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막 그렇지만 # 나를 불러도 좋을 나이
지난 여름, 몇몇의 후배들과 소극장 무대에서 작은 토크쇼를 벌였다. 대상은 4,50대의 주부들.
각자 펼쳐가는 인생 속에서 잠시 '나'를 생각할 겨를을 열어주고자 종종 프로젝트 토크쇼를
기획했는데 그날의 주제는 '나를 부르면' 이었다.
우리는 '나'를 불렀다. 자식을 부르고 남편을 부르고, 늘 누군가를 부르면서도
'나'를 부를 일은 없었던 우리들. '나'로서 사는게 아니라 엄마로 아내로 딸로 며느리로 사는 일에
더 급급했던 가족 속의 모습을 잠시 잊고 이기적인 마음으로 '나'만 생각해보자는 의도였다.
나이값 할 일은 때때로 종용을 받는데, 이름값 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고 주부들은 성토를 시작했다.
급기야 가족 안에 '나'는 죽었다는 안타까운 지적이 나오더니 한 관객이 마이크를 빼앗다시피 독점하고는
한 많은 이 세상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제 이름은 이주희 입니다. 어느날 부터인가 가족 안에서 제 이름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남편에게 '자기야!'로 불리던 호칭이 아이를 낳고 '승혁이 엄마'로 바뀌더니, 어느날 부터인가
자연스럽게 '여보'로 돌변했습니다. 마흔이 넘으니 대화할일이 적어지면서 눈치로 말을 주고받던
남편은 오십이 넘어 제 호칭을 '어이!' 로 바꿨습니다. 그리고 이즘은 '이 봐'라는 호칭이 자릴 잡았어요.
저는 이주희 인데, 이주희를 잃어버렸습니다. 집에 오는 우편물을 죄다 남편 이름 한동민 입니다.
은행에서 오는 우편물도 구청에서 오는 우편물도 신용카드회사에서 날아오는 우편물도
이주희에게 오는 건 없습니다. 학교에서 학원에서 오는 우편물은 한승혁 어머니로 통칭 됩니다.
저는 늘 우리 가족 안에 살고 있는데, 여보이고 승혁이 엄마고 어이!이고 이봐!이고
누구 안사람이고 누구 엄마이고 이주희가 없네요.
그래서 마흔 아홉이었던 작년에 남편에게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오십이 되면, 내 이름을 찾아달라구요. 다음달은 제가 오십이 되는 생일이 있습니다.
저는 이제 제 이름을 찾을 겁니다. 이주희로 살 겁니다. "
이주희 씨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목이 메이는지 한참 말을 쉬고는 눈물 엉킨 코맹맹이
소리로 목이 잠겼다. 숙연해진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나는 얼른 마이크를 들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잃어버린 이주희씨의 이름을 우리가 먼저 찾아드리죠. 열렬히 뜨거운 마음으로 세번 부릅니다! 시작!"
관객석의 아줌마 청중들은 목이 터져라 외쳤다. 이주희씨, 이주희씨, 이주희씨!!!!
주희씨가 우는건지 웃는건지 눈물을 훔치며 함박미소를 지었다.
나는 오십에 자신의 이름을 찾겠다고 선전포고한 그 날의 이주희씨를 절대 잊을 수 없다.
살림하는 한 친구는 내게 '회식'을 갈 수 있어 부럽다고 했다.
가끔은 엄마도 아내도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사람들 속에서 오롯이 자기 밥그릇만 챙결도 되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보고 싶다고 했다. 고개를 주억거리며 나는 친구의 말이 백번 이해됐다.
서른의 당찬 열정이 마흔이 되면 성숙하게 수그러든다. 오십이 되면 '나'보다 '주위'를 더 살피며
곁을 지키는 그들을 위해 당연히 내어주고 당연히 물러서야 하는 나이로 설득 당하고 만다.
양보가 싫은게 아니라 도무지 '나'라는 사람은 투명인간이 되고 마는 뻔한 양보가 싫고
희생이 억울한게 아니라 아무도 모르는 그래서 더 당연해지는 그런 희생이 아프다는 오십줄의 친구들.
그래서 스스로 물어보는 것이다. 나는 나로 살고 있는가? 이름값하며 살고 있는가?
오십줄의 나는
내게 주어진 이름 석자로 온당하고 합당하게 그렇게 살고 있는가?
공통적으로 생각하는 여성들의 삶을 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