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모든 것이 아이의 힘이 되기를

by 주윤

“주윤, 5분 안에 이 닦고 세수하고 나오는 거야!”

매일 아침마다 아침을 먹고 나서 화장실로 들어가는 주윤이의 등 뒤에 내가 하는 말이다. 단 한 번도 5분을 지켰던 적이 없지만, 나는 불굴의 K-엄마이므로 가랑비에 옷 젖길 기대하며 매일 성실하게 말한다.


주윤이는 먼저 침대에 다시 한번 몸을 뒹군다. 아! 마음속 번개탄에 붙일 성냥 하나가 치익-그어진다. 나는 아침이니까 또 우리가 아침에는 서로 기분을 지켜줘야 하니까 일단 성냥에 붙은 불을 급히 훅 끈다.

“주윤, 5분이야. 알지?”



화장실에 들어간 주윤이는 먼저 마른 손에 손 세정제를 묻힌다. 그리고는 손을 비빈 후 손 세정제가 손에 흡수되어 보이지 않는 손을 쫙 펼쳐 나에게 보여준다. 그리곤 개구진 미소를 보내며 묻는다.

“엄마! 손에 비누 묻었게요? 안 묻었게요?”

“음, 글쎄! 안 뭍은 거 같은데?”

“땡! 봐봐요. 물을 틀잖아요. 그러면 보세요! 거품이 나지요? 엄마 틀렸네”

“응~그러네. 자 이제 어서 손 헹구고 치카해야지.”


딸깍! 마음속 기다림의 버튼 하나를 누른다. 매일 아침마다 하는 장난인데도 아이는 매일 새로운 장난인 듯 내 얼굴 앞에 쫙 편 두 손바닥을 보여준다. 그래도 이건 예상한 행동이니 한번 참는다. 주윤이는 그제야 느릿느릿 칫솔을 집어 들고 치약을 짜서 치카를 시작한다. 그리고 고양이 세수를 하고 나온다.

“세수한 거야?”

“네!”

“응, 그럼 로션 바르고 옷 입고 나와. 엄마가 런닝이랑 팬티, 티셔츠, 바지 꺼내놨어.”



나는 남편과 거실 소파에 앉아서 마음속에 기특함을 꺼낸다.

“그래도 주윤이가 많이 컸어. 학교 간다고 스스로 준비도 하고.”

“그러니까.”



주윤이는 준비된 옷을 입고 나왔다. 그렇지. 그렇다. 역시 우리 주윤이는 굉장히 일관성이 있는 어린이가 맞다. 오늘도 런닝 앞 뒤가 바뀌어 입었고, 티셔츠도 마찬가지.

“주윤, 왜 말이 등에 있어? 앞에 말이 있어야지. 로폴이네. 로폴.”

“엥?”

“자, 만세! 팔만 빼서 목을 돌려 입으면 돼.”

나는 결국 주윤이에게 가서 티셔츠의 앞이 정말 앞으로 오도록 옷을 돌려주었다. 주윤이는 거울을 보고 또 큭큭 웃는다. 이제 내 마음속 번개탄은 불붙었다. 엄마 이제 곧 타오른다.


“주윤, 먼저 신발 신고 있어. 엄마 마스크 챙겨 나간다.”

나는 종종걸음으로 교체할 새 마스크를 꺼내고 휴대폰을 챙겨 현관으로 나갔다. 그런데 주윤이는 신발을 신기는커녕 마스크 스트랩을 만지작하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 난 여기까지였다. 번개탄은 급속으로 타기 시작했고, 더 이상 끓어오르는 냄비 뚜껑을 덮을 수 없다.

“김주윤! 엄마가 신발 신으라고 했지? 지금 뭐 하는 거야? 서두를 때는 서둘러야지. 이게 뭐야!”



결국 나는 소리를 질렀다. 주윤이는 놀라 눈치를 보며 한 발씩 신발에 발을 끼워 맞췄다. 오늘도 운동화의 발등 덮개가 운동화 끈 안으로 접혀 들어갔다. 평소 같으면 나는 다정하게 무릎을 꿇어 발등 덮개를 밖으로 꺼내 주며 머리 한번 쓰다듬어주었겠지만 오늘은 아니다. 발등 덮개의 불편함을 보고도 현관문을 격하게 열어젖히고 나왔다.



이런 날 등교를 시킨 후 집에 오면 마음의 일렁이는 파도를 잠재우기가 어렵다. 내가 10분 일찍 깨울걸. 지난번처럼 아침에 장난치면 엄마 마음이 급해져서 주윤이에게 화를 내게 된다고 다시 한번 말할 걸 왜 화를 냈을까. 생각은 꼬리를 물고 내 행동에 대한 후회가 끝나면 주윤이의 행동에 탓을 하게 된다. 왜 주윤이는 상황 파악을 못하고 행동할까. 아침에는 서둘러야 한다고 여러 번 말했는데도 왜 같은 장난을 하느라 서두르지 않는 걸까. 시간 개념, 지각에 대한 개념이 없나?


