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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머뭇거림'을 '자신감'으로 바꾸는 질문은?

생각이 정리되지 않으면, 말도 글도 어렵다.

by 에이든엄마


미국 사람들은 정말 말을 많이 한다.

질문도 많고 대화도 길다.


처음엔 '무슨 말을 저렇게 길게 할까?' 싶었지만,

곧 알게 됐다.


그들의 말 습관은, 단순히 수다스러워서가 아니었다.
오랜 시간 훈련을 통해 익힌, 생각을 정리하고 넓히는 도구였다.


그리고 이 말하기 습관은 교실이나 회의실뿐 아니라, 일상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그걸 가장 실감하는 순간은 마트 계산대 앞에 섰을 때다.



내가 자주 가는 우리 동네 트레이더 조(Trader Joe's)는 모든 직원이 친절하다. 그런데 그 친절은 그냥 인사 정도가 아니다.


계산할 때면 내가 고른 물건을 하나하나 보면서 자신의 생각과 경험까지 이야기한다.


| "이거 내가 지난주에 처음 먹어봤는데, 맛있더라. 아마 너도 좋아할 거야."


| "한국 김밥이네? 너 먹어봤니? 나는 아직 못 먹어봤어. 보기에 진짜 맛있어 보인다."


| "이거 오늘 새로 나온 리미티드 에디션이야. 너무 좋으니깐 꼭 써봐."


봉투에 물건을 다 담고 계산이 끝날 때까지 친절한 질문은 계속된다. 마치 내가 친구랑 이야기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그리고 마지막엔 꼭 말한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길 바래!"


처음엔 그냥 좋은 성격이라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이건 타고난 성격일까? 아니면 교육의 결과일까?'




에이든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무대에 오를 일이 제법 많아졌다.

뮤지컬, 프리젠테이션, 스토리텔링 시간까지...

처음엔 덜컥 겁이 났다.


| "잘 해낼 수 있을까?"

| "떨릴 텐데..."

그런데 무대 위 에이든과 친구들은 예상과 완전히 달랐다.

완벽하진 않아도 자신 있게 말했고, 실수를 해도 당황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무도 완벽하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아이들도 알기 때문이다.


어릴 적 나에게 '무대란, 공포의 대상'이었다.

긴장해서 덜덜 떨고, 창피해서 울기까지 했던 그 무대를, 이곳 아이들은 너무나 익숙한 듯 태연해 보였다.

무대를 전혀 무대로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즐기고' 있다고 느낄 정도다.


"어떻게 무대 위에서 떨지 않고 말을 잘하지?"


나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다.




나는 또 다른 사례를 하나 더 나누고 싶다.


유치원 때부터 초등학교 3학년까지로 기억한다.

에이든은 해마다 자신이 좋아하는 동물 인형을 학교에 가지고 가 친구들 앞에서 소개하는 스토리텔링 시간이 있었다. 저학년 어린아이들이라 말의 내용은 짧고 너무 순순했다.

| "얘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곰이야. 이름은 푸고, 잘 때 나를 지켜줘."


| "이 친구는 내가 슬플 때 항상 위로를 해줘. 엄마한테 혼나도 푸가 있어 나는 괜찮아."


짧은 발표 시간이 끝나면, 아이들은 소그룹으로 짝지어 친구들이 가져온 동물 인형들에 대해 더 자세히 질문하고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이 과정 속에서 에이든은 자신의 감정, 이유, 생각을 언어로 풀어내는 훈련과 동시에 상대의 이야기에도 반응하고 질문하는 연습을 반복하게 된다.


그리고 이 '반복'이야말로 에이든의 표현력을 서서히 키워주는 가장 단단한 토대가 되었다.


처음엔 '좋아, 싫어, 몰라, 그냥...' 같은 단어 하나 겨우 꺼내던 에이든이, 점점 다양한 표현으로 감정을 설명하고,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같은 경험 덕분이라 생각한다.


에이든의 학교 활동을 지켜보며, 문득 의문이 들었다.


"이런 말하기 수업은 왜 반복하는 걸까?"
"아이들에게 계속 말하게 하는 목적은 뭘까?"



위 세 가지 사례는 오랜 시간에 걸친 교육 속에서, 천천히 익힌 '표현하는 방법의 축적된 흔적‘이라고 본다.


마트에서 처음 보는 고객에게 친구처럼 말을 걸고, 무대에 오른 학생들이 떨지 않고 담담하게 퍼포먼스를 하며, 자기의 소중한 인형이 왜 소중한지에 대한 의견을 친구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경험은,


말로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하는 훈련은, 결국 성인이 되어서도 사고력과 소통력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줬다.


에이든이 커 갈수록, 자주 사용하는 말투와 태도를 보면서 나와는 다르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한다.


원하는 것을 바로 얻지 못해도 떼를 쓰지 않고 또래다운 논리로 설득하려 노력하고, '슬프다', '즐겁다', '행복하다', '화난다' 등의 감정도 또렷하게 표현하는 모습을 보면,

그 모든 건 결국,


어릴 때부터 받아 온 체계화된 ‘표현 훈련’의 결실이 아닐까 생각한다.


말도 글도 막히는 아이들을 주위에서 종종 보게 된다.


경험이 중요하다고 해서 체험 학습을 다니고, 여행을 자주 가는 것이 아이들에게 글감을 많이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활동을 위해, 그리고 활동이 끝난 후 이 좋은 글감이 글로 써질 수 있도록 어떻게 지도하고 있는지 우리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아이가 머뭇 거릴 때는 이유가 있다.

아직 마음속 실타래의 시작점을 찾지 못해서 그럴 수 있으니, 어른들이 실마리를 찾아주는 질문부터 던져보면 어떨까?


| "어떻게 생각해?"


이 한 마디가 아이의 마음을 열고, 생각을 풀어내는 실마리가 되어줄 수 있다.




✍️ 이 연재는 매주 목요일 정기 발행됩니다.

다만, 초반 주제를 연속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1편부터 4편까지는 4일간, 하루에 한 편씩 순차 업로드됩니다.

이후 5편부터는 매주 목요일, 정기 연재로 이어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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