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결핍이라고 생각했다. 한 사람의 생을 뒤흔들 수 있는 선택을 기어코 하게 만드는 힘. 부유하진 않지만 크리스마스가 되면 부인과 영리하고 사랑스러운 다섯 딸에게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안겨 줄 수 있는 펄롱이 현재의 안락을 흔들면서도 위험에 빠진 아이를 구하기 위한 손을 내밀 수 밖에 없던 이유.
역시 소설은 나와 멀다고 여겼다. 나는 어느 것 하나 특출나지도 움푹 패일만큼 부족하지도 않은 적당한 삶을 산다.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알고, 지독히 가난하지도 않았고, 공부를 너무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았고, 사춘기도 있었나 싶게 지나가버린 평범한 삶. 이런 나는 드라마틱한 소설의 인물과는 당최 겹쳐질 수가 없다 여겼다. 소설은 이렇게 내 삶과 저만치 거리를 두고 있었지 하며 한동안 소설을 못 읽던 이유를 다시 확인했구나 싶었다. 겨우 이름과 얼굴만 알고 있으면서 그 사람을 안다고 쉽게 단정짓는 성급한 사람이 되어 아주 오랜만에 소설을 한번 보고 혼자 진단을 내렸다. 얇은 책은 접어두기에도 참 쉬웠다.
독서모임이 임박한 어느날 내용을 정리하기 위해 한번 더 읽었다. 맙소사. 사람도 삼 세번은 봐야한다더니.
미시즈 윌슨과 네드가 보였다. 미혼모인 엄마로부터 빈주먹으로 태어나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른채 살아온 펄롱이었다. 열여섯에 펄롱을 임신한 펄롱의 어머니는 가족에게 버림받았다. 다행히 펄롱의 어머니가 가사노동자로 일했던 집의 미시즈 윌슨은 어머니를 거두어주었다. 자녀가 없던 그녀는 펄롱의 어머니가 죽은 이후에도 펄롱을 돌보며 교육을 받게 해주었다. 윌슨의 집에서 일하던 네드는 펄롱의 구두를 닦아주었고, 첫 면도기를 사주며 면도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그저 펄롱의 옆에 있어주었다.
펄롱은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그것들이 한데 합쳐져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펄롱이 모두에게 버림받은 연약한 세라에게 손을 내민 것은 결핍이 전부가 아니었다. 펄롱의 결핍은 안락한 현재의 펄롱을 회색빛 거리로 내몰곤 했다. 성실하고 안온한 삶에도 결핍이 뚫어놓은 정서의 구멍엔 스산한 바람이 불어왔고, 그럴때마다 펄롱은 혼자 빈거리를 걸을 수 밖에 없었다.
펄롱은 어쩔 수 없는 태생적 결핍에도 불구하고 미시즈 윌슨으로부터, 네드로부터 사소한 친절과 돌봄, 도움을 받아본 사람이었다.
결핍은 그를 회색빛 거리로 내몰았지만, 그가 받은 친절과 돌봄은 그가 연약한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게 해주었다. 나를 위해 누군가가 문을 잡아준 경험이 있는 사람은 언젠가 다른 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줄 수 있다. 나의 고생을 알아주는 격려를 받아본 사람은, 누군가의 수고에 격려를 해줄 수 있다. 그렇게 친절과 격려와 도움은 힘들이지 않고, 굳은 의지와 결심이 없어도 자연스러운 동기가 되어준다.
결국은 사랑. 사소한 사랑이었다. 우리의 스산한 보통의 삶을 서로 돕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나 움푹 패인 결핍이라기보다는 사소한 사랑. 마음씀의 순환. 사소한 사랑이 자잘하게 흩어뿌려져 아득히 반짝이는 것. 이토록 사소한 것들이 우리의 선택을, 행동을 만든다.
다정한 눈빛, 온기가 담긴 친절한 말투. 어쩌면 오래전 나에게 누군가가 주었을 친절의 태도일것이다. 동시에 이젠 내가 나누어야할 이토록 사소한 태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