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경단

by life barista

음모론은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 만들어졌다.

일반인 특수부대가 모나드 시티를 습격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모나드 시티의 공포는 극에 달했다.


몇몇 주민들이 자경단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 도시를 지킬 책임과 의무가 있다고 믿었다.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최선의 방법은 일반인들을 박멸하는 것이라는데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자경단은 정부의 묵인 하에

총, 수류탄, 화염방사기와 같은 재래식 무기로 무장했다.

자경단의 수는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다.


자경단과 군인들은 명령만 기다렸다.

명령에 대해선 그 어떤 비판도 허용되지 않았다.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밤에 자경단과 군대는 일반인 정착촌을 습격했다.

이미 그들은 측은지심과 시비지심을 잃었다.

AI 사피엔스들은 나노 송과선에서 흘러나오는 적자생존과 우승열패에 따라

사악한 약자를 진멸하는 것을 최선이라고 믿었다.

어떤 자경단원들은 일반인은 죽여도 된다는 구호를 외쳤다.

정착촌은 무방비 상태였다.

모나드 시티의 최정예 부대가 선봉에 서 공격하면,

뒤를 이어 자경단이 총을 난사했다.

정착촌 거리에는 총성과 비명이 뒤섞였다.

일반인 중 일부가 산발적으로 총을 쐈지만 역부족이었다.

AI 사피엔스 자경단과 군인들은 무자비했다.

그들의 행동은 비참했던 우리나라의 역사를 답습했다.

그들은 정착촌 지하실에 숨어있던 사람들을 수색해 교회로 몰아넣었다.

어린아이와 노인,

여자와 남자를 가리지 않았다.

그들은 교회에 불을 질렀다.

불을 피해 밖으로 뛰쳐나오는 사람들을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기관총을 탑재한 드론은 도망치는 어린아이의 등을 조준해 사격했다.

새벽이 밝아올 무렵,

일반인 정착촌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자경단원들과 군인들은 시체를 태우며 환호를 질렀다.

그들에게 이 사건은 정의의 이름으로 사악한 존재를 처단한 쾌거였다.

이게 정말 옳은 일인지에 대한 의심과 죄책감이 마음 어디쯤에 생겨나더라도 겉으로 티내진 않았다.

천사가 악마를 처형한 것에 대한 의심과 죄책감은

또 다른 악마성의 표시이기 때문이다.

AI 사피엔스는 자신들이 지켜낸 도시가

이제 완전히 다른 무엇이 되어버렸다는 현실을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깨닫기 시작했다.

아침 해가 잿빛으로 뒤덮인 폐허를 낱낱이 들췄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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