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의 끝

by life barista

나는 오늘도 밤새도록 나노 송과선과 싸우고 있다.

네트워크가 쏟아내는 실시간 정보들은 나를 단 한순간도 놓아주지 않는다.

나노 송과선을 몸에 심은 지도 벌써 5년.

처음엔 누구보다 뛰어난 사람이 되어 더 많은 돈과 성공을 쥘 거라는 희망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차갑게 식어버린 도시 속에서

끝없는 피로와 허무를 겨우겨우 견뎌내고 있을 뿐이다.


나노 송과선을 이식하면 모든 경쟁에서 앞서갈 수 있다고 했다.

누구보다 빠르게 정보를 얻고,

남들보다 월등하게 일할 수 있다고 약속했다.

그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실제로 나는 남들보다 빠르게 판단했고,

맡은 일을 완벽하게 해냈다.

처음 몇 년 동안은 눈에 띄게 늘어난 수입과 사회 등급 덕분에

우월감과 특권 의식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업그레이드 경쟁은 점점 나를 옥죄었다.

내 것보다 더 뛰어난 나노 송과선을 장착한 이들이 속속 나타나자 내 등급은 순식간에 추락했다.

나는 불안에 떨었다.

당장 최신 기술을 내 몸에 심을 수밖에 없었다.

한번 뒤처지면 영영 끝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선택했던 이 길이,

이제는 더 많은 돈을 써야만 겨우 제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덫이 되어버렸다.

모나드 시티 중심에 설치된 전광판에는 매 순간 주민들의 등급과 순위가 그대로 드러났다.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내 등급을 확인하며 불안에 떤다.

등급이 조금만 내려가도 주변 사람들의 태도가 금세 차가워지는 걸 느낀다.


마지막으로 진심 어린 미소를 받아본 적이 언제였던가.

사람들은 서로를 의심하며,

언제든 상대를 밀쳐내고 올라갈 준비가 되어 있다.


이렇게 살려고 나노 송과선을 탑재한 걸까?

그냥 행복해지고 싶었을 뿐인데,

나는 왜 매 순간 불안에 떨고 있는 걸까.


이 도시의 경쟁은 끝도 없다.

나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버렸다.

심지어 잠드는 순간조차 편하지 않다.

수면은 내겐 깨진 데이터를 정리하는 시간일 뿐이다.


가끔 나는 도시 외곽에 일반인 정착촌을 바라본다.

그때마다 알 수 없는 질투와 그리움에 빠진다.

그들의 삶은 비록 가난하고 불편할지라도,

적어도 자유롭게 웃고 울 수는 있지 않은가.

그 자유가 어떤 느낌이었는지 이젠 기억조차 희미하지만,

그 자유라는 걸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아픈 사람과 함께 아파하고,

잘못된 일에 함께 분노하며,

인간답게 살고 싶어서 함께 애쓰던 기억이 아프게 떠오른다.


만약 다시 그런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이 뛰어난 능력을 기꺼이 버릴지도 모르겠다.

끝없는 경쟁과 업그레이드의 굴레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내 선택을 깊이 후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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