줄게."
"그건 내 연필 아니잖아. 물어내. 새 걸로. 손해배상도 해야지."
"그런 게 어딨어. 중고잖아."
하루종일 매 쉬는 시간에 거쳐 연필을 물어내라는 서우와 말도 안 된다는 민국은 그건 아니다로 싸울 때 나는 농담으로 물었었다.
"너희 오늘 매 쉬는 시간마다 싸우고 있잖아. 그러니까 이제 같이 안 놀 거지? 그렇지?"
"아니요."
"왜, 사람이 일관성이 있어야지. 계속 싸우는데 왜 놀아. 놀지 마."
"에이, 선생님. 저희 원래 그래요."
다만 두 어린이는 서로의 탓을 하지 않는다. 물러설 수 없는 웃음기 뺀 제 주장만 있을 뿐. 오늘 서우와 함께 지도를 받을 때, 서우의 발에 밟힌 민국은 한 번도 서우 탓을 하지 않았다. 손가락에 남은 붉은 통증을 제 민망함으로 만지작 거릴 뿐이었다.
민국은 서우가 자신을 다치게 하려는 의도가 없었고 같이 놀다가 그런 것으로 제 손이 다친 것은 서우 탓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손은 아프지만 제가 규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에 누구의 탓을 하지 않았다. 민국은 그런 아이다 상황을 파악하고 상대의 입장에서 상대의 말과 행동을 헤아릴 줄 아는 사회적 조망수용능력을 발휘하는 동시에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볼 줄 아는 자기 관리능력이 균형 잡힌 아이. 그 사이사이에 유머와 즐거움을 윤활유로 사용할 줄 아는 아이다. 나는 그런 민국을 보며 그 힘이 늘 민국을 돕겠구나 하고 여겼다.
"민국이가 오늘 쉬는 시간에 서우랑 야구 태그놀이를 하다가 서우 발에 오른손 엄지손가락이 밟히는 일이 있었어요. 보건선생님께서는 골절은 아닌 것 같으나 혹시 모르니 손이 부으면 병원진료를 권유하셨어요. 점심시간까지는 붓진 않았는데, 민국이는 여전히 통증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한번 지켜봐 주세요."
"네, 선생님......"
"..."
잔뜩 갈라진 민국 어머니의 목소리에 피로가 가득 담겨있다. 학부모 총회 때 뵈었던 겸손하고 세련된 매너와 매칭이 되지 않는 어색함. 전화를 끊으려는 순간 시작되었다.
"선생님, 실은 이 말씀을 드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했어요."
"무슨 일이시죠?"
"어제 민국가 학교폭력 가해자라는 서류를 받았어요."
"네 예?! 민국이가요? 왜요? 무슨 일이에요?"
"어제 생활부장님께서 전화도 주셨는데 학교 밖에서 일어난 일이어서 담임선생님께 따로 말씀드리지는 않으셨다고 하시더라고요. 같은 교회를 다니는 3학년 동생이 올봄에 민국이가 자기를 놀렸다고 학교폭력을 신고했대요. 민국이가 찐따라고, 진상이라고 놀렸대요."
"네 예!? 그런 말은 평소에 민국이가 쓰는 말이 전혀 아니잖아요. 민국이 그런 말 안 쓰잖아요."
"그렇죠, 저도 듣고. 민국이가요? 하고 물었는데 그렇게 신고가 들어갔다고 해요. 심지어 올봄이라는데, 민국이는 작년 여름부터 반이 나뉘어서 그 아이랑 올해는 같이 놀았던 적도 없고 같은 반이었던 적도 없다고 해요. 심지어 다른 아이는 옆에서 형아들이 놀리는데 가만히 있었다고 신고했대요."
"맙소사. 이건 말이 안 되는데요. 민국이가 그럴 리가 없는데 이게 무슨 일이에요. 제가 당황스럽네요."
"어제 서류를 받고 놀라서 민국이에게 물어봤어요. 혹시 네가 그 동생을 놀렸으면 말해라. 사과할 일이 있으면 사과해야 한다. 했더니 민국이가 절대 그런 말 안 했다는 거예요. 놀이시간이 같이 피구 하거나 지나가면서 인사정도 하는 동생이었대요."
"그렇죠. 민국이가 혼자 있는 친구들에게 말도 잘 걸어주고 농담도 해주는 아이잖아요. 뭔가 잘못된 것 같아요. 다만 안내받으셨겠지만 민국이가 아무리 안 했다고 해도 일단 학교폭력은 신고가 들어가면 진행이 됩니다. 학교폭력전담조사관분의 조사도 받아야 하고 그 과정에서 민국이가 힘들겠어요."