하지만 그 끝엔 결국 나 이다.

나는 결혼 전, 친정엄마가 남편에게 당부했던 말이 떠올랐다.

“자네, 내가 한 가지만 부탁하네. 애가 좀 느려. 서두르는 법이 없어. 급해도 뛰질 않아. 어디 나가려고 준비하면 느릿느릿할 거거든. 그런 줄 알고 좀 느긋하게 기다려줘.”

‘그래, 누구 닮았겠어. 행동 느린 나 닮았겠지. 어쩌겠어. 콩콩 팥팥이지.’

원인을 찾았고, 그게 나라고 생각하니 이상하게도 어느 정도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그나마 나로 인한 문제라고 생각하니 내 생각의 방향을 어떻게 바뀌어보면 되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이게 주윤이의 문제면 내가 컨트롤하기가 어려운 문제가 된다. 아이는 별개의 한 개인이고 타인이다. 타인의 생각과 행동을 온전히 이해하고 바꾸기란 어렵다. 무엇보다 한 개인인 아이의 생각과 행동의 방향이 반사회적인 것이 아니다. 그저 한 개인의 특성에 불과하다. 그것을 내 판단에 따라 부적합한 것으로 결론짓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맞추어 바꾸려는 것은 아무리 엄마라고 해도 모성 남용이지 않나 싶다.


엄마는 파쇼가 아니다. 파쇼가 되어서도 안된다. 엄마는 아이에게 주요한 영향을 주는 환경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내 아이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최선은 내가 영양분이 충만한 환경이 되어주는 것이다.


‘주윤이의 모든 것이 주윤이의 힘이 되기를!’

내가 마음속에 담고 있는 이 한 문장이 떠올랐다.



우리의 특성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그래서 그 특성 덕을 보기도 하고, 그 특성이 독이 되기도 한다. 친화력이 좋은 사람은 그 특성 덕분에 좋은 사람들과 관계에 적극적으로 임해서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은 강점을 보이기도 하면서, 반대로 사람에게 크게 실망하고 데이기도 한다. 차분한 사람은 그 특성 덕분에 사려 깊어 보이기도 하지만, 신속한 결단을 내리지 못해서 기회를 놓치기도 한다.



그렇다면, 주윤이의 느긋함은 어떤 강점과 약점을 가지고 있을까?

생각해보니 나는 주윤이의 느긋함의 덕을 많이 보고 있었다. 주윤이는 그래도 나보다 외출 준비가 간소한 이유로 느린 나를 기다려준다. 내가 외출 준비를 하는 동안 주윤이는 느긋하게 책을 읽으며 나를 기다려주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그때 주윤이는 나를 재촉하지 않는다. 또 내가 가끔 픽업 시간보다 약간 늦을 때에도 주윤이는 차에 타서 불평을 한 적이 없다. 그저

“엄마, 다음부터는 몇 분까지는 와야 해요.”

하고 말할 뿐이다. 또 한 번은

“엄마, 빨리 가려고 하면 사고 나서 더 늦게 가는 수가 있어요.”

하고 띵! 하는 말을 해주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응, 다음부터는 꼭 그럴게. 미안해.”

하고는 고마움에 주윤이 손을 잡고 집에 오곤 했다.



주윤이는 말을 할 때도 느긋하다. 그 표정을 보면 지금 생각을 하고 정리하며 말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무엇을 물어볼 때도 바로 대답하지 않는다. “잠시만요~”하고 말하기도 하고 때론 내 질문과 주윤이의 대답 사이에 약간의 공백을 만들기도 한다. 그리곤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생각을 정리해서 말을 하는 느긋함은 주윤이의 의사소통에 힘이 되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언제나 동경하는 삶의 태도. 바쁜 와중에 넌지시 건네는 유머를 주윤이를 가지고 있다. 유머는 여유에서 나온다. 주윤이는 느긋함 속에 빛나는 유머를 가진 아이이다.



그렇다면 느긋함의 약점, 그래서 이를 유념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 긴 말이 필요 없듯, 오늘 아침의 일이다. 느긋함은 서두르는 사람을 답답하게 한다. 더욱이 상대가 그 일을 좀 더 수월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 느긋함을 견디기가 쉽지 않다. 그 상대적인 속도의 차이가 서로를 불편하게 만들고 감정의 골을 만들기도 한다.



주윤이도 혹시나 학교에서 급식실이나 운동장으로 이동할 때 줄 서는 행동이 느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분명컨대 급식 먹는 속도는 느릴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책가방에는 필통에 들어가 있어야 할 연필과 지우개가 굴러다닌다. 그 이유를 물어보면 주윤이는

“정리하는 데 시간이 부족했어요.”

