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고등학생 때,저녁을 먹고 공부를 해야 하는데 뭔가 내키지 않는 날들이 있었습니다. 그럴 때면 7시에 방영하는 '논스톱'만 보고 공부해야지 마음먹습니다. 시트콤은 끝났지만 여전히 공부할 기분은 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애꿎은 TV 채널만 돌리며 뭉그적뭉그적 1-2시간이 흘러갑니다. 참다못한 엄마는 잔소리를 하지만, 잔소리를 듣는 순간 공부는 더 하기 싫어지죠. 엄마 잔소리 때문에 공부가 하기 싫어졌다는 핑계 아닌 핑계를 대며 방에 들어가지만, 여전히 공부는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살다 보니 공부만 그런 것이 아니란 걸 깨닫습니다. 운동도 '해야지, 해야지' 하지만 운동하러 갈 기분이 선뜻 나지 않습니다. 외래 환자 진료, 수술 등 해야만 하는 일들은 곧잘 몰입해서 잘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들은 계속 미루기만 합니다. 급하지 않은 일들 중에 중요한 일들이 많다는 게 문제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신비로운 경험도 합니다. 하기 싫어도 일단 운동을 하러 나가면 꽤 열심히 합니다. 헬스장에 가던, 러닝을 뛰던 1시간은 하고 옵니다. 퇴근 후 어떻게든 책을 읽기 시작하면 언제 읽기 귀찮았냐는 듯 30분 ~ 1시간씩 읽곤 합니다.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들에 대해 '어떤 우주의 기운이 나를 행동하게 만들기'를 내내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그 우주의 기운을 받아본 기억이 없습니다. 그저 내가 시작했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