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아이들 글쓰기 수업은 왜 '말하기'로 시작할까
"말을 잘한다"는 말의 의미가
나에게는 에이든을 낳기 전과 후로 완전히 달라졌다.
미국에 온 지 15년.
처음엔 영어가 익숙하지 않아서 질문 하나에 대답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그러다 에이든이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점점 내 말의 한계를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질문을 받는 입장이 대부분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가 다른 부모에게 먼저 말을 걸거나,
선생님과 아이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상황이 많아졌다.
그 변화는 생각보다 벅찼고, 나는 어느새 사람들을 피해 조용히 뒤로 물러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다 문득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됐다.
| "나는 왜 이렇게 말하기를 어려워하지?"
| "왜 말할 주제조차 쉽게 떠오르지 않을까?"
답을 찾기까지,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꽤 길었다.
그러다 에이든의 글쓰기 수업을 지켜보며,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에이든 처럼 ‘질문하며 배우는 환경'에 익숙하지 않았다.
나는 '토론'을 해 본 경험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누군가와 생각을 주고받는 일이 어색했고, 질문 하나에도 깊이 있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즉, '말이 생각을 이끌고, 그 생각이 글이 되는 과정'은 내게 매우 낯선 세계였다.
그렇게 내 안의 공백을 자각한 이후 마주한 에이든의 글쓰기 수업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처음엔 아이들끼리 주고받는 대화와 질문이 그저 잡담처럼 보이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면 성의 없어 보이는 순간도 있었다.
그런데 에이든의 말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 짧은 대화들이 바로 '글의 시작'이자 '생각의 뼈대'가 된다는 걸.
| "엄마! 서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처음엔 농담 같아도, 그 말속에서 내가 생각했던 것들이 더 또렷해지면서 주제가 점점 다듬어져. 그리고 나중엔 진짜 괜찮은 글감이 돼."
| "선생님의 질문이나 반박은 내 글을 더 전문성 있게 만들어줘"
어릴 때부터 훈련된 말하기 루틴은 어느새 에이든에게 다양한 시각을 받아들이는 힘도 키워준 것 같았다.
3시간 수업 중 2시간 이상이 '말하기'에 할애되는 수업.
아이들은 질문하고, 듣고, 다시 말하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다.
그런데 이 시간은 단지 '글을 쓰기 위한 준비'가 아니라, 마치 '생각을 길어 올리는 훈련'처럼 보였다.
실제로 에이든은 글을 쓰기 전, 토론을 통해 글의 구조를 머릿속에서 미리 설계해두곤 했다.
반면 나의 글쓰기 루틴은 어땠나?
나는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글을 쓰고, 그 후에 전체를 고치는 방식에 익숙했다.
이 방법의 차이는 결과물에 그대로 드러났다.
첫째, 글을 완성하는 속도의 차이.
나는 초안을 다 쓰고 나서 전체 구조를 다시 고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반면 에이든은 말을 통해 정리된 생각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고 빠르게 글을 완성했다.
둘째, 다양한 시각을 받아들이는 힘.
친구들과 나눴던 질문과 대답은 에이든이 미처 생각지 못했던 지점을 발견하게 하고, 그 경험은 결국 편견 없이 다양한 관점을 담아내는 글쓰기로 이어졌다.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정했던 나의 글쓰기와 가장 크게 달랐던 점이다.
이 두 가지 차이를 지켜보며 내가 글쓰기에서 가장 놓치고 있었던 건, 바로 '생각을 말로 꺼내는 과정'이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글을 잘 쓴다는 건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생각을 얼마나 잘 정리하고 조직하는가의 문제다.
그리고 그 시작은 언제나 입 밖으로 꺼내어 말해보는 것이다.
며칠째 글쓰기에 대한 고민과 정리를 반복하며 내린 결론은 이렇다.
선생님의 질문은 답을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논리와 근거를 갖춘 사고를 끌어내기 위한 장치였다.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순간, 그 생각은 더 또렷해지고,
누군가의 질문을 받는 순간, 아이의 사고는 점점 더 구조를 갖추기 시작한다.
결국, 질문과 대답의 반복 훈련이야말로 글쓰기를 성장시키는 핵심 키워드라는 사실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나도 어릴 때부터 이런 훈련을 받아왔다면, 지금 겪고 있는 말의 막힘과 글쓰기의 어려움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풀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나는 다시 말하는 방법을 배우고, 다시 글쓰기를 시작하며
내 오랜 고민에 천천히 답을 써 내려가려 한다.
✍️ 이 연재는 매주 목요일 정기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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