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by life barista

상담실에 햇빛이 부드럽다.

명인성은 무거운 고민에 빠진 듯 침묵하고 있었다.

하철상은 그를 측은하게 본다.


“지난번 상담에서 인성 씨가 이렇게 말했죠.

정치라는 게, 혼자 해결하기 힘든 문제를 함께 풀기 위한 노력이라고.

내 기억이 맞나요?”


명인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특히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절대악과 싸울 때 마음이 흔들리니까,

그때 정치가 더 절실해지더라고요.”


하철상은 다시 질문했다.


“절대악과 마주했을 때 왜 마음이 흔들리죠?”


“흔들리는 이유는 그 순간 내가 정말 지키고 싶은 것이 또렷해지기 때문이에요.

절대악 앞에 서면 절대로 잃고 싶지 않은 소중한 것들이 너무 선명해져요.

그걸 잃고 싶지 않아요.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에 마음이 떨리는 거 같아요.”

하철상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절대적인 악을 없앤다는 건 단순히 나쁜 걸 제거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진정으로 소중히 여기는 게 뭔지 다시 깨닫게 되는 기회일지도 모르겠네요.”


명인성은 고개를 끄덕여 동감을 표했다.

이내 조심스럽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선생님, 아무리 절대적인 악이라고 해도,

때로는 용서하거나 이해해야만 하는 상황도 있지 않을까요?”


“물론 그럴 수 있죠.

다만, 용서라는 건 용서받는 사람에게 인정할 만한 가치가 있을 때 가능한 일 아닐까요?

과연 절대악에게도 그런 가치가 있을지 모르겠네요.

오히려 절대악을 용서할 때 우리가 지켜야 하는 가치가 흔들리지는 않는지

신중하게 돌아보는 게 더 중요합니다.


용서라는 것도 결국,

우리가 지켜야 할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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