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전통 가옥에서 주방은 밖에 있었다. 아마 난방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조리를 할 수 있는 장소였기 때문이었으리라. 하지만 요즘같이 실내에 주방이 있는 경우 부엌은 집안의 심장이다. 음식을 조리하는 곳일 뿐만 아니라 식탁을 중심으로 가족의 유대감이 강화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요리는 식재료를 가열하거나 변형시켜 식감을 높일 뿐만 아니라 세균이나 기생충을 파괴해 우리의 건강을 보호하는 것이니 매우 중요하다.
미 8군 시절에 요리를 많이 해봐서 주요 메뉴는 대체로 어떤 식재료로 어떻게 만드는지 정도는 안다. 계란 요리만 해도 써니 사이드 업(sunny side up), 후라이드 하드(fried hard), 오버이지(over easy), 스크램블드 에그(scrambled egg), 오믈렛(omelette) 등 다양하다. 언젠가 노년의 두 여성이 나누는 말이 가슴에 쿵하고 다가왔다. ‘장은 안 보니?’’밥해 먹일 사람도 없는데 뭐.’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자신이 만든 요리를 먹을 사람이 있다는 게 큰 행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생에 행복한 일이 많지만, 음식을 즐기는 일만 한 것이 또 있을까? 인간의 위신을 높여 행복감을 주는 각종 소도구가 있지만 그런 것들은 찰나의 기쁨이고 영속적이지 못하다. 또 남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훌륭한 아로마와 맛을 내는 요리만큼 우리 생명에 직접적인 작용을 하는 것은 없다. 실제로 인간의 상상력과 각종 요리 기구가 만들어내는 작품인 요리는 각 재료가 때로는 불(fire)과 미세하게 교섭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 요리란 식재료를 이용해 굽고, 찌고, 삶고, 졸이고 볶는 일체의 행위를 말한다. 인간의 오감은 물론 손과 발(일부 식재료는 발로 밟아 반죽하기도 한다)을 정교하게 사용해야만 하는 일이다. 주방 기구를 다루는 기술이 일정한 경지에 도달하면 포정해우에 가까운 체험을 하기도 한다. 최고의 요리는 칼과 손 그리고 불을 다루는 기술에서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하다.
세상에 요리처럼 감동적인 작품이 있을까? 세계 최고의 예술품이라도 인간의 속에 들어가 육체와 정신 일부가 되면서 자리 잡는 것은 없다. 그저 피상적으로 작용할 뿐이다. 명화 모나리자도 모나리자의 외관을 복제한 것일 뿐 모나리자 자신은 아니다. 하지만 요리는 다르다. 스파게티만 해도 그 음식 재료에는 바닷속 풍광의 아우라를 간직한 해산물의 풍미와 작열하는 태양의 사랑을 듬뿍 받은 채소의 내력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요리가 일반 예술품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일회성이고, 사라지면 다시는 똑같이 재현할 수 없다는 데 있다. 희소성도 이런 희소성이 없다. 피아니스트 김대진의 말대로 곡을 연주하는 그 순간보다 더한 독창성은 없듯이 요리도 마찬가지인 듯싶다. ‘한 번 만들어지고 소멸되는 공연’처럼 요리도 같은 속성을 지녔다. 확실히 대가의 안목은 남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