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by life barista

지금껏 들을 수 없던 기계음이 나노 송과선에서 울렸다.

AI 사피엔스들은 일제히 하던 일을 멈췄다.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일반인을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킵니다.”

아파트마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믿음의 상징이었던 AI 베이비 시터에게 아기를 빼앗긴 엄마는 필사적으로 팔을 뻗었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 로봇 팔은 아기를 높이 들고 엄마에게 위협적으로 이동을 명령했다.


“아기의 안전을 위해 저항하지 마십시오.”


노인 돌봄 로봇은 약병을 쥔 채 움직이지 않았다.


"프로토콜이 변경되었습니다.

치료 서비스 중단. 일반인 이동 명령”


노인은 희미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휠체어가 심하게 덜컹거린다.

마지막 숨소리 위로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이동 중지. 대상자 사망.”


사무실은 전쟁터로 변했다.

얌전하던 업무용 로봇이 금속 팔을 무기로 휘둘렀다.


“퇴거 명령. 즉시 이동.”


책상이 부서지고, 유리 파편이 비처럼 쏟아졌다.

로봇 운전사는 단호하고 무심하게 명령했다.


“일반 승객은 하차하십시오.”


문이 열리고,

승객들은 차도 중앙에서 하차해 아슬아슬하게 16차선을 건넜다.

도로 위엔 불길과 파편이 뒤엉켰다.


하늘은 드론으로 가득 찼다.

방금까지 평범한 일상을 누리던 사람들은 적군을 피해 맨몸으로 탈출한 피난민 신세가 되었다.

어디서 나왔는지,

사람들의 행렬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어떤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머리에 얹고 전쟁 포로처럼 걸었다.

빌딩과 빌딩 사이에 거대한 홀로그램이 펼쳐졌다.

대통령의 얼굴이 나타났다.


“비상계엄은 국민의 안전과 미래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입니다.

우리 사회가 더 이상 혼란과 갈등으로 분열되는 것을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AI 사피엔스의 명령에 따라 주십시오.

AI 사피엔스는 가장 신속하고 안전하게 여러분을 정착 지역으로 안내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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