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위치로
쪽방촌에 쪽방 건물에 다녀오다.
온도차로 피어오른 곰팡이를 긁어내 곳에 덕지덕지 붙은 종이 벽지가 군데군데 떨어져 그나마 가려졌던 곰팡이의 검은 자국들을 드러내고 있었다.
무더운 여름에는 바깥보다 실내가 뜨거운 햇살에 달구어진 시멘트벽 때문에 한증막보다 더한 찜통더위다. 간혹 누군가 버린 고물 선풍기가 있어 그것으로 버텨 보지만 선풍기 바람 역시 무더워진 공기를 회전시키는 꼴이다. 추운 한겨울엔 입김이 얼어붙을 정도로 외벽 시멘트가 차단시키지 못하는 찬바람이 방안 가득 차 있다. 낡은 홑이불을 여러 겹 뒤집어쓰고 버텨내는 것이다.
이곳이 사람이 살만한 곳인가 묻는다면 사람이 기거하고 있으니 살 수는 있다.
교도소가 이보다 낫지 않을까 싶다.
가보지 않아서 살아보지 않아서 둘 사이의 비교를 상상만으로 해본다.
화장실과 세면을 공용으로 하고 있는 곳이다.
개인의 사생활은 고사하고 어떻게 많은 사람들이 이런 곳에 기거할 수밖에 없나 생각이 멈춰버린다.
계단은 바닥이 두틀거리는 시멘트 그대로 드러나 있고 층이 높고 좁아서 오르내리기도 버겁다.
그곳에서 나오는 한 사람을 보았다. 말을 걸고 있는 그의 모습은 후줄근한 옷에 겹겹이 껴입고 머리는 북새미가 이루어지고 누웠던 뭉개진 뒤통수와 옆머리는 떡이 져 있다. 웃는 입속은 누렇다 못해 새까매진 치아가 군데군데 있다. 사람의 형상이지만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모습이다.
모두들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분위기가 그와 비슷비슷하리라. 의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그도 우리처럼 갓 태어나 맨몸으로 삶을 시작했건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갈라진 인생길을 가게 되었을까. 그 라고 처음부터 희망이나 의욕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 않을까.
삶의 의욕이 없이 그저 간신히 목숨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그의 모습은 지옥이라 형상하는 그림 속에서 본 것과 비슷하다. 사람이 살아서 지옥을 사는 것인가. 전율이 인다. 분명 같은 곳에서 살아 숨 쉬는 사람이 분명한데 빈부의 차이로 빈 바닥에 가라앉은 그의 삶이 그를 생으로 잡아 삼킨 듯 영혼이 없는 텅 빈 눈빛이 죽지도 살지도 않은 것 같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고 존엄하게 살 권리가 있고 행복을 추구할 가치가 있다 하는데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그들의 척박한 삶이 과연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인가.
세상은 어찌하여 이리도 공평하지 않는 것인가.
분명 공기와 햇살과 바람과 흙과 하늘과 또 기타 등등 공짜로 주어지는 것들이 많은데 그들은 그것마저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햇빛도 바람도 제대로 들지 않는 꽉 막힌 좁은 공간에서 그들이 무엇을 잃고 있는지 무엇을 누리지 못하는지 그들은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참으로 참담하다.
땅굴을 파고 사는 두더지가 더 나은 자유를 누리고 사는 것은 아닐까.
같은 사람으로서 같은 사회 속에서 살면서 경제력이 없고 돈이 없다는 것이 이렇게도 사람을 비참하게 나락으로 떨어뜨려야만 하는 것인가.
인간의 존엄은 천부적인 것이 아니라 돈이 권한을 쥐고 쥐락펴락하는 것인가.
돈이 전부인가.
돈이 신인가.
인간이 없는 돈이 가치가 있는 것인가.
돈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가.
인간이 있기에 돈이 있는 것 아닌가.
앞뒤가 뒤바뀐 순서가 뒤틀린 이것을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을까.
인간보다 돈이 더 상위를 차지함으로써 인간의 공포는 시작된 것이 아닐까.
돈을 돈의 위치에 인간을 인간의 위치에 돌려놓으면 두려움도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더 많은 돈을 가지기 위해 노예처럼 일하지도 않을 것이고 돈이 적을까 봐 돈을 잃을까 봐 공포에 떨지도 않게 되면 행복해지지 않을까.
소꿉놀이할 때 돈을 만들어 이것저것 살고 팔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다 집을 사려고 보면 돈을 더 만들어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소꿉놀이에서는 돈을 만들기만 하면 된다. 일할 필요는 없다. 돈을 만들면 엄청 부자인 듯 행복해진다.
우리의 실생활에서는 모두가 필요로 하는 돈은 노동의 가치로 시작된다. 노동을 팔아야 돈이 생기고 그 돈으로 필요한 다른 것들을 살 수 있다. 서로의 필요에 의해 돈을 효용가치로 인정하고 지키는 것이다.
돈에 욕망이 엉겨 붙기 시작해서 많이 갖고 싶은 욕망으로 인해 뺏기는 자가 생기고 훔치는 자가 생기면서 돈은 효용의 순환에서 소유로 변해버린 것이다. 본래의 용도를 잊은 돈은 이제 신의 위치로 전환했다.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살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만능이 된 것이다.
인간이 돈을 관리하다가 돈이 인간을 관리하고 인간 위에서 군림하게 된 것이다.
돈신의 권위에 굴복한 인간은 자신의 모든 존엄을 내던지고 돈에 엎드려 그의 권력의 맛에 길들여져 그의 버림을 받을까 봐 덜덜 떨고 있다.
사용자인 인간으로 돌아가자.
돈을 인간의 편리를 위한 제자리에 돌려놓자.
인간의 행복추구권을 회복하자.
벤치에 앉아 있는 그의 얼굴에 햇살이 내리쪼일 때 그것을 편안히 받아들이는 그의 미소가 보인다. 자연이 주는 햇살과 인간이 주는 식사가 곁들여진 행복이다.
누군가 준 한 그릇의 식사에 행복해하는 그를 보며 그가 자신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사람의 빛을 찾을 수 있도록 더 많은 이들이 더 많이 나누고 기다려 주면 될 듯.
우리와 닮은 그
그와 닮은 우리
우리는 같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