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

by life barista

“생 때 좀 그만 부려!

집값 올라갈 것 같으니까, 얼른 도장 찍더니, 이제 와 못 나가겠다니!

동의서에 인주도 아직 안 말랐어.

거기에 떡하니 잘 쓰여 있잖아.

이 동의서는 땅을 토지 공사에 넘기는 수용 절차에 동의하는 거라고!”

토지 공사는 일반인들이 모여 사는 땅을 수용했다.

모나드 시티 도시정비사업 특별법에 따르면,

수용된 땅을 되찾을 다른 방법이 없다.


국민의 재산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위헌적 법률이지만,

이를 눈치챈 공사는 땅을 최익수에게 재빨리 팔아넘겼다.

그래야 법률관계가 복잡해지고 재판을 길게 끌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긴 재판은 가난한 사람에겐 패소와 다름없다.


아무튼 지금 이 땅은 최익수의 것이다.

최익수는 원주민들이 이사하도록 일주일 말미를 주었다.

지금은 기한을 넘긴 첫날 새벽이다.

새벽부터 공기가 무겁다.

공권력 투입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헬멧과 방패 그리고 뭉둥이로 무장한 경찰들이

짐승처럼 눈을 뜨고 마을 입구를 둘러쌌다.

주민들의 간절한 애원과 절규는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허공에 흩어졌다.

포크레인이 무자비하게 집 벽을 밀어붙였다.

벽돌과 철근이 삐걱거리다 쩌억 갈라지는 소리에 주민들의 비명이 묻혔다.

어머니는 아이를 끌어안은 채 무너진 담벼락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한 노인이 방금까지 누워 잤던 안방이 먼지 속으로 사라지는 걸 멍하니 본다.


비인간적인 폭력이 휘몰아친 후,

먼지가 가라앉은 마을엔 폐허와 절망만이 남았다.

한때 사람들의 따뜻한 보금자리였던 곳은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은 차가운 공터로 변했다.

철거 잔해 위로 매서운 겨울바람이 몰고 온 눈발이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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