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막 그래서 # 울컥한 봄날 - 55와 66사이
평소 좋아하는 언니가 있다. 그녀는 나보다 두살이 더 많다.
베스트셀러 작가로, 고등학교 교사로, 인기블로거로, 강연가로 독특한 직업과 이력을 가지고
하루 24시간이 부족하게 전국을 다닌다. 50대들을 위한 패션블로거를 운영중인 그녀에게
어느 날 전화가 왔다.
"나같은 50대 중년 여성들을 위해서 내가 직접 코디해서 옷을 입고 사진을 찍어서 올려주는 거야.
어떻게 하면 더 날씬하게 보이는지 여러 옷을 입고 코디를 하지! 그런데 직접 입고 찍으려니 번잡스러워서
마네킹을 주문했어. 이 나이에 66이면 나름 관리하면서 살았다고 자부해서 66사이즈 마네킹을
주문했는데 공장에서 사장님이 직접 전화를 하셨더라구. <저기요! 66사이즈 마네킹 주문하셨죠?
장사를 처음하시나본데요.. 망해요!55 입혀도 부족할 판에 잘못 주문하신게 아닌가 확인하려구요.>
갑자기 그 말을 듣고 나니까 고마운게 아니라 오기가 생기더라구. 내가 알아서 할테니 두 개 다 보내달라고
했지. 그런데 세상에나! 나 기절할뻔 했잖아. 66이랑 55 마네킹을 세워두고 보니까
완전 뚱뚱이와 홀쭉이야. 아, 정말 슬퍼지더라. 소싯적에는 굳이 44반이라고 우기면서
55도 짜증냈는데... "
때는 봄날. 언제부터 이 숫자가 여자 나이에 짜증의 근원이 되었을까. 울컥한 봄날이었다.
어느 날 부터인가 길거리 쇼윈도우를 쳐다보지 않는다는 친구들이 하나 둘 늘어갔다.
불쑥 쇼윈도우에 비친 낯선 옆모습은 울룩불룩 나이를 직감하게 했다.
그리고 얼마 뒤. 실크 원피스를 입으면 짜증이 차올랐다. 친구들과 밥을 먹는 날이면 나의 시선은
늘 친구들의 아랫배를 주시하곤 했다. 운동 좀 한다는 친구들도 뱃살 현주소는 거기서 거기다.
몸무게와 상관없이 옆구리로 삐져 나온 살과 도드라진 아랫배가 거울을 외면하는 습관으로 발전했다.
둘째 아이를 낳고 여직원들과 회사에서 보내주는 해외연수를 떠났던 방콕의 해변.
아가씨 직원들을 제치고 홀로 비키니를 입으며 해변을 활보하던 나는 실존하는 인물이었던가?
어린 아들 둘을 데리고 놀러 간 울릉도에서 날렵한 초미니 핫팬츠를 입고도 정말 아이엄마인가를
부르짖으며 잘난 척 날씬한 척 온 섬을 누볐었다. 아, 나는 이제 전설이 되고 말았다.
"어떻게 여자 몸무게가 50Kg을 넘을 수 있어?"라고 질문했다가
온 사방에서 재수없다는 말을 듣고도 그러거나 말거나 '재수없어도 좋은'날씬이었던 시절.
이제는 그랬던, 그랬었던, 그랬었었던 시절로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유난 떨기는! 나이 들면 너무 말라도 보기 흉해. 적당히 살집이 있어야 인상도 좋아 보이는 거야."
그런 위로 따위는 개나 줘 버려! 너나 인상 좋으세요! 속마음이 대답한다.
까짖 인상 좀 더러우면 어떠랴. 55를 '꽉 끼게'가 아니라 '넉넉하게' 입고 싶은 여자의 마음이 죄라면
나는 차라리 영원한 죄인이고 싶다.
홈쇼핑 채널을 돌릴때마다 느끼지만 옷은 이쁘지 않다. 그저 옷을 입고 있는 날씬한 그녀들의 몸매가
옷을 판다. '패션의 완성은 말라깽이'라는 말처럼 푸근한 중년이라는 키워드는 더 이상 나를
감동시키지 못한다.
'44반'은 '55'가 되며 나의 이십대를 저물게 했다.
'55'는 '꽉 낀 55' 로 이름을 바꾸며 30대를 스쳐갔다.
'품은 딱 맞는데 단지 소매가 짧아서'라는 궁색한 변명으로 40대와 66을 맞바꿨다.
그리고 오십에 나는 66이 되었다.
후덕하게 살 것인가? 재수없게 살 것인가? 오십에 나이를 얹으며... 그래, 나는 재수없는 여자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