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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윤 Jul 01. 2022

요리 짧은 엄마와 입 짧은 아들의 식탐 타이밍 잡기

  나는 주윤이에 대해 크게 오해했다. 나는 주윤이가 잘 먹는 아이인 줄 알았다. 아가 때 우유도 꿀떡꿀떡 경쾌한 소리를 내며 쉽게 먹었고, 이유식을 먹을 때도 어려움이 없었다. 당시 나는 이유식을 스스로 만들어서 먹였는데, 더운 여름이어도 불 앞에 서서 주걱으로 이유식을 젓는 일이 전혀 힘들지 않았다. 이유식이 냄비에 눌어붙지 않게 하려고 주걱으로 동그란 동심원을 그릴 때마다 꿀떡꿀떡 먹는 주윤이 얼굴이 똥그랗게 떠올랐다. 기대도 재미도 더했다. 매 끼니 다른 맛으로 이유식을 만들었는데, 요리라는 것을 그때 처음 해본 나는 색색의 채소를 잘게 써는 그 시작부터 재미있었다. 그리고 그 작은 채소들을 다질 때마다 채소에서 나오는 그 비릿한 수분감과 노랑, 주황, 초록, 연두의 개별적인 색들이 참 예뻤다. 그 모든 이유는, 모두 하나다.

“아. 이. 가. 잘. 먹.었.다.”

당시 이유식을 만들어 먹이는 일은 약속된 성취감을 가져다주는 일이었다.           


 

  더욱이 엄마인 나는 어릴 적 우리 집 먹보였고 지금도 어떤 음식이든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친구들에게 “나도 식탐 있어!”하면 어이없어하지만 나는 안다. 한번 키워놓은 식탐은 어디 가는 법이 없는 것을. 물론, 가~아끔 식욕이 떨어질 때가 아주 간혹 있으나, 나는 확신할 수 있다. 하루면, 아니 반나절이면 식탐, 너란녀석은 돌아온다. 더욱이 메뉴가 떡볶이나 김밥 또는 라면이라면 나와 잠시 권태기를 가졌던 식탐은 자존심 버리고 돌아온다. 식탐은 배신이란 없어서 내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믿음직한 나의 반려 특성이다. 더욱이 나의 반려 특성인 식탐, 더 순화시키면 음식에 대한 호의적 태도 덕분에 나는 자주 행복했었다. 나는 이 식탐이 일생을 함께할 것이란 기대에 이미 기쁜 그런 먹보이다.   식탐은 나에겐 기분 좋음으로 향하는 급행열차였다.


        

  남편 역시....! 남편은 현재 우리 집 공식 뚱보이다. 원래 뚱뚱보였는데, 요즘 살이 좀 빠져서 뚱보로 격하되었다. 뚱뚱보가 뚱보가 되었다고 해서 음식에 대한 태도마저 줄어들지는 않음을 그를 통해 나는 알고 있다. 이렇게 어릴 적부터 먹보였던 나와 남편은 소위 말해

  ‘없어서 못 먹지 마음만 먹으면!’

하며 어떤 음식 앞에서도 젓가락과 숟가락을 들이댈 수 있는 음식 효능감이 출중하다. 잘 맞는다는 게 무엇을 함께 하는 것 앞에서 의식적인 배려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라면, 우린 이렇게 음식 앞에서 잘 맞다. 우린 음식 앞에서 짝짜꿍이 맞다.           



  그런데, 누가 콩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고 했던가. 요즘 옛날이야기는 다른 나라 이야기이니 ‘라테는 말이야~’하면 다른 나라 이야기를 우리나라로 가져오는 꼰대라더니 우리 집도 그런가 보다.


           

  “엄마, 저는 물에 빠진 고기는 안 먹어요.”

  그래, 그뿐이겠니. 주윤이는 맛살과 새우, 크랩류를 싫어한다. 새우만 보면 반가워서 어쩔 줄 모르며 입꼬리가 올라가고, 김밥 살 때 맛살 보면 한 줄 먹어야만 김밥 싸기를 시작할 수 있는 엄마를 앞에 두고 “엄마, 김밥에 맛살은 안 먹지요.” 하고 맛살을 빼놓는다.

