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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으로 이어지는 글쓰기의
끝과 시작

에필로그 | 일상 속 대화가 곧 작은 에세이

by 에이든엄마

연재를 시작할 때는 '미국 학교의 글쓰기 교육'을 기록해두고 싶었다.

하지만 글을 이어가다 보니, 내 머릿속에 맴돌던 질문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미국 부모들의 질문 방식은 왜 다른가?'
'글쓰기와 사고력 훈련의 연결 고리는 뭘까?'
'우리는 왜 글을 잘 써야 할까?'


이 질문들은 글을 쓰는 내내 하나의 퍼즐처럼 맞춰졌고, 나는 점점 더 확신하게 되었다.

내가 정말 알고 싶었던 핵심은 '소통하는 기술'이었다는 것을.



나와 에이든, 나와 남편, 나와 친구들...

결국 내가 알고 있는 말과 글은 온통 '나 아닌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전하는 방법이었다.


때로는 서로 상처 주지 않기 위해,

때로는 생각의 차이를 끝까지 관철시키기 위해,

나는 말과 글을 도구로 사용해 왔다.


돌아보면, 그렇게 중요한 소통의 기술을

나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무엇을 위해 훈련해야 하는지 늘 고민했다.


그런 나에게 막힌 수수께끼를 풀고 한 발짝 나아가게 해 준 사람이 에이든이다.

아이가 성장하며 던진 질문과 작은 변화들이,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교육과 소통의 본질을 돌아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에이든 덕분에 확실하게 알게 된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에세이와 닮아 있는 일상 대화'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매일 주고받는 대화 안에서 감정을 풀어내고, 정보를 정리하며, 누군가를 설득하는 구조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에세이를 퍼스널, 정보형, 논증형 등으로 구분하는 것처럼, 우리가 일상에서 주고받는 말도 상황에 따라 다른 종류의 '작은 에세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나는 에이든의 글쓰기 과정을 지켜보며 알게 되었다.



두 가지 예를 들어 보려고 한다.


첫째, 위로와 공감이 담긴 퍼스널 에세이 같은 말


영어가 서툰 엄마가 학교에서 난처한 상황에 처한 모습을 에이든이 보게 되었다고 하자.

그 순간 에이든은 퍼스널 에세이 모드로 들어간다.


"엄마, 속상했지? 나도 영어를 잘 못 할 때는 부끄럽고 힘들었어. 내가 앞으로 매일 30분씩 스피킹 연습 도와줄 테니깐 같이 해보자."


이렇게 에이든은 자신의 감정을 설명하고, 위로하고 격려를 더하며 앞으로의 계획까지 함께 세워주는 말을 하고 있다.

이건 반사적인 반응이 아니라, 자기 경험과 감정을 해석해 내는 글쓰기의 힘이 일상 대화로 확장된 모습이라고 말하고 싶다.


둘째, 조목조목 따져 설득하는 논증형 에세이 같은 말


엄마가 "해리포터 전권을 다 읽으면 선물을 사주겠다"라고 약속했는데, 아이가 7권 전부를 읽었음에도 선물 얘기를 은근슬쩍 넘겨버린 상황이다.

이럴 경우 에이든은 논증형 에세이 모드로 들어간다.


"엄마가 먼저 7권의 해피포터 책을 다 읽으면 원하는 선물을 사주겠다고 말했잖아.

그때 나는 열심히 해리포터 5편을 읽고 있었어.

그런데 엄마가 6편과 7편이 가장 두꺼우니, 내가 안 읽을 까봐 걱정돼서 나머지 두 권까지 다 읽으면 선물을 사주겠다는 제안을 한 거야.

나는 조건을 충족했으니 선물을 요구하는 것은 정당하지.

게다가 엄마는 금액만 정해주었지, 종류까지 제한하지는 않았잖아. 그러니깐 내가 원하는 걸 살 수 있게 해 주는 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해."


일상 속 빈번히 일어나는 엄마와 아이의 논쟁거리지만 여기에는 조건과 근거를 세워 논리를 전개하는 글쓰기 훈련이 대화 속에 녹아 있는 예시라고 할 수 있다.


만약 같은 상황에서 사고 훈련이 부족한 아이라면 어떻게 할까?



아마 "약속 지켜! 왜 안 사줘!"라는 억지나 짜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즉, 말의 깊이는 사고의 훈련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퍼스널 에세이를 통해 감정을 정리할 줄 아는 아이는 공감을 담아 말할 수 있고, 논증형 에세이를 통해 논리를 세운 아이는 상황에 맞게 설득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일상 속 대화와 에세이는 다르지 않다.

누군가를 위로하거나 설득하는 그 작은 순간들이 곧 글쓰기의 본질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어온 10편의 글은 에이든의 작은 말 한마디에서 시작된 궁금증을 따라가는 기록이었다.

글쓰기 수업이라는 구체적인 훈련을 거치며 그 질문은 점점 선명해졌고, 결국 '소통하는 기술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리고 나는 그 과정을 통해 조금씩 내가 찾던 답에 다가갈 수 있었다.


글쓰기는 단지 문장을 잘 쓰게 만드는 훈련이 아니었다.

그리고 말을 잘하는 것도 타고난 능력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나를 이해하는 과정이었고,

타인과 연결되는 기술이었으며,

세상에 내 생각을 설득력 있게 내놓는 힘을 기르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에이든은 더 복잡한 글쓰기를 배우고, 나는 그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며 또 많은 것을 배울 것이다.

그리고 이 기록은 부모로서, 교육에 관심 있는 한 사람으로서 나를 위한 기록이자, 많은 부모들과 나누고 싶은 경험이 되었다.


이 연재의 끝은 또 다른 시작이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질문이 남아 있지만, 어쩌면 그 질문이야말로 내가 글을 계속 쓰게 만드는 힘이 될 것이다.

그래서인지,

'생각은 말이 되고, 말은 글이 된다'를 마무리하는 지금 이 순간이 오히려 더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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