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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억 분실사건

by life barista

비싸다고 소문이 자자한 치킨 세 마리에 생맥주까지. 누구라 할 것 없이 배 터지게 먹고 기분 좋게 취했다. 얼마 전 취업에 성공한 아이도, 군 복무 중인 막내도 알 수 없는 장밋빛 미래에 취했다. 아내는 경찰서에서 오는 길이다. 담당 어르신을 폭행한 보호자인 딸을 신고했다. 인생이 씁쓸해서 더 취했다. 나는 내가 쓴 글을 아무도 읽지 않는다며 세상을 원망하며 취했다. 알바 때문에 저녁 자리에 끼지 못한 둘째는 무엇에 취했을까.

소나기밥을 처리하기 위해 시장을 한 바퀴 돌자고 누군가 제안했다. 시장 어귀에는 얼마 전 개업한 로또 복권방이 있다. 개업 발인지 통유리창에는 ‘축 3등 당첨’ 전단지가 수십 장 붙어있다. 아들은 로또를 선물하겠다며 호기롭게 복권방으로 들어갔다. 여든 살도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가 복권 자동발매기 뒤에 동그랗게 앉아 있었다. 당첨을 기원한다면서 로또 종이를 끊어 줄 때마다 검지로 허공을 찔렀다.


로또를 산 후에도 아내는 연금복권이 더 좋다고 계속 불평했다. 이미 당첨된 복권 중 하나만 고르는 것처럼 말해서 로또 1등도 괜찮다며 우리는 모두 깔깔 웃었다. 이때까진 좋았다.


당첨 번호를 발표하는 토요일. 사실 우리 중 그 누구도 토요일과 로또를 연결하지 못했다. 아이들은 놀러 나갔고, 아내는 심드렁하게 휴대폰을 읽고 있었다. 나는 쏟아지는 초저녁잠과 싸우던 중 벼락같은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로또 맞춰보자! 아내가 인터넷 기사를 본 모양이다. 그런데 내 로또가 어디 있더라? 각자 그날 입었던 옷, 맸던 가방을 걸터듬었다. 술 때문이다. 나는 로또가 어디에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청바지인지 운동복인지, 도대체 뭘 입었는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바지를 십여 벌, 점퍼를 네다섯 벌, 가을 저녁에 입을만한 옷은 전수 조사를 했다. 싸구려 옷감에서 떨어져 나온 보푸라기만 손샅에 잔뜩 묻어 나왔다.


아내는 30개 숫자 중 2개만 맞았다고 했다. 다시는 복권을 사지 않겠다면서도, 동전으로 긁어 바로 확인할 수 있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나는 1등 번호를 확인했다. 아뿔싸! 내 로또에서 본 바로 그 숫자였다. 아니 그 숫자 같았다. 아니 저런 숫자도 있었던 것 같다. 아니 로또를 사긴 했나? 심지어 그날 내가 살아있었는지조차 가물가물해졌다.


다시 바지를 뒤졌다. 다시 점퍼를 들쑤셨다. 뒷주머니에 종이를 넣었던 기억 같지 않은 기억을 믿고 나는 계속 바쁘게 손을 놀렸다. 장롱에서 옷이란 옷은 다 꺼냈다. 그날 입었을 리 만무한 여름옷까지. 꺼내 놓은 옷가지는 산더미가 되었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 옷을 헤집고 뒤집었다. 가슴이 뛰고 땀이 났다. 이게 무슨 짓인가 한 순간 풀이 죽었다. 그러더니 옷 더미 위로 뻗었다.


30억이 날아갔다. 나는 냅다 소릴 질렀다. 그랬더니 고통이 30억 치 쏟아졌다. 아내는 그깟 30억 잊어버리라고 했다. 없어도 산다, 없어도 그동안 잘 살았다. 그랬다. 우린 30억이 없었어도 그동안 잘 살았다. 그 정도로 부자였다.


1등을 배출한 복권방에는 그 사실을 알리는 대대적인 광고가 내걸리는 법. 3등 당첨도 도배하다시피 전단지를 붙였는데, 1등에 당첨되었다면 얼마나 요란법석을 떨어겠는가. 북도치고 꽹과리도 치고 돼지머리도 잡지 않았을까. 몰래 복권방에 혼자 갔다. 흡사 복권방을 털려는 사람처럼 골목에 숨어서 조심스레 훔쳐봤다. 1등 당첨자가 나오길 바라는 건지, 나오지 않길 바라는 건지 영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내가 산 복권방에서 1등이 나왔을까?

그 사람이 혹시 내가 아닐까?

30억짜리 종이 쪼가리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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