그리고 “엄마, 달걀은 흰 자만 주세요.” 하는 아들 덕에, 남은 노른자는 나와 남편 몫이다. 내 스타일로 딱 12분만 삶아서 젤리처럼 탱탱한 윤기가 찰랑찰랑한 노란 노른자를 먹을 때마다 사실 흠칫 찔린다. 오늘도 콜레스테롤 수치 바늘이 띵! 하고 올라가겠구나.



설마 음식을 가리는 것 뿐이겠... 주윤이의 혀는 새것이어서 둔탁한 나와 다르다.      

  “엄마! 오늘 우유는 지난번 우유랑 맛이 다르네요?”

  “응? 그래? 어떤 점이?”

  “오늘 우유는 지난번 우유보다 끝 맛이 더 달달해요.”

  “오~그래? 그렇게 달라? 사실 오늘 우유는 서울우유를 사봤어.”          



  “엄마, 오늘 고기는 맛이 없어요. 이게 yucky가 아니라 no flavor 예요.”

  “응. 오늘은 다른 곳에서 사 온 고기야. 다음부턴 원래 사던 곳에서 사자.”          

 


 이 정도 되면, 와인이랑 커피는 주윤이가 마셔야 할 것 같다. 미각이 두루뭉술해서 뭐든 맛있는 엄마가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좋다며 마셔봤자 아깝기만 하지. 낭비지 싶다. 이렇게 미각이 섬세한 주윤이가 한 잔씩 마시면

  ‘이 커피는 에티오피아의 흙과 꽃향이 나고 마지막에 가벼운 산미가 훌륭하네.’

  ‘이 와인은 열자마자 베리향이 산뜻하게 퍼지지만 오크향과 흙 향이 베이스를 잡아주면서 밸런스를 이루는 데다 마지막은 가벼운 단맛이 마무리하는군.’

하고 맛을 자세하고 섬세하게 그려줄 것만 같다. 그러면 나는 옆에서 ‘아, 그래?’하며 어떻게든 주윤이가 그려준 그림의 끄트머리라도 이해해볼까 싶어 귀 쫑긋하고 입에 머금은 한 모금을 끝까지 쥐고 있겠지. 그럼 우리 더 친해질 수 있을 텐데... 언제나 인생은 타이밍이 중요하다.          



  섬세한 미각의 소유자는 먹는 것에 대해 흥미 또한 없는 편인데, 그러다 보니 이제 안전한 선택을 택했다. 새로운 음식에 도전하기보다 익숙한 음식을 더 자주 먹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 좋지 않냐고? 흠...          

 


 주말에 도서관에 들렀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주말 점심 정도는 쉽게 가고 싶어서 주윤이에게 한마디 가볍게 던진다.

  “주윤아, 점심은 김밥 어때?”

  “김밥? 집에서 싼 김밥이요, 아니면 산 김밥이요?”

  “집에 가는 길에 사가자.”

  “어, 엄마 저는 집에서 내가 만든 김밥이요.”

  “그래, 그건 나도 그래. 집 김밥 사랑하지... 일단 그냥 집에 가자.”

  익숙한 맛을 좋아하는 주윤이는 자기가 예상한 것 이외에 다른 재료가 들어간 김밥을 좋아하지 않는 듯하다.      



  김밥뿐만 아니라 최근에 좋아했던 샌드위치도 넣어야 하는 재료를 정해두고 딱 그 재료로 자신이 만든 것만 좋아한다. 식빵, 버터, 트리플 베리 콩포트, 상추, 달걀, 슬라이스 햄, 치즈가 필수 재료이다. 특히 식빵과 슬라이스 햄은 특정 제품만을 넣어야 한다. 이렇게 자신이 믿는 재료만을 넣은 샌드위치나 김밥을 직접 싸서 먹고는 아주 만족스러워한다.           



 물론 행복의 기술로 강도보다는 빈도라고, 좋아하는 것을 자주 하면 된다고 하지만 매번 먹던 것만 먹이면 엄마가 좀 미안해진다.

