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기억의 부자 되기 학습심리 공부법 교육 심리
학습(學習)은 배울 학(學)과 익힐 습(習)으로 이루어집니다. 수영을 동영상이나 선생님의 시범으로 배웠다고 해서 수영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 번 연습으로 내 몸에 익혀야 내 것이 됩니다.
‘Practice makes perfect’
익숙해서 낡은 문장이지만, 여러 세대에 거쳐 오늘도 이 문장이 살아있는 이유는 여전히 반복된 연습이 중요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공부하는 우리의 뇌는 강도보다 빈도로 바뀝니다. 반복할 때마다 단기기억까지 온 새로운 정보는 우리의 장기기억에 딱풀로 착 붙습니다. 풀도 여러 번 붙이면 더 단단해지듯이 기억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습에서 반복의 중요성을 제시한 대표적인 심리학자인 에빙하우스(Hermann Ebbinghaus)의 망각곡선을 보면 반복학습의 중요성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EBS '공부의 왕도' 중 '망각 곡선’
공부를 마치고 20분이 지나면 우리의 기억 속에는 공부한 내용의 58%만 남아있습니다. 불과 20분 만에 기억의 40%는 망각됩니다. 1시간이 지나면 남는 기억은 44%, 일주일 정도 지나면 25%, 한 달이 지나면 학습내용의 21%만 기억에 남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공부하고 한 시간 후에는 50% 이상, 일주일 후에는 80%의 기억은 사라집니다.
수업시간에 열심히 집중해서 참여했지만 사라지는 기억. 이거 어떻게 하죠?
출처: EBS '공부의 왕도' 중 '망각 곡선의 변형'
에빙하우스는 시간 텀을 둔 정교한 복습으로 기억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학습 직후에 1번, 1시간 후 1번, 하루 후 1번, 일주일 후 1번, 한 달 후 1번. 정교한 간격을 둔 반복은 학습내용을 장기기억 속에 꽉 잡아 실력이 되어줍니다.
사실, 반복은 참 어렵고 고된 일입니다. ‘No pain, No gain’이 고통 없이 얻어지는 것은 없다는 속담은 다시 말하면 노력, 즉 반복은 고통스럽다는 뜻이잖아요.
반복에 배신당하기도 합니다. 형광펜으로 중요한 내용을 표시하고 밑줄을 그어가며 열심히 역사 교과서를 10 회독했는데도 썩 결과가 좋지 않았던 경험이 있을까요? 또는 시험 전날 수명이 단축되는 것을 느끼면서까지 벼락치기를 전심으로 했지만, 결과가 썩 좋지 않았던 경험은요? 시간과 노력을 쏟았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 참 속상합니다.
나는 반복해도 안 되는 사람일까요? 아닙니다. 다만, 더욱 정교한 반복의 방법을 아직 모르고 있었을 뿐입니다. 제대로운동하지 않으면 되려 몸이 다칩니다. 공부법도 마찬가지예요. 제대로 된 반복이 최선의 결과를 이루어냅니다. 공부법을 제대로 알아야 하는 충분한 이유입니다.
효과적인 공부법?
공부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아마도 ‘읽기’ 일 겁니다. 당연한 일이죠. 읽고 또 읽습니다. 밑줄도 긋고, 중요한 부분에 형광펜이나 색볼펜으로 표시도 하면서요. 하지만 많이 읽었다는 것이 기억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미국의 켄트 주립대학의 심리학과 교수인 존 던로스키(John Dunlosky)와 동료들은 우리가 흔히 쓰는 공부법 가운데 효율적인 방법은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학습법에 관한 연구를 리뷰하고 각 공부법의 효과를 밝혔습니다. 학습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면서 적은 시간 대비 효과가 크고 시간이 지나도 기억량이 높은 것일 때 효율적인 공부법으로 판단하였습니다. 학습효과가 있더라도 해당 학습법을 사용하기 위해 학습자에게 고차원적인 능력을 요구하거나, 많은 시간이 필요하거나 장기기억에 남은 기억량이 적다면 그 학습은 효과가 낮게 평가됩니다.