"저도 그 과정에서 민국이가 상처받지 않을까 걱정이 돼요. 저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요. 어제 제가 걱정하는 게 보였는지 민국이가 되려 자기는 그런 일을 한 적이 없으니 잘 될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저를 위로하더라고요. 혹시나 안 좋은 일이 생길까 봐 너무 무서워요, 선생님."
"저도 한번 어떻게 된 일인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바쁘신데 죄송해요. 손가락은 제가 집에서 잘 보고 혹시 부으면 병원에 데려갈게요, 선생님."
가끔 의심이 될 때가 있다. 그럴 땐 묻는다.
"00 이에게 들었는데 그런 일이 있었니? 그 상황을 말해봐."
다그치지 않는다. 다만, 어린이이니 그럴 수 있다고 여긴다. 고치면 된다고 생각한다. 어린이는 지금 하는 말과 행동이 상대에게 미치는 영향을 모르고 잘못된 행동을 할 때가 있다. 어린이의 자기 중심화 경향은 이기적인 것이 아닌 당연한 발달 특성이다. 어린이는 여전히 타인이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 여긴다. 그래서 아빠의 생일선물을 줄 때 아빠가 바라는 것을 떠올리기보다 내가 갖고 색종이 선물을 준다.
주변 어른들이나 발달이 빠른 또래의 역할이 여기서 나온다. 상대의 마음이 나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일. 어린이가 현재 가진 생각의 측면과 뒷면을 알려주는 일. 그게 어른인 내가 도와줄 역할이다.
한 가지 더한다면, 나는 무엇보다 그 행동이 자신의 성장에 상처를 낼 수 있음을 알려주고자 한다. 내 주변을 좋은 사람으로 꾸리기 위해 나는 나를 좋은 사람으로 키워내는 일. 내가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좋은 사람들 속에서 나를 키워주는 일이라 믿기 때문이다.
민국의 사건을 듣고 나는 의심이 들지 않았다. 민국은 그럴 리가 없었다. 사람 속은 모르는 것이라고 하지만 민국은 아니다. 경험으로 판단하는 것의 함정을 알고 있다. 동시에 어린이는 일 년 동안 자신을 거짓으로 꾸미지 못함도 알고 있다. 민국의 평소 말투와 단어의 결에 너무나 낯선 단어이고 상황이다. 어린이들도 불리한 경우 ‘기억이 잘 안 난다.’라고 말한다. 민국은 아니다.
학교폭력전담조사관이 민국과 보호자 조사를 하는 날이 되었다. 아침부터 민국을 보는 내 마음이 짠하다. 괜히 한마디 건넨다.
“역시, 민국! 맨 앞자리 앉으니까 정말 좋지? 완전 명당이잖아.”
“아하하하.. 그러니까요. 좋좋좋좋... 네요.”
나도 내색하지 않고 민국도 굳이 말하지 않는, 아무렇지만 아무렇지 않은 마음을 수업이라는 일상의 시간으로 덮었다. 일상은 때론 폭력적이지만 일상의 이불에 숨는 것이 다행인 날도 있다.
“민국아, 잠깐 이리 와봐.”
중간놀이시간, 민국의 조사 차례이다. 우리는 4층에서 2층까지 천천히 내려갔다.
“민국아, 걱정하지 마. 있었던 일대로만 말하면 돼. 그게 맞아. 알지?”
“네.”
간질간질한 다정함이 부족한 선생님은 그저 민국의 뒤에 서서 민국의 어깨에 두 손을 얹고 투박하게 말하고 돌아선다. 며칠 전보다 마음을 가라앉히신 민국의 부모님도 보인다.
“일단 절차가 이렇다고 하니 따라야지 싶어요.”
“네, 별일 없을 거예요. 너무 걱정 마세요.”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학교폭력은 모두의 책임을 분산시키기 위해 전담조사관, 생활부장, 교육청까지 매뉴얼에 따라 진행된다. 교직경력이 18년이 되어가고, 교육학을 공부했고, 민국을 일 년간 지켜본 나는 이 과정에서 한 마디 하지 못한다. 누구도 나에게 묻지 않는다. 관계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연 교사는 어디까지 관계인인가. 집 엘리베이터에서 같은 라인에 사는 친구가 놀려서 이것을 해결해 달라고 할 때 교사가 필요하지만, 우리 반 아이의 억울함을 말할 때는 담임교사가 필요하지 않는다. 내 말은 상대의 필요에 따라 무게가 있다가도 없어진다. 필요한 순간은 누군가의 어려움을 처리하는 순간일 뿐, 내가 말하고 싶은 순간에 내 말은 무게를 잃는다.