  “주윤아, 오늘 뭐 먹고 싶어?”했을 때 10 이번 10번 모두

  “돼지고기요. 소금에만 찍어서요.”라고 말하면 나는 쉽다. 늘 가던 가게에서 고기만 사서 구우면 되기에 가장 편하고 고민할 것이 없다. 하지만 엄마의 양심 상, 너무 같은 것만 먹이는 미안함에 어떤 날엔 목살, 다음엔 삼겹살, 다음엔 가브리살, 그리고 운 좋아서 만나면 갈매기살! 이렇게 그 안에서 잔잔하게 부위를 바꾸어보는 시도를 한다.           



  미안함은 좀 힘이 세서, 그 미안함이 좀 커진 날에는 불쑥! 도전의식이 들기도 한다. (아마도 이 고백을 하려고 이 글을 썼나 싶다.) 그런 날엔 새로운 재료를 사보는데, 오늘은 닭봉이었다. 그 이름도 먹음직스러운 닭봉 오븐구이가 오늘의 도전이다.     



  요리의 보고, 인터넷을 검색했다. 하필이면, 나의 인터넷 스승님인 백종원 씨가 닭봉 요리를 안 하셨는지 검색이 안된다. 일단 하트 개수가 많은 인플루언서의 블로그를 보았다. 그런데 몇몇 재료가 집에 없다. 달랑 닭봉만 사온 나는 집에 있는 것으로만 재료를 준비했다. 알려준 대로 해동시킨 닭봉을 우유에 담그고 기다렸다가 올리브유, 마늘을 넣었다. 나는 건강을 생각하는 엄마이기에 소금은 레시피보다 조금 덜 넣고 조물조물했더니 인플루언서분의 사진이랑 비슷하다. 오븐에 닭봉을 하나하나 넣고 작동을 시켰다. 내 머릿속에서 주윤이는 이미 손가락으로 닭봉을 야무지게 쥐고 냠냠 뜯고 있다. 그리고 나는 남편과 까르르 까르르하며 맥주 한잔에 닭봉 구이를 먹고 있다. 우리의 여름 저녁은 그렇게 단란하리라.          



  드디어 완성. 노릇노릇 닭봉 구이를 접시에 담으니 이미 맛있어 보인다. 성공적!

  “오늘은 닭봉 구이야. 이거 애들이 정말 좋아한데. 주윤! 손으로 하나 들어봐.”

  “아! 뜨거워요.”

  “별로 안 뜨거워. 봐, 그렇게 뜨겁진 않아.”

이 말을 하면서 나는 이미 빈정이 상했다. 와락 달려들어 와구와구 먹었으면 하는 나의 기대는 찌익 금이 갔고, 내 앞에는 만지기 꺼려하는 한 명의 입 짧은 소년이 앉아 있었다. 급기야

  “주윤, 이렇게 엄마가 만들어줬는데 안 반가워하면 엄마 기분 나빠.”했더니 그제야 한 입 베어 문다. 그래, 그렇지!      



  그런데 두 입 베어 물고 내려놓는다. 와, 이제 진짜 기분이 나빠진다. 이건 걷잡을 수 없다. 아무리 네가 입이 짧고 먹는 데에 흥미가 없다고 해도 이건 기본적인 태도의 문제가 아닌가. 순간, 나에게는 그동안 안 먹는다, 그만 먹겠다, 이건 싫어한다, 식탁 앞에서 몸을 배배 꼬던 3살 때부터 8살 때까지의 입 짧은 주윤이의 행동들이 다 몰려왔다. 이 싫은 행동들이 모두 몰려온 데다, 이젠 8살인데 상대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지 하는 윤리적 문제까지 가지고 온다. 오늘이다. 가르쳐야지! 태도가 안 되어있어!           



  내가 먼저 보여줘야지. 하고 노릇한 닭봉을 쥐고 한 입 베어 물었다.

  “주윤, 봐봐. 이렇게 맛....”

  “미안하다. 소금 찍어먹을래? 아니면 소스?”

  “엄마, 소스.”

  “그래, 엄마가 소스 많이 줄게. 소금은 더 안 필요해?”          