출처: Dunlosky, J., Rawson, K, A., Marsh, E, J., Nathan, M, J., & Whillingham, D, T.(2013). Improving students’ learning with effective learning techniques: promising directions from cognitive and educational psychology. Psychological Science in the Public Interest, 14(1), 4-58.
연구자들은 10가지 학습방법을 중 학생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인 밑줄 긋기와 하이라이팅(Underlining, Highlighting), 요약하기(Summarization), 키워드 기억법(Keyword Mnemonic), 반복 읽기(Rereading)는 특정 상황에서는 효과적일 수 있으나 전반적인 효과는 낮다고 밝혔습니다.
맙소사! 우리는 그동안 어떤 공부를 해온 것일까요. 교과서와 참고서에 밑줄을 긋고, 형광펜으로 키워드를 표시하며 공부해 온 그 시간을 어쩌죠. 효과가 낮다니요. 시간과 노력을 들였으나 결과 좋지 않았던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었나 봅니다. 하지만, 인정할 수 없어요. 도대체 왜 비효율적이라는 것일까요?
밑줄 긋기의 배신
밑줄 긋기와 형광펜 하이라이팅, 반복 읽기는 좋은 학습법이 맞습니다. 다만, 읽기만 하는 방법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지식의 축적뿐만 아니라 축적된 지식으로 나만의 생각을 지어내는 데 있습니다. 쌓아두기만 하고 활용하지 못하는 지식은 힘이 약합니다.
밑줄을 긋고 반복적으로 읽다 보면 책의 절반 이상의 문장에 밑줄이 그어진 경우가 있습니다. 당연히 중요한 내용이 무엇인지 구별하기가 어려워지면서 어떤 부분에 더 주의를 집중해야 할지 구별하기 어려워집니다.
더욱이 밑줄 긋고 형광펜으로 하이라이트 표기를 하고, 노트정리를 하면 공부했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곳에 밑줄을 긋고, 설명과 판서를 받아 적고, 하이라이팅을 하는 것은 수동적 반복입니다.
수동적인 반복은 자주 봐서 익숙해지는 것일 뿐 깊이 있는 이해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마치 부모님을 자주 보니 부모님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부모님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시는지, 영화 취향은 어떤 것인지,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인지 물어보면 모르는 것과 같죠. 그냥 알기만 하는 것과 깊이 아는 것은 다릅니다.
이를 유창성 착각(Illusion of Fluency)이라고 합니다. 여러 번 본 내용은 스스로 잘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는 거죠. 마치 축구경기를 자주 본 사람이 선수의 실책을 보고 내가 해도 저것보다 잘하겠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아무리 많이 보았다고 해도 매일 훈련을 해온 프로선수만큼 할 수는 없습니다. 선생님의 설명을 들을 땐 다 아는 것 같지만 막상 문제를 풀 때 막히는 경우도 대표적인 유창성 착각의 사례입니다. 레이업 슛을 하는 방법은 아는데 레이업 슛을 실제로 못한다? 그것은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모든 밑줄 긋기와 형광펜 하이라이팅이 학습효과를 내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존 던롭스키와 동료들도 효과적인 상황도 있다고 말합니다. 실제 주의집중에서 밑줄 긋기와 형광펜 하이라이트 표시는 주의집중을 유도하는 효과가 있음을 설명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무수히 많은 정보 중 중요한 정보에 주의집중하여 단기기억으로 보내는 데는 유용한 방법입니다. 다만, 장기기억으로 가기 위해서는 의미 있는 이해가 필요합니다.
다음엔 밑줄, 하이라이팅, 반복 읽기로 장기기억을 만들 수 있는 방법에 관한 비결을 만나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