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의 호수 공원에서 유기견과 길고양이를 입양하는 행사가 있었다. 개와 고양이도 우리와 병명까지 똑같은 질병을 겪고 있는 걸 알고 많이 놀랐다. 그 행사에서 개를 두 마리 입양한 직장 동료는 본래 개를 싫어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개가 없이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고 할 정도다. 서로를 안다는 건 이렇게나 중요한 듯하다. 사회나 국가 간에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교류가 끊어지면 오해가 쌓이고 불신이 누적된다.
얼마 전 외출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는데, 평소 별생각 없이 지나치던 나에게도 보통 때와 다르게 느껴졌다. 자세히 보니 뭔가 도움을 청하는 듯이 보였다. 등에 한 뼘 크기의 큰 상처가 세로로 났는데 털이 없어지고 뭔가에 벤 듯 살이 드러나 있었다. 지혈은 되었으나 자칫 목숨을 잃는 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였다. 막 주차한 자동차의 엔진룸에 데었거나 고양이끼리의 영역 싸움으로 부상을 입은 게 아닌가 추측해 보았다. 실제로 산책하다 보면 길고양이끼리 격렬하게 싸우는 걸 본다. 한 번은 두 고양이가 몸이 엉키면서 순간 차도로 뛰어들어 지나가는 차에 고양이들이 치일 뻔한 일도 있었다.
그 부상당한 고양이를 동물 병원에 데려다줘야 하나 잠시 생각했지만, 한겨울에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또 쉽게 잡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잠시 주저하다 그냥 그 자리를 떠났다. 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말라는 호소문도 본 지라 어쩔 수 없다고 자기 합리화도 했다. 길고양이가 늘어나면 부작용도 있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찬반이 엇갈리지만, 어려운 처지에 있는 약자를 도와야 하는 건 맞을 듯싶다.
2주쯤 지났다. 저녁 산책을 다녀오면서 집 앞 트럭 밑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 시선을 돌려보니 지난번과 비슷하게 생긴 고양이였다. 그때 3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남자가 커다란 쇼핑백을 어깨에 맨 채 내 근처로 다가왔다. 조금 전 내 앞을 지나쳤던 사람이다. 별생각 없이 ‘왜 우는 거죠?’라고 물었더니 그가 잘 안다는 듯이 대답했다. “배가 고파서 먹이 달라고 그러는 거예요. 제가 먹이를 주러 온 걸 알고 있어요.” 그러면서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었다. 그 고양이는 배고팠는지 우리 둘이 가까이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료를 먹었다.
“이 친구가 지난번에 많이 다쳤던 고양인가요?” 혹시나 해서 물어보았다. “맞아요. 지금은 많이 나아졌습니다.” 등을 보니 아직 털은 안 났지만 수술로 봉합한 듯 상처 부위가 아물어 있었다.
길고양이들은 태생적으로 낯선 사람을 경계하고 쉽사리 마음을 열지 않는다. 산책길에 만나는 고양이도 몇 달이 지나고 먹이도 몇 번 주었더니 이제야 다가와 제 옆구리를 나에게 비빈다. 동네 아주머니에 의하면 고양이는 먹이가 부족해서라기보다 마실 물이 없어 죽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먹이가 없을 땐 산책 길에 늘 물을 챙기곤 한다.
오늘 오후부터 그 고양이가 이름을 부르거나 건드려도 고개를 파묻은 채 철쭉나무 덤불에서 꼼짝하질 않는다. 어디가 아픈 게 분명하다. 생로병사의 그 무게를 오롯이 혼자 감내해야만 하는 개별 생명체라는 게 절실히 느껴졌다. 내가 다가가면 알아보고 울음소리로 화답하던 녀석이었다. 어쩐지 어제 자신의 먹이를 건너편 철쭉나무 아래에 사는 어린 고양이가 와서 먹어도 그냥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었다. 마치 세상사에 달관한 도인 같다고나 할까? 다른 고양이들 같으면 자신의 영역이 침범당하면 물불 안 가리고 싸운다. 실제로 이 고양이는 나이가 많다고 한다. 올 겨울을 넘기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어쩌면 수명이 며칠 안 남았을 수도 있다. 길고양이 때문에 아파트 관리실에 가끔 민원이 들어오기도 하지만, 그에게 먹이와 물을 주는 사람들이 많다. 부디 사람들이 베푼 따뜻한 기억을 가지고 평행 우주에서 다시 만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