  태도는 무슨, 맛이 안되어있었다. 두 입 먹고 내려놓을 맛이면 태도를 요구하기엔 좀 아니지 않나. 서로 기본은 해야지.      

  “엄마, 지난번에 만들어준 치킨 수프는 괜찮았는데, 이건 좀...”

  “응, 엄마가 먹어봐도 맛이 없네. 엄마는 언제쯤 요리를 잘하게 될까?”          

먹보엄마는 그렇게 요리짧은 엄마가 되었다.



  나는 언제쯤 부엌 앞에서 자신 있어지고, 주윤이는 언제쯤 잘 먹게 될까? 어쩌면 내가 요리를 다섯 개쯤 밖에 못해서 일주일에 그 다섯 개를 돌리고 있으니 아이가 입이 짧고 먹는 게 편향된 것은 아닐까. 괜히 원인을 나에게서도 찾아보고 아이의 기질에서도 찾아보려고 한다.           



  하지만, 원인은 찾는 것도 어렵고, 원인을 도려내어 고치기도 어렵다. 가장 유력한 원인이 내 요리 솜씨라고 해도 내가 당장 요리를 20개쯤 너끈히 해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두 번째 유력한 원인이 아이의 욕구 부족이나 입맛이라고 해도 아이의 입맛을 당장 고칠 수도 없다. 그리고 당장, 오늘도 저녁식사라는 당면의 문제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 오늘도! 나는 해야 한다. 지금의 내 손으로.      



  결국 질문을 바꾼다.

  ‘어떻게 해볼까?’



  일단 오늘은 믿고 보는 돼지고기를 굽기로 한다. 대신 상추 넉넉히, 양파도 넉넉히 준비해서 영양소를 채워본다. 그리고 달걀말이에도 당근, 햄, 치즈를 넣으면서 주윤이가 안 먹는 채소인 깻잎을 몰래 넣어볼까 한다. 그리곤 아무 말도 안 해야지. 먹고 나서도

  ‘오~주윤! 방금 깻잎 먹었어!’ 하는 말 안 해야지.

자. 연. 스. 럽. 게!          



  먹보 엄마와 뚱보 아빠도 그렇게 스며들 듯이 맛들 과 친해졌음을 안다. 의식하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그렇게. 그러다 나중에 슬쩍 ‘지난번에 깻잎 먹었잖아. 잘 먹던데.’하고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해야지.           



  비록 요리짧은 엄마이지만, 동시에 먹보엄마이기에 나는 주윤이가 맛있는 음식들과 자연스럽게 친해지면 좋겠다. 탄수화물이 주는 너그러움과 단백질이 주는 담백함, 채소가 주는 아삭한 식감과 수분감, 그리고 음식의 조화가 주는 만족감을 경험하면 좋겠다. 그 과정에서 어떤 음식으로부터 주윤이가 위로를 건네받기도 하고, 의미 있는 사람과 근사한 대화의 물꼬를 트는 도움을 받기도 하면 좋겠다. 물론 주윤이가 여전히 음식을 경험하는 폭이 좁다면 그 좁은 만큼에서 깊은 의미를 찾는 것도 좋겠다.           



  그러니 요리짧은 엄마, 입 짧은 주윤! 우리 각자 기본은 하자! 오늘도 나는 부엌 앞에서, 주윤이는 수저 젓가락 앞에서 서툴고 실패하겠지만, 우리 조금씩 나아지겠지.           



  언젠가 요리짧은 엄마와 입 짧은 주윤이가 커피 한잔, 와인 한잔씩 나눌 때, 서로 각자 의미 있는 요리가 담긴 접시가 함께 하는 테이블을 기대해본다. 우린 아직 성장기니까! 서로의 타이밍이 맞는 그날이 올 것을 믿고, 오늘도 나는 불 앞에 선다.



  주윤이는 엄마가 고기만 구워줬으면 싶겠지만, 혹은 아빠가 불 앞에 서길 바라겠지만. 어쩔 수 없다. 오늘도 엄마가 할테니, 우리 가끔 어디선가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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