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막 그래서 : # 통증의 미학
멀쩡하던 어깨가 고장이 났다.
지난해 여름. 미용실에 가서 수다를 떨다가 잠을 잘때면 꼭 두 팔을 머리로 올려 베개에 두고 잔다고 했더니
주인아주머님이 한마디를 거든다.
"아이구. 좀 더 있어봐. 팔이 내 맘대로 안 올라가! 두 팔을 머리로 올리고 자는 것도 아직 젋다는 신호에요. "
피식 웃고 말았다. 내 팔 내 다리 내 맘대로 하는 일이 무슨 별일이라고.
그런데 두 계절을 지나 그 일이 내게도 별 일이 되고 말았다. 멀쩡하던 어깨가 봄부터 슬슬 아파오더니
꼭 기름칠해야만 돌아가는 깡통로봇처럼 어깨가 말썽을 부렸다. 듣기 싫었던 단어, 내게는 붙이기 싫었던
단어 오십견의 두려움이 밀려왔다. 오른쪽 팔을 머리위로 치켜들면 통증이 엄습했다.
남편은 오십견이라며 병원을 가라고 했다. 끝까지 아니라고 우기다가 결국 통증을 참지못하고
병원을 찾았다. 애써 자존심 싸움 하느라 남편에게는 마트에 다녀온다고 호기롭게 외치고는
달려간 정형외과. 비슷한 또래의 줌마들 사이에 끼어앉아 순서를 기다렸다.
'아니야, 오십견 아니야.' 속으로 외쳤다. '그럴 리 없어. 내가 얼마나 건강한데..오십견이라고만 해봐!'
나의 강렬한 시그널이 통한건지 의사는 오십견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그럼 그렇지.
그러나 통증은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밤마다 오른 팔이 쑤시며 통증이 엄습했다.
약을 먹고 주사도 맞고 그럭저럭 버티며 한 달을 견뎠다. 결국 증세에 호전이 없어
급기야 CT 촬영을 했더니 아뿔싸! 오십견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나.
'돌파리 같으니라고 !' 나이 드는 아쉬움을 새파란 젊은 의사에게 퍼부었다. 애들 말로 뒷감정 쩐다.
나는 절대 오십견 따위는 마주치지 않으리라 장담했건만 삯고 있는 내 몸의 증거 앞에서
악다구니를 써야 별 수 없었다. 인간 제이유도 이렇게 늙는구나. 인정하기 정말 싫지만...
나보다 일곱살이 더 많은 남편은 몇년전에 경험한 일이라며
어느 날 감쪽같이 통증이 사라질거라고 위로 아닌 위로를 했다.
우울했다. 내 팔 내 맘대로 머리위로 뻗을 수가 없다니 정말 이게 뭔가. 기분이 엉망이다.
스트레스 받는 날이면 종종 다니던 마사지 샵에도 가기 싫었다. 마사지 마지막 단계에서
꼭 두 팔을 위로 쭉쭉 잡아당겨 스트레칭을 해주는데 "아야.."하고 비명이 새나올 것 같았다.
"아야.. 나, 오십이야. 아야.. 나 늙어 가.. " 처참한 비명을 들킬 것 같은 기분. 생각할수록 기분이 가라앉았다.
그런데 웬걸. 희안하게도 통증은 오른팔에서 왼팔로 옮겨가더니 이제 6개월.
언제 그랬냐는듯이 깨끗이 사라졌다. 나는 이제 두 팔을 뻗어 다시 베개를 어루만지며 잠이 든다.
왔다갔다 애를 태우던 어깨 통증은 내 몸의 현실을 깨우쳐주고는 홀연히 곁을 떠났다.
통증이 사라지니 두 팔을 마음대로 쭉쭉 뻗는, 이 당연하고 사소한 일상이 황홀한 고마움이 되었다.
일상다반사의 당연함이 앞으로는 더더욱 줄어들겠지. 두렵지 말아야겠다. 우울하지 말아야겠다.
마음을 단속하며 애써 받아들이는 연습에 몰두해본다.
사소한 일들에 분개하지 말라고 사소한 일들에 감사하라고 통증은 아름다운 철학을 남겨주고 사라졌다.
고맙다. 통증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