하고 말한다. 음, 안 봐도 비디오다. 정리의 시작도 그 과정도 느렸겠지 싶다. 그러다 보면 친구들이나 선생님의 책망을 듣게 되는 경험이 잦을 것이다. 지금은 내가 옆에 있으니 학교도 학원도 지각하지 않지만, 내가 일을 시작하게 되어 하교 후 학원을 바로 가야 할 때 시간을 맞추지 못해 학원 버스를 놓치는 일도 우려가 된다. 그러면 직장에 있을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예전에 ‘줄탁동시’라는 사자성어를 들은 적이 있다.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려면 밖에서는 어미 닭이 알을 쪼아주고, 안에서도 병아리가 알을 쪼는 행동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이었다. 주윤이의 느긋함이 가진 약점이 알을 깨고 나와 주윤이의 힘이 되려면 엄마인 나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먼저, 내가 더 느긋한 엄마가 되기. 그래서 주윤이가 행동의 능숙함과 수월함을 가질 수 있으려면 그 행동을 자주, 그리고 스스로 해보아야 한다. 나는 주윤이보다는 빨리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주윤이의 사소한 행동을 옆에서 거든다. 특히 식사시간에 나는 느리게 움직이는 주윤이의 밥 숟가락을 기다리지 못한다. 나는 대부분 보다 못해 내가 주윤이의 숟가락을 움켜쥐고 반찬을 골고루 올려서 주윤이의 입에 넣어준다. 난 이것부터 기다려야 한다. 주윤이의 젓가락과 숟가락 사용이 능숙해지고, 밥과 반찬을 먹는 태도가 나아지도록. 나는 주윤이의 숟가락을 쥐고자 하는 이 성급한 내 손을 내려놓아야 한다. 단지 옆에서 골고루 먹는 모습은 아주 자신 있게 보여줄 수 있으니 식사 시간의 내 역할은 그것으로 한다.



두 번째는, 먼저 도착하는 엄마가 되기. 등교 때, 학원에 갈 때, 또는 약속 장소에 갈 때 내가 좀 더 서둘러서 약속 장소에 5분이라도 여유 있게 도착하는 행동을 함께 해야겠다. 엄마의 행동과 삶에 대한 태도는 아이에게 중요한 영향을 주는 환경이 되어준다. 남편은 시간 약속이 있으면 여유 있게 먼저 나가는 편인데, 이는 시부모님의 영향이라고 믿고 있다. 가정의 문화는 한 사람의 태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주윤이가 시간 약속을 지키는 아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면, 엄마인 내가 그런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한다.



느긋한 엄마는 주윤이도 안에서 그 작은 부리로 알에 자국을 내고 알을 쪼고 있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엄마인 나는 능숙하니까 한번 크게 쪼면 된다고 생각하고 밖에서 큰 부리로 세게 알을 쪼아대다가는 안에서 잘게 여러 번 쪼고 있는 주윤이를 다치게 할 수 있다. 아이의 작은 움직임의 소리에 맞추어 강약을 조절하고 그 노력을 존중해주어야 한다. 또, 때로는 여기를 더 쪼면 되겠다! 하는 시그널을 주면서 먼저 행동으로 보여주기도 해야 할 것이다. 아이의 잘고 약한 움직임을 존중하고 기다려주는 것이 엄마의 역할이다.


오늘 저녁엔 주윤이가 좋아하는 반찬을 준비해야겠다. 그리고 느린 숟가락을 지켜보고 함께 눈 맞추며 대화를 해야겠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도 물어보고, 힘들었던 일도 물어보고, 내가 오늘 어땠는지도 시시콜콜 이야기하는 저녁 식사시간을 가져보기로 한다. 그러면, 시간이 아주 오래 지나겠지만, 그래서 밥도 식고 반찬도 식어서 맛이 없어지겠지만 아마 주윤이는 스스로 먹을 것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나를 기다려주는 곳에서는 아이도 할 수 있다.



나는 주윤이를 기다려주는 멋진 어른이 되고 싶은 욕심이 든다. 그래서 주윤이가 세상이 자신을 재촉하지만은 않는다는 것. 세상은 나를 기다려줄 줄도 아는 곳이라고 여겼으면 좋겠다. 그리고 주윤이가 가끔 티셔츠를 돌려 입더라도 그 실수를 가벼운 웃음으로 넘기는 너그러운 면도 있는 곳이 내가 사는 세상이라는 희미한 믿음들이 누적되는 하루들을 살아가면 좋겠다.



그렇게 주윤이의 모든 것이 주윤이의 힘이 되길 바라며, 나는 이제 왕 느림보 거북이 엄마가 되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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