3교시는 놀이체육시간. 오늘은 마피아 자리 바꾸기 게임을 하기로 했다. 반 전체가 둥그렇게 둘러앉고, 술래가 가운데에 서서 가위바위보를 한다. 앉아있는 사람 중 지거나 비긴 사람은 자리를 바꿔야 한다. 다만 마피아로 뽑힌 사람은 무조건 자리를 바꿔야 해서 다른 친구들이 마피아를 맞추는 게임이다. 앉는 자리는 사람수보다 1자리가 적어서 앉지 못한 사람은 술래가 된다. 술래 3번이 되면 장기자랑을 해야 한다.
자리를 만드는 어수선한 틈에 민국이 돌아왔다. 시끌벅적한 틈에 민국도 제 자리를 만들어 앉는다. 마피아를 뽑고 게임이 시작된다.
“가위바위보! “
“어어어!! 재 마피아다!!”
민국이 3번의 술래에 걸리고야 말았다. 민국은 가운데에 서서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춤을 춘다. 민국도 친구들도 웃는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 그 모습을 영상으로 담는다. 어지러운 마음이 어지러운 교실의 웃음과 만난다. 마음이 상황에 부딪혀 꺾이지 않고 마음과 상황의 엎치락 뒤치락의 파도가 서로 맞아 함께 넘실대는 행운의 순간이다. 이런 말랑말랑한 순간의 다리를 넘어 우리는 다시 일상의 수업으로 갈 수 있다.
우리의 남은 일상을 일상적으로 마무리하고 인사를 건넨다. 겉으로 보이진 않지만 누구나 오늘을 살아내느라 여러 번 일렁였을 각자의 마음을 여러 번 다스렸던 우리는, 나도 너도 수고했다는 안녕을 건넨다. 오늘도 우리 오늘을 다독이며 잘 살았다.
“잘 가.”
“안녕히 계세요. 사랑해요!”
가정에서도 볼 수 있는 우리 반 e클래스에 오늘 활동을 업로드한다. 미술시간에 추석맞이 활동으로 노란 달을 공판화 기법으로 표현하고 소원을 적었던 미술 작품을 업로드한다. 한 명 한 명의 노랗고 동그랗게 빛나는 달에 달보다 빛나는 소원이 반짝인다.
놀이시간에 민국의 장기자랑 한바탕 영상도 올린다. 학교폭력전담조사관에게 민국과 함께 조사를 받기 위해 학교에 오셨던 민국의 부모님의 심란한 마음을 나는 감히 헤아리지 못한다. 절차를 지키셨던 젠틀한 매너아래 이해되지 않는 절차에 대한 마음, 아들의 곤란에 대한 억울함, 억울한 사람을 위한 학교폭력 제도가 되려 억울한 사람을 만드는 이상한 상황에 대한 불만을 다스리시느라 여간 애를 쓰셨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담임교사에게 어떤 부정적 표현도 하지 않으셨던 분들이다. 민국의 매너는 아마 여기서 왔으리라. 헤아리지 못할 민국 부모님의 마음이 친구들 속에서 웃고 있는 민국의 모습이 담긴 영상으로 해결되리라 여기지 않는다. 나는 그 절차를 해결해 줄 수 있는 힘이 없다. 다만 민국의 긴장과 걱정이 교실이라는 믿음 안에서 큰 숨을 내쉬었다는 다행을 전하고 싶었다.
민국에게는 나를 믿어주는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잘 못한 일에는 혼이 나는 것이고, 잘 해낸 일에는 보람을 느끼는 것이 세상이라는 것. 내가 하지 않는 일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까지. 내 행동에 정당한 반응을 보여주는 게 민국이 사는 세상이라는 손에 잡히는 결과를 감각하게 해주고 싶은 욕심이 든다. 그 세상에서 민국, 그리고 어린이는 세상을 믿고 두발 쭉 뻗고 하고싶은 일을 하길 간절히 바란다.
세상을 믿어야 가질 수 있는 덕목이 비로소 희망이다. 믿을만한 세상에서 어린이는 희망을 품고 목표를 세우며 나를 실현하며 살아갈 수 있다. 힘없는 목소리를 가진 보통 어른이지만 어린이에게 주고 싶다. 세상에 대한 믿음. 그 안에서 한 명 한 명의 어린이의 마음속에 품어갈 알록달록한 희망의